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지훈, '자전차왕 엄복동'서 자전차 영웅 엄복동 역 맡아
"자전거 훈련, 고통스러운 기억뿐… 당분간은 사양하고 싶어요"
"노력이라는 아이덴티티 잃고 싶지 않아…자만하지 않을 것"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정지훈(비)이 자전거 선수로 다시 스크린에 섰다. 순수한 열정으로 페달을 밟는 모습이 대중이 사랑하는 그의 모습과 꼭 닮았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에서 우승하며 암울했던 조선에 희망이 됐던 실존 인물 엄복동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정지훈은 물장수에서 자전차 영웅으로 조선의 희망이 된 엄복동 역을 맡아 영화 속 모든 자전차 경주 장면을 직접 소화하는 열정을 뽐냈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부담감도 컸지만, 관련 문헌을 조사하고 배우의 해석을 곁들여 엄복동을 탄생시켰다.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었던 일제강점기, 생계가 우선이었던 순수한 민초의 모습을 반영했다는 정지훈이다.

"100년 전 일을 다뤘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엄복동 선생님처럼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친척분들, 어르신분들께 엄복동 선생님에 대해 여쭤보긴 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박지성 선수, 김연아 선수 같은 스포츠 영웅들을 보며 위로받았던 느낌을 떠올렸어요."


   
▲ '자전차왕 엄복동'의 배우 정지훈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레인컴퍼니


사실 상업영화의 타이틀롤은 정지훈이 계획하던 방향과는 180도 다르다. 배우로서 정체성 형성이 가장 큰 숙제라는 정지훈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드려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고, 배우 정지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다"며 "그 시작을 상업영화로 하고 싶진 않았다"고 밝혔다.

"'저게 정지훈이야?' 싶은 캐릭터를 찾는 게 저의 목표이자 우선이었거든요. 아주 독특한 캐릭터든, 악역이든, 단 한 컷을 나오든지요. 그런데 아시아 투어를 하고, 앨범 제작에 관여를 하고, 좋은 무대를 만들어보려는 과정에서 계획에 없던 대본이 들어온 거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당시 6개월의 공백이 생겼을 때예요. 시나리오를 읽어본 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 분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참여하게 됐죠."

시나리오를 받아든 뒤 자전거 선수라는 캐릭터에 '고생 많이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고 한다. 굳은 결심으로 출연을 결정했음에도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다.

"자전거 선수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자전거 경주는 정말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액션 신을 촬영하면 합을 맞추는 동반자가 있는데, 자전거는 타면 앞만 보이잖아요. 자전거를 타며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이걸 왜 두세 시간씩 타고 있지?' 하고 돌아와서 실내 자전거를 또 타고."

평평한 도로가 아닌 모래바닥에서, 그것도 옛 자전거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야 했기에 더욱 힘든 촬영이었다. 허벅지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도 불사해야 했다.

"쉴 땐 쉬어줘야 하는데, 무리하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올림픽공원 선수촌에서 지내면서 선수들만큼 자전거를 탔어요. 국가대표 코치님과 실내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야외 훈련도 했는데, 굉장히 고통스러운 기억밖에 없어요. 즐겁지 않았어요. 촬영이 끝나고 나선 자전거 절대 안 탑니다. 당분간은 사양하고 싶어요."

힘겨운 훈련에도 자전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오롯이 책임감 때문이다. 정지훈은 "노력을 안 해서 혼나는 건 정말 싫다"면서 "그런 압박감들 때문에 감정 신에 수정을 거듭하고, 깊은 잠을 든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 '자전차왕 엄복동'의 배우 정지훈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레인컴퍼니


정지훈은 1998년 솔로 가수로 데뷔한 이래 늘 '노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성실한 모습에 반했을까. 대중은 땀으로 흠뻑 젖은 비의 몸짓을 사랑했고, 한껏 핏대를 세우는 정지훈의 얼굴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아직까지도 '노력의 아이콘'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잃고 싶지 않다는 정지훈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대중을 꼬실 수 있을까' 생각을 했거든요. 그룹 활동을 하다 망했을 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 날 안 좋아해주지?', '난 춤을 잘 추고 잘할 수 있는데'… 그런데 비라는 이름으로 나왔을 때 대중이 좋아한 나의 아이덴티티가 뭘까 생각해보니 열심히 하는 정지훈이더라고요. 그걸 잊어버린다면 오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작품도 그래요. 채찍을 때리시는 분도 있을 거고 '지훈이 잘했어' 혹은 '영화 좋네'라는 분도 있겠지만, 전 제 아이덴티티가 살아있나 그거 딱 하나 본 것 같아요."


   
▲ '자전차왕 엄복동'의 배우 정지훈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레인컴퍼니


건강하고 영민한 배우다. 차기작은 의외성이 빛나는 작품을 선택하고 싶단다. 정지훈은 살인마 역도, 삭발 캐릭터도, 체중을 30kg 늘리는 역도 좋다며 눈을 빛냈다.

"작은 역할이라도 독립영화, 단편영화, 예술영화를 하고 싶어서 접촉 중이에요. 다들 제가 다가가면 '지훈 씨가 왜요?' 이러시더라고요. 제게도 기회를 주셔야 그런 작품을 하죠. (웃음) 제가 좋으니까요. 올해에는 조금 천천히, 많은 것들을 도전해보고 싶어요."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그래도 열심히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는 정지훈. 그는 시행착오 반 성공 반으로 지금까지 왔다며 자신이 걸어온 길과 대중에게 감사를 표했다. 무대가 그립고 대사 한 줄이 목마른 이들의 열정을 알기에, 가수와 배우 활동 그 어떤 것도 허투루 임할 수 없다는 정지훈의 말이 사무치는 시간이었다.


   
▲ '자전차왕 엄복동'의 배우 정지훈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레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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