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안에 원전 내 저장량 포화
'함흥차사' 공론화재검토위원회
   
▲ 한빛원전에서 경주 방폐장으로 중저준위 방폐물이 담긴 드럼용기를 보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밸류체인 붕괴 외에도 사용후 핵연료 문제가 탈원전을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자로 내에서 3~5년 가량 사용된 후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원료인 우라늄 뿐만 아니라 플루토늄·세슘·스트론튬을 비롯한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다량의 방사선과 고온의 열을 방출한다.

이는 원전에서 배출되는 의복이나 장갑 등 중저준위 방폐물과 구별되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고준위폐기물처리장 부지를 선정하지 못해 원전 내에 보관하고 있다.

5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총 저장용량과 저장량은 각각 52만5656다발과 46만9850만다발로, 수용 비율은 89.4%에 달한다.

본부별로는 △고리 66.3% △한빛 70.1% △한울 79.7%, 월성본부의 경우 경수로 36.9%, 중수로 81.4, 건식저장시설 94.9%로 집계됐다. 경수로의 경우 수용 비율이 낮지만 저장용량이 건식저장시설의 1.5%에도 미치지 못해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 적다.

업계는 건식저장시설은 2021년 2~3분기, 한빛본부와 고리본부는 2024년 가득 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원자력환경공단 월성본부 관계자는 "고준위 방폐장이 지어지지 않는 상태로 원전 내 사용후 핵연료 저장량이 포화상태에 달하면 가동 중인 원전도 운전을 멈춰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지난해 4분기 기준 원전본부 내 사용후 핵연료 저장비율(단위 : %)/자료=한국수력원자력


그간 정부가 30여년간 충남 안면도·인천 굴업도·전북 부안 등에서 방폐장 건설을 시도했으나,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경북 경주에 건설된 방폐장도 중저준위 저장시설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공론화위원회를 구성, 2016년 5월 중간저장시설 및 영구처분시설 부지 선정과 가동을 골자로 하는 권고안을 만들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토대로 같은해 11월 국회에 '고준위 방폐장법'을 제출했다.

이 권고안이 실현됐다면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이 각각 2035년, 2053년에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이마저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면 백지화됐다. 환경단체 및 주민 의견 수렴 부족과 에너지 정책 방향 변경을 이유로 고준위 방폐물 관리 계획 재검토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관련 공론화를 진행하겠다고 결정하는 데에만 6개월 가량을 소요했으며, 지난 1월 구성될 예정이었던 재검토위원회 역시 구성 및 의제도 정해지지 않고 있다.

에너지 정책 방향을 언급한 것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원전 건설을 이어간다면 임시저장시설이 늘어나는 셈이어서 방폐장 건설에도 여유가 생기지만, 신규원전 건설 중단 등 탈원전을 지지하는 측은 오히려 방폐장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도 계류 중이고 정부도 위원회에 '시동'을 맡기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며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지 조차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