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입성했다. 세기의 ‘빅 이벤트’의 막이 올랐다. 김정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이날 오전 8시13분(현지시간·한국시간 오전 10시13분) 베트남 북부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미리 준비된 자신의 차량에 올라 하노이로 직행했다.

전용열차에 탑승해 평양에서부터 중국 대륙을 관통해 베트남으로 향하는 ‘60시간의 대장정’을 선택한 김 위원장의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았다. 하노이 직항 항공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경유지 등 동선에도 이목이 쏠렸다.

일단 김 위원장은 동당역에서 하노이까지 승용차로 곧장 달려 숙소인 멜리아호텔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의 이날 오후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선 바딘광장에 있는 호치민 주석 묘지 등 하노이 시내를 둘러볼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이날 오후 늦게 응우옌 푸 쫑 국가주석과 만날 수도 있다. 해외순방 중인 쫑 수석은 이날 오후 4시쯤 귀국할 예정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 목적 외에도 베트남을 공식방문하기 위해 하노이를 찾았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무엇을 함께할지, 또 쫑 베트남 주석과 베트남의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머이’(쇄신)에 대해 대화하고 관련된 경제 시찰에 나설 수도 있다.

앞서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동당역에서 하노이로 가는 길에 있는 북부 박닌성을 방문해 삼성전자 스마트폰 공장 등을 들를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집사’격인 김창선 부장이 지난 17일 박닌성 삼성전자 공장 주변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노이 입성 전에는 불발됐지만 김 위원장의 하노이 체류 일정이 오는 3월2일까지로 예상되는 만큼 여전히 방문 가능성은 남아 있다.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 산업단지는 외국기업의 제조시설이 모여 있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도이머이 정책의 중심으로 베트남의 연평균 7% 고도성장도 바로 이곳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과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환영단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만약 김 위원장이 박닌성의 삼성전자나 타이응우옌성의 산업단지를 방문한다면 해외기업을 유치할 의향이 있고,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높은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김 위원장이 베트남에서 방문할 수 있는 산업단지는 북부에 있는 최대 항구도시인 하이퐁도 꼽힌다. 이곳에는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한국기업을 포함해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이 대거 몰려있는 데다 베트남의 첫 완성차업체인 ‘빈 패스트’ 공장도 있다. 

이 밖에 하노이에서 차량으로 3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유명 관광지인 꽝닌성 하롱베이를 찾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관광산업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하롱베이는 김일성 북한 주석이 베트남을 두 번째로 방문한 1964년에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록된 하롱베이는 연간 관광객을 100만명 이상 불러들이고 있다.

이번에 미국이 베트남을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낙점한 데에는 1986년 도이머이에 착수해 1994년 미국이 경제재재 조치를 해제하고, 1995년 국교 정상화로까지 이어진 배경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많다. 경제체제를 먼저 바꾼 뒤 정치변혁을 꾀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베트남은 과거에 미국과 총부리를 겨눈 ‘적국’이었지만 미국과 관계개선을 한 직후부터 본격적인 경제발전을 이뤘고 매년 7%의 경제성장을 거듭한 끝에 연간 GDP가 2380억달러 규모로 세계 50위 수준까지 올라섰다. 미국으로서는 베트남의 성장 모델을 북한이 선택하기를 바랄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공산당 체제에서 경제부흥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의 경제발전이 매력적일 것이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에 처음으로 북한의 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이 포함된 것도 베트남의 경제를 살펴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 한편, 김정은 위원장이 김 위원장은 귀국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5차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노이로 향할 때 베이징을 거치지 않고 톈진을 경유해 최단 노선을 잡았지만 돌아갈 때에는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김 위원장은 중국의 ‘경제 1번지’로 불리는 광저우 일대를 시찰해 또 한번 경제발전 의지를 과시할 수 있다.

현재 북한은 배급 시스템이 무너지고 주민들이 스스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경제 상황에 부딪쳐 있다. 주민들이 생존하기 위해 시장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동유럽이나 중국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북한은 특히 개혁‧개방이란 용어를 기피하고 경제관리 개선, 현대화, 과학화 등의 표현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국가이면서도 자본주의를 도입한 중국과 베트남의 길을 뒤따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