재정정책만을 다루기 보다는 재정과 금융정책(금리)의 정책조합을 꾀하길

소비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부동산거래 활성화를 통해 가계부채 상환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경환 2기 경제팀 무엇을 해야 하나’를 정책토론회에서 이 같이 밝히며 "각종 규제완화와 기업 세제혜택, 외국인직접투자 적극유치 등을 통한 소비 및 투자활성화가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온기운 교수는 이날 “추경 등 주로 재정정책에 의존하기 보다는 재정정책을 금융정책과 함께 정책조합(policy mix)해야 소기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고 밝혔다.

온 교수는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맞춰 금융정책을 완화기조로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온 교수는 “최근 한계기업 비중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데 이러한 한계기업은 경제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인이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의 진입과 퇴출을 활성화하고 신용보증제도도 기업의 우열을 가리는 방향에서 운용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온 교수의 패널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최경환 2기 경제팀 무엇을 해야 하나’ 정책토론회 전경 

한국경제 상황

한국경제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성장률의 하방리스크가 확대된 상태이다. 경기흐름을 파악하는 지표인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2014년 들어 빠르게 하락하고 있고, 향후 경기 국면을 예고해 주는 선행지수 순환 변동치도 2013년 말부터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향후 경기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여러 전망 기관들이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조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처해 있는 상황은 ‘저물가, 저성장,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한마디로 국내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극히 부진한데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한국은행의 중기(2013~2015년) 목표치인 2.5~3.5%에 못 미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일각에서는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내수 부진은 자본재, 원자재, 소비재 등의 수입을 부진하게 만들어 경상수지 흑자를 누적시키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지난 해까지 누적경상수지 흑자는 3,640억 달러에 달했는데 올해도 600~700억 달러의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경상수지 흑자 누적은 원화가치 상승압력을 가중시키고, 이에 따라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 하락과 채산성악화라는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 이것이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가 17일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최경환 2기 경제팀 무엇을 해야 하나’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소비 및 투자활성화가 급선무

세계경제가 불안정하고 성장세가 둔화될수록 경제성장에서 차지하는 내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소비와 설비투자, 건설투자 등으로 구성되는 내수는 부진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는 세월호 참사라는 단기적 요인 뿐 아니라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로 인한 소비여력 위축, 인구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장기 부진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 2.0%를 기록했던 민간소비 증가율은 2014년 1분기에 0.3%(전기비)의 낮은 수준을 보였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2013년 -1.5%를 기록한데 이어 2014년 1분기에도 -1.3%의 마이너스가 이어지고 있다. 건설투자 증가율은 2010~12년 3년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으며, 2013년에는 6.7%, 2014년 1분기에는 4.8%로 증가율이 회복되었으나 이는 장기부진에 따른 기술적 반등 요인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수부진은 국민경제상의 저축-투자 갭을 확대시켜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를 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경상수지 흑자누적은 원화절상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점과 관련된 정책제언은 내수를 활성화해 저축-투자 갭을 줄이고 이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적정수준으로 축소시키며 이로써 원화절상 압력을 줄이는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당국이 인위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키려고 하는 것은 그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국제적인 비판을 받기도 쉽다.

소비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며, 그 중요한 방안의 하나로 미국처럼 부동산거래 활성화를 통해 가계가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부동산거래 활성화는 가구업계, 이삿짐센터, 도배업체, 중개업소 등의 형편을 개선시켜 소비를 촉진시키는 효과도 있다. 총부채상환비율(DTI)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은행의 자율에 맡기도록 하는 한편, 분양가상한제 운용 개선을 위한 ‘주택법’개정안 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도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기업이 사내유보를 줄이고 배당을 늘리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소비와 관련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 등도 소비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사교육비 경감과 불합리한 준조세 개선 등도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를 늘릴 수 있다.

설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와 더불어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울 수 있는 분위기 조성과 세제혜택 등이 필요하다. 국내투자 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외국인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며,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을 국내로 유턴시키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건설투자도 부동산거래 규제 완화 등을 통한 건축경기 진작과 적정규모의 토목투자 유지 등이 필요하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정책조합

정부는 그동안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주로 재정정책에 의존해 왔다. 상반기에 예산을 앞당겨 집행하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집행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지난해 4월 역대 두 번째 규모인 17조 3,000억 원(세입 결손 보전용 12조 원+세출 증대용 5조3000억 원)의 추경이 편성되었고, 올해도 추경편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재정정책만으로는 소기의 경기부양 효과를 나타내는데 한계가 있다. 금융정책과 함께 정책조합(policy mix)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소기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5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후 금리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실제GDP가 잠재GDP를 밑돌아 GDP갭이 마이너스를 지속하는 가운데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중기목표치를 훨씬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에 집착해 금리인상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감이 있다.

한국은행은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맞추어 금융정책을 완화기조로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재정과 금융 모두 완화정책을 쓰면 저물가와 저성장에 대한 경계감이 완화되면서 체감경기 개선과 원화 강세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중앙은행이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위험도가 높은 자산까지도 매입함으로써 경기 부양을 도모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행이 언제까지나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할 수만은 없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국내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13년 4.6%에 그쳤으며,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4.0%를 기록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업들의 수익성은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 이 점은 한계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 100%미만인 외부감사 대상기업 비중이 2009년 말 10.2%에서 2012년 말에 15.0%로 크게 높아졌다. 한계기업 수는 2009년 말 2,019개에서 2012년 말 2,965개로 늘었다.

업종별로 보면 비제조업의 한계기업 비중(2009년 12.5% → 2013년 19.4%)이 제조업(2009년 7.6% → 2013년 9.8%)보다 더 크게 상승했다. 제조업의 경우 조선, 화학, 철강업종에서 한계기업 비중이 상승했으며, 비제조업의 경우에는 건설업, 부동산업, 운수업 등에서 크게 상승했다. 특히 부동산·건설업의 한계기업수가 994개로 전체 한계기업의 33.5%를 차지했다.

한계기업은 경제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유도하여 한계기업 비중이 크게 낮아진바 있으나 근래에 올수록 산업 내 기업의 진입과 퇴출이 부진해지고 그만큼 시장에 온존하는 한계기업 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의 진입과 퇴출을 활성화하고 신용보증제도도 기업의 우열을 가리는 방향에서 운용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오히려 경기가 악화되었을 때 기업의 옥석이 가려질 수 있는 만큼, 경제체질 강화를 위해 과거 외환위기 당시처럼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사정 대타협

노동생산성 하락과 임금 상승에 따른 한국의 제조업 비용경쟁력 하락을 개선하고 시간제 일자리 확대 등을 통한 고용률 제고 등을 위해서는 노사정이 컨센서스를 이룰 필요가 있다.

독일이 2000년대 중반 강도 높은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노사정 합의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 임금인상 자제,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고용률을 73%까지 끌어올린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