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2차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를 결렬시킨 것은 미국이 제시한 ‘영변핵시설 플러스 알파’이다. 하노이에서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등 핵물질 생산시설은 물론 미사일 프로그램,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전체 대량살상무기(WMD)의 폐기를 요구하는 ‘빅딜’을 제안했고, 북한은 이런 제안을 거부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미 언론 인터뷰에 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핵‧미사일,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한 비핵화 빅딜을 제안하는 한글‧영문 문서 2개를 건넸다”고 공개했다.

일부 언론이 ‘플러스 알파’에 대해 ‘강선’, ‘분강’ 등 영변 외 다른 지명을 언급하고 있지만 볼턴 보좌관이 공개한 대로 미국의 빅딜 카드에는 영변 외 고농축 우라늄 생산시설뿐 아니라 전체 대량살상무기(WMD) 폐기가 담겼다.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준비된 합의문이 있었지만 서명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볼 때 스티브 비건 대북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대표가 작성한 합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협상팀이 만들어놓은 합의문 대신 볼턴 보좌관이 준비해간 빅딜 문서를 협상테이블 위에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무합의와 다른 빅딜 카드를 꺼낼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전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의회 폭로 등 국내에서 우호적이지 못한 상황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실무협상 때부터 안보리 대북제재 해제에 매달리는 북한의 속내가 간파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감을 되찾게 했다는 평가가 미국 전문가그룹에서도 나오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27일(현지시간) 베트남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 호텔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VTV

예상하지도 못했던 빅딜 카드를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협상을 이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영변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유엔의 경제제재 해제를 시도하는 악수(惡手)까지 뒀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면서 동시에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하노이에 열차를 타고 가면서 모란봉악단을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하노이 현지에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현송월 단장을 비롯한 모란봉악단이 김정은 위원장과 하노이까지 동행했다”며 “북한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찬 때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준비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실무협상 결과 낙관론이 넘쳤다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하노이회담 결렬은 정상간 ‘톱다운 방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면서 동시에 비핵화 개념조차 일치시키지 못한 북미 관계가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노이회담 직전 미국의 고위당국자는 언론에 회담 의제와 관련해 ‘비핵화 의미에 대한 이해 증진’이 포함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이 고위당국자는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도 의제로 함께 거론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WMD 폐기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회담 결렬 뒤에도 리용호 외무상은 “완전한 비핵화 여정에 반드시 이런 첫단계 공정이 불가피하다”며 “이런 원칙적인 입장에 추호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로 지금으로서는 영변핵시설 폐기가 유일한 카드임을 고수했다. 이번 회담으로 가장 뚜렷해진 것은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 조건으로 2016년과 2017년에 부과된 5건의 안보리 제재를 해제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노이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첫 전화통화를 갖고 중재역할을 당부한 것을 볼 때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빅딜 카드를 꺼내든 북미 사이에서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은 ‘험로’가 될 전망이다. 영변핵시설 폐기는 문 대통령이 평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해들은 약속이지만 당시 문 대통령이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까지 전해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번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강조한 바 있다. 일단 남북경협으로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남북경협도 유엔 제재에 묶여 있어 자칫 미국과 엇박자를 낼 우려가 있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과 다시 마주앉을 때 원칙을 내세울지 모른다. 지금까지처럼 ‘북한이 하려고 하는 것부터 일단 시작해보자’는 식의 비핵화 협상은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비핵화 협상의 만료 시한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낮은 레벨에서부터 적절한 시점에 김 위원장과 다시 직접 대화를 하는 것까지 준비돼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시작되어도 좋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하노이회담의 교훈을 되새긴다면 문 대통령의 새로운 중재 역할은 기본과 원칙을 따르는 ‘비핵화 로드맵’에 맞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