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미움 극복하면 보고배울 점 많아
역사에 대한 '치열한 반성' 있어야 발전도 가능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 후쿠자와 유키치와 사이고 다카모리의 발자취를 추적해 봤다. 오늘 날의 일본을 만들어낸 그들, 대체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꿈을 꾸었던 걸까? 일본에 대한 반감은 잠시 접어두고 조선이 왜 허무하게 무너졌는지, 어떤 이유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치열한 반성을 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메이지유신 탐방①]역사 잊은 민족에겐 미래도 없다?…제대로 기억하는 게 먼저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지난 1일 100주년을 맞이한 ‘3.1 운동’의 저력은 막강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도심 곳곳에서 열렸고, 일제시대와 관련된 영화·다큐멘터리가 채널 어디를 틀든 연이어 방송됐다. 또 독립을 위해 애쓴 선열들을 기리는 날인만큼, 일본에 대한 반감 역시 어느 때보다 격렬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말, 메이지유신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가고시마에 다녀왔다는 말을 하는 것이 어색했다. 단숨에 ‘친일파’로 찍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가고시마 곳곳에 자리한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을 바라보며 든 것이기도 하다. ‘일본 역사를 이렇게나 꼼꼼히 탐방하는 우리의 행보는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것이겠지?’ 하고.

하지만 36년간 우리를 지배했다는 미움을 극복하고 일본을 바라보면 배울 점이 많은 나라라는 걸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빼앗은 쪽이 아무리 야속하더라도, 총성 한 발 울리지 못한 채 나라를 빼앗긴 고종은 왜 미움을 받지 않는지 의구심이 든다. 나라가 그 지경이 되는 동안 왕이라는 사람이 대체 뭘 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다.

무능력한 지도자는 역사의 죄인이다. 이승만, 주시경 같은 개화파를 반역자라 여기는 인식 수준의 고종이 과연 아무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땐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었고, 통치를 시작한 이후엔 부인에게 끌려 다닌 고종이다. 여기에다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한 치명적인 단점까지 겸비한 그가 어째서 영웅으로 포장될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 일본 가고시마에 위치한 메이지유신 주역들의 묘비 /사진=미디어펜


일본 역사 공부 모임에 합류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의구심에서 출발했다. ‘근대화’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 어떤 국가는 이를 성취했고, 어떤 국가는 망국을 면치 못했다면 그런 결과를 자아낸 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또 식민지라는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깨닫기 보단 오롯이 ‘반감’ 하나로 발악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봤다.

흔히 일제시대를 기억하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도 없다’고 말하곤 한다. 일제 치하에서 느낀 굴욕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말이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움만으론 절대 장밋빛 미래를 쟁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의 허점이 무엇이었는지 복기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식민지로 전락했던 조선은 그다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다. 사극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한복, 고고한 선비의 모습은 조선 말기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왕은 무능했고, 관료들은 탐욕만 앞섰으며, 백성들은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어쩌면 그런 조선이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이 고립돼 있는 동안 일본은 변화를 꿈꿨기 때문이다.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은 봉건시대의 타파와 서구 문명의 도입을 주장하며 오늘 날의 일본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대체 어떤 걸 공부하고, 무엇을 익혔으며, 어떤 행동을 해나갔던 것일까?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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