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유진 기자] "요즘엔 지배구조가 가장 큰 테마다. 우리가 의사(연임에 부정적 견해)를 표명한 건 일종의 권한을 행사하려는 행위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다. 아주 소극적인 방식으로."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3연임에 우려를 표명했던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27일 '관치금융' 논란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모습/사진=KEB하나은행 제공

금감원은 전날 하나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에 속한 지주 측 사외이사들과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현장에는 금감원 측 인사로 은행 담당 부원장보 등을 포함해 간부급 인사 3명, 하나금융 사외이사 3명이 자리했다.

이날 금감원은 하나금융 사외이사 측에 행장 선임 시 발생할 수 있는 지배구조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 비리 혐의로 1심 재판 중인 함 행장이 연임에 성공할 경우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법적 리스크(Legal risk)가 있어 이를 상기하는 차원에서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외이사들과 면담을 진행했던 금감원 한 간부급 인사는 "채용비리와 관련해 여러가지 소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나온 1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이 유죄를 판결받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도 채용 비리를 적폐로 보고 있는 만큼 법률 리스크가 높으니 잘 준비하라는 취지에서 관련 발언을 건넨 것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소송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다시 후보에 올라 은행장이 된다는 점에서 리걸 리스크(Legal risk)가 발생할 수 있다"며 "사외이사들은 고객과 주주를 대신해 금융사의 경영을 책임지고 최고경영자(CEO)를 선출하는 이들이니 그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있는지에 대해 문의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 당국이 금융사에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인사 권한이 개별 금융사 이사회, 즉 회사에 있다는 점에서 관치금융이라는 논란이 있다. 개별사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업무 영역을 벗어나는 행위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지난 1일 완전자회사로 편입된 오렌지라이프 임직원들과 환영 행사를 진행한 모습/사진=신한금융 제공

예컨대 올해 초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는데 성공한 신한금융 또한 과거 당국이 지배구조 리스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관련 심사가 늦춰진 바 있다.

내부 규정상 함 행장과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부재 시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뒤를 이어야 하는데, 위 행장 또한 ‘남산 3억원' 사건 등으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금감원은 지난 26일 진행됐던 하나금융 면담 때와 마찬가지로 신한금융 사외이사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위 행장의 연임 대신 진옥동 행장이 추대됐고, 지배구조 내부규범에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나면서 자회사 편입이 이뤄졌다.

그때와 하나금융이 다른 점은 업무 권한에서 나온다. 금융사들이 신사업을 추진할 경우 허가권을 내주는 당국의 입장에선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새로운 사업장에 인·허가를 내주는 상황에서 경영 문제상 CEO의 법적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의 안정성에 대해 묻는 것은 금감원의 고유 권한이 맞지만 이번 건처럼 별다른 사안이 없는데 경영진 선임에 관여하는 것은 업무 본질을 빗겨나간 행위로 보인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이같은 지적에 금감원 관계자는 "연임 여부는 결국 회사에서 결정할 문제로 당국이 개입하겠다는 의사는 아니었다"며 "법적인 리스크가 있는 만큼 이를 충분히 고려해달라는 취지로 면담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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