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난 1년간 북한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등 어떤 도발도 하지 않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이다. 지난해 6월12일 ‘세기의 담판’이라고 불린 북미 정상의 첫 만남 이후 북한의 비핵화는 진전되지 못했다. 후속 실무회담이 열리지 못한 것이다.

초라한 변명에 불과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의 협상안이 점점 후퇴하고 있는 것의 연장선에 있어보인다. 처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 이전에는 어떠한 협상도 없다던 미국은 최근 북한과 협의할 의제에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과 함께 ‘비핵화 의미에 대한 이해 증진’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사실 이제야 ‘핵동결’이 언급되는 것도 문제지만 ‘비핵화 의미에 대한 이해 증진’이라는 의제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라도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협상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진행돼 왔는지, 최종 목표에 대한 청사진은 있는지, 이를 위해 북한과 실무협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등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협상 테이블에 처음 마주앉기 전 거의 1년동안 “화염과 분노” 등 거친 말폭탄을 주고받으면서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던 중 2018년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밝힌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이 같은 결정을 하기까지 유엔 고위관계자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전양해를 구한 일이 있었고, 이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그가 당선된 지 1주일만에 전임 대통령 오바마와 백악관 집무실에서 가졌던 회의 내용이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조엘 위트 ‘38노스’ 대표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향후 첫 임기 동안 직면할 가장 큰 도전과제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 같다”며 “오바마는 북한에 대해 여러가지 군사옵션을 모색하고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만에 하나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옵션 차원에서 고려한다는 것이었지만 트럼프는 전쟁을 준비했었다고 왜곡시켰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가비상사태 선포계획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한과 큰 전쟁을 개시하기에 아주 근접했었다’고 말했다고 했으며, 이에 대해 오바마행정부의 참모진들이 언론에 “어느 누구도 대북 군사옵션을 논의한 기억이 없다”고 반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위트 대표는 “평양을 방문했던 한국대표단이 백악관을 찾아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자 한다고 전달했을 때 마치 트럼프가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수락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됐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부터 외교 노선에 북한 문제를 포함시켰고, 노벨평화상을 어떻게 받을 것인지 생각했던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 위트 대표는 북미 정상회담을 낙관할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으로 경계해야 할지에 대해 “그래도 과거보다 지금 상황이 낫고, 북미 간 협상으로 국익에 손해가 없었고, 북한의 위협에 노출될 위험이 낮아졌다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견고한 전략이 없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기반을 다자주의적인 차원에서 다지지 않고 있다”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다가가지도 않았고, 일본과 연대를 쌓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장차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시아지역 내 미국의 이권과 동북아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고 단언했다. 

게다가 지금 미국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앉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던 길에서 벗어나서 동의해서는 안될 내용에 동의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영변핵시설 폐기는 물론 ‘+α’(플러스알파)로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 약속을 받아내고 상응조치로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현실적인 방향으로 개선됐다는 평가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발언이 상황을 더욱나쁘게 이끌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하노이에서 만에 하나라도 북한과 미국이 의미있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승자도 없는걸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두차례 마주앉는 동안 북한은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할 발판을 마련했고, 북중 혈맹관계를 복원시켰고, 싱가포르와 베트남 등 외교무대도 넓혔다. 

반면, 미국은 한미동맹에서 잇단 잡음을 냈고, ‘일본 패싱’ 논란을 불렀다. 무엇보다 ‘깜깜이 의회’로 만든다며 반발해온 미 야당의 압박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탑다운’ 방식으로 '통 큰 결단'에만 의존해온 북미 정상회담의 향방도 깜깜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갖고 있다./싱가포르 통신정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