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명 제명은 또 한 번의 당 자폭…전대 변수로
약자인 김진태에 표 쏠리고 황교안 대세론은 휘청
   
▲ 조우석 언론인
요즘 자유한국당의 왕코미디에 절망했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기왕에 그  당의 성향을 알고 있었지만, 집권여당의 위세에 눌려 자기 당 소속의원을 삽시간에 제명 처분하는 '자살당' 모습에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접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어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기도 하다.

2년여 전 박근헤 대통령 탄핵의 기시감(旣視感)인데, 실은 구조도 같다. 당시 새누리당에서 넘어간 찬성표 62표가 가세하는 바람에 국회에서의 탄핵이 의결됐는데, 결과적으로 집권당이 민심이란 괴물 앞에 굴복했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번 '셀프 제명 파동'도 면책특권이 보장되는 국회의원의 입을 스스로  막는 전체주의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당 윤리위에 회부됐던 세 명의 의원이 개최한 2·8 공청회 자체가 5·18 진상규명 특별법에 근거한 합법적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그걸 신성모독으로 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반민주적 횡포에 맞서 싸워야 할 한국당이 여기에 다시 동조하고 나선 점이다.

누가 한국당 X맨인가?

이종명 의원을 제명키로 하고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전대 이후로 징계를 유예한 건 한국당이 민주당 2중대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적과 싸우라고 군대를 만들어줬더니 총부리를 안으로 돌려 아군을 죽이는 꼴이다. 카니발리즘 정당, 즉 식인(食人) 정당이라는 비판과 함께 비대위원장 김병준이야말로 한국당의 X맨이라는 아우성도 다시 터져 나온다.

사람들의 절망은 한국당의 이념적 정체성도 의심스럽지만 정치의 ABC인 피아(彼我) 구분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제명 파동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고 내다보는 쪽이다. 단기적으로는 전당대회에 이미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지만 당 대표 선출에 중차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후폭풍은 뜻밖에도 김진태 후보에게 동정표 내지 응원이 몰리는 쏠림 현상으로 나타났다. 조짐은 14일 대전에서 열린 전당대회 충청·호남권 합동 연설회에서 드러났는데, 한 당원 말대로 그날 행사는 김진태 독무대였다. 참석자 태반이 김진태 후보 지지자였고, 오세훈 후보나 황교안 후보의 지지자는 누구나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드물거나 세가 약했다. 

그 자리는 당원임을 일일이 확인한 뒤 입장을 허용됐다. 즉 태극기부대로 채워진 게 아닌데도 상황이 그러했다. 그건 표류하는 한국당을 보는 당원들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나를 보여준다. 한국당을 뒤에서 움직이는 김무성 식 귀족 정치가 먹히지 않으며, 당원의 바닥 민심은 다르다는 얘기다. 

   
▲ 자유한국당의 새 당 대표를 선출하는 2·27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가 14일 오후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황교안·오세훈·김진태 후보. /사진=자유한국당 유튜브 '오른소리' 캡처

전대 초반 분위기라서 단정하긴 어렵지만, 강경 우파 김진태에 대한 신뢰는  일단 뚜렷하다. 그런 까닭에 15일 첫 TV토론에서도 황교안-오세훈 두 후보가 김진태를 협공 압박하는 모양새가 전개됐다. 대세론에 안주하던 황교안에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는 뜻이다. 이미지도 안 좋다. 황교안에겐 좌파가 심어준 프레임에 안주하는 순응형 지도자란 이미지가 씌워졌다.

반면 김진태는 그 프레임을 갈아엎자는 투사형 정치인이란 인식이 전대 초반을 장식한 셈이다. 그런 분위기는 황교안 후보가 7일 "광주는 민주화가 이뤄진 거룩한 성지"라고 현지에서 발언한 게 확인되면서 더욱 빠르게 형성됐다. 쟁점인 5·18과 관련해서 이런 유화적 제스추어가 우리가 원하는 우파 지도자 모습이 아닌데다가 호남 민심에 대한 아부란 인식이다. 

대선 후보 황교안, 당 대표 김진태란 그림

이런 부실한 현대사 인식으론 황교안이 당권을 잡는다고 해도 그 이후가 문제다. 때문에 일각에서 대선 후보 황교안, 당 대표 김진태라는 그림이 '싸우는 야당' 한국당 이미지에도 좋고, 황교안의 커리어 관리에 유리하다는 말도 등장한다. 때문에 예전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박원순을 지지하고 자신은 빠졌듯이 그런 그림을 연출 못할 것도 없는 대목이다.

'싸우는 야당' 한국당을 김진태가 이끌 경우도 문제는 문제다. 그 경우 문재인 정부는 선명한 투쟁노선으로 무장한 새 야당의 등장에 당황하고, 향후 정국은 쉬 가늠하기 힘든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전대 결과 김진태가 패배할 가능성도 역시 있는데, 그 경우도 상황이 만만치 않다. 

김진태의 새로운 선택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즉 그가 제명 처분이 기다라는 당내로 순순히 복귀할 것이냐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거꾸로 불복을 선언한 채 보수 신당 창당을 할 수도 있다. 어떤 결과가 됐건 한국당 제명 파동과 한국당 전당대회는 국내 정치에 큰 변수로 이미 등장했다. 물론 지금 한국당 당원들 사이의 바닥 분위기는 저 최악의 웰빙정당으론 결코 안 된다는 점에 대한 암묵적 합의다.

그런 판단에 나 역시 공감한다. 무늬만 야당인 한국당으론 최악의 결과만을 만들어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 분위기를 전대 현지에서 매일 같이 느끼는 김진태의 마음은 더 급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 한국당 체제론 문재인 정부와 효과적으로 싸울 수도 없고, 내년 봄 총선도 필패가 불보듯 뻔하다라면 전당대회 이후 새 판을 짜는 것도 생각해봄직한 그림이라는 판단을 그가 할 수도 있다. 이런 나의 상상력이 너무 거대했나? 아니다. 나비의 날갯짓이란 말이 있던가? 한국당 제명 사태와 27일 전대 결과가 어떻게 드러날지 유심히 지켜볼 일인데, 우리가 원하는 건 자유우파의 대혁신이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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