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등 주주권 강화 움직임이 시장 내에 확산되면서 이른바 ‘주주행동주의’가 보편화 되는 모습이다. 주주들이 주총서 사실상 기업 총수의 ‘해임’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포착되고 있어 일각에서는 기업 활동이 과도하게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선도 생겨나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주주행동 사례’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등으로 주주권 강화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여파로 분석된다. 주주들의 요구사항은 더 이상 사외이사 추천이나 배당확대 요구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기업 총수의 거취 문제까지 직접 결정짓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례로 내달 열리는 삼양식품 정기주주총회에는 ‘이사 자격정지 정관 변경’ 안건이 다뤄질 예정이다. 배임이나 횡령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이사를 ‘결원’으로 처리하자는 내용이다. 주주제안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삼양식품 2대주주 HDC현대산업개발(지분율 16.99%)이다.
  
이 안은 사실상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김정수 사장의 해임을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회장과 김 시장은 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주주제안을 한 HDC현대산업개발은 원래 삼양식품에 우호적인, 이른바 ‘백기사’ 세력으로 간주됐기 때문에 이번 움직임은 더욱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주총에서 이번 주주제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재벌그룹 계열사의 하나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오너리스크 해소를 위해 사실상의 ‘해임’ 제안을 했다는 것은 달라진 분위기를 암시한다. 그만큼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됐다는 의미다.

달라진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 역시 한진칼에 HDC현대산업개발과 같은 내용의 주주제안을 한 상태다.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해임을 염두에 둔 주주제안을 하면서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연이어 나오는 모습이다.
 
비슷한 주주제안은 계속 늘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SC펀더멘털은 소주 ‘좋은데이’로 알려진 무학에 ‘감사 추가 선임’과 ‘배당금 인상’ 등의 내용으로 주주제안을 냈다. 태양과 강남제비스코에도 지배구조개선과 주주 친화정책 강화 등을 주문한 상태다. 한솔홀딩스와 네오디안테크놀로지는 소액주주들이 나서서 배당과 신규 이사 선임 등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주주들의 입김이 거세진 상황 속에서 기업들도 보다 기업 친화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역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예상됐던 현대그린푸드는 배당성향을 2배로 높였고 한진그룹은 KCGI의 주주제안을 일부 수용해 배당 확대를 포함한 발전 방향을 발표했다. 그랜드백화점이 최근 실시한 자산재평가 역시 주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가 보편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과도한 주주행동주의가 자칫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주주행동주의가 최근의 시대정신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기업들이 인정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한국의 경우 소유주-경영주가 묘하게 결합된 독특한 지배구조를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다간 자칫 경영 효율성이 저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