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임정요인 환국 비행기, 서대문 경교장, 임정 서울 연통부
   
▲ 서울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 부지를 알려주는 비석 [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증권회사들이 몰려있는 금융감독원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광장 가운데 특이한 전시물이 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대한민국이 독립했을 때, 중국 충칭에 있던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할 때 타고 온 비행기 모형이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제대로 된 비행기가 아니다. 탄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것 같고, 임정 요인들이 다 탈 수 있었을까도 의심스럽다.

임정은 일제 패망 후 승전국인정을 받지 못했다. 광복군이 본격적인 국내 진공작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제가 항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정 요인들도 초라하게 귀국해야만 했다.

아무튼 누구나 여의도 광장에 가면, 여기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볼 수 있다.

‘3.1운동의 결과물로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와는 전혀 다르고 말 그대로 임시정부지만, 우리의 뿌리이기도 한 정부다.

임정은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시작됐고, 중일전쟁(확대하면 태평양전쟁 및 제2차 세계대전) 전황에 따라 계속 서쪽으로 쫓겨 다니다가, 충칭에서 일본의 패전과 조국 해방을 맞았다.

여의도공원의 비행기 모형은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잔재.

그 대표적인 것이 서대문에 있는 경교장이다.

강북삼성병원 구내에 있는 경교장은 사적 제465호로 지정된 귀중한 국가 문화재다.

환국 후 김구 선생이 기거했고 임정 인사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 자체가 근대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경교장은 일제 때 금광왕으로 불렸던 최창학이 살던 집이었는데, 그가 환국한 백범 선생에게 바친 것이다. 최창학은 필부였으나 말 그대로 노다지를 발견, 졸지에 엄청난 부자가 된 인물.

그러나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에게 경교장은 비극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안두희의 흉탄에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 것.

경교장 지하에는 당시 김구 선생이 입고 있던 '선혈 낭자한' 흰 옷이 전시돼 있다. 2층에는 선생이 평소에 주무시고, 안두희의 총알을 맞은 현장인 방도 구경할 수 있다.

   
▲ 경교장에 있는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흉탄에 돌아가시던 때 입었던 옷 [사진=미디어펜]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 지가 있다. 임정의 서울 연락소 같은 곳이었다.

시청역 10번 출구에서 이화여고 쪽으로 가다보면, 이화외고 직전 골목 안에 기념비가 있다.

임정 서울연통부는 일제의 압제에 고통 받고 있는 조국 대한의 민중들에게 임정의 존재를 알리고, 각종 국내 정보와 군자금을 수집, 중국 상하이에 있는 임정에 전달하는, 일종의 전진기지역할을 했다.

그러나 1922년 일제에 의해 발각되면서 운명의 날을 맞았다.

이 곳은 원래 조선 숙종의 비였던 인현왕후가 탄생한 곳으로, 1897년 설립된 민족 제약기업인 동화약품의 요람이기도 했던 자리다.

임정 서울연통부의 행정책임자가 바로 동화약품 설립자의 아들인 민강이었다.

민강과 동화약품에도 경의를 표한다.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기거했던 덕수궁 석조전도 환국 후 임정이 국무회의를 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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