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눈이 부시게'가 문제작이 될 것이란 예상을 하면서도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섣부른 오해였다. 10회 엔딩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이런게 바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문제적 드라마였다.

12일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10회는 '식스센스'급 반전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김혜자(김혜자 분)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환자였다니. 지금껏 보여준 25살 혜자(한지민 분)의 타임워프로 인해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두 김혜자의 환상이었다니.

극 초반만 해도 타임워프 소재를 좀더 참신하게 풀어낸 그런 드라마인 줄 알았다. 중반을 지나면서 드라마의 '배경'에 주목했다.

   
▲ 사진=JTBC '눈이 부시게' 포스터


일단, 출연자가 거의 다 서민이었다. 청춘들은 취업난에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지만 젊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좌절 속에서도 용기를 내며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며 쿨한 척 살아간다. 중년들은 대개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가족들이나 이웃들의 사랑에 기대 그나마 갖고 있는 행복의 작은 틀을 유지하면서 아둥바둥 살아간다. 

노년들은... 사실 이 드라마가 가장 주목한 포인트였고 많은 에피소드를 이들에게 할애했다. 경제활동에서 소외되고 사회적 관심에서도 벗어나 있지만 어떻게 인생의 마지막 장을 보내고 있으며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는지, 과장과 코믹을 섞어 조금은 덜 무겁게 계속 노년 생활에 대한 화두를 던져왔다.

근래에 이렇게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투영한 드라마가 있었던가.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드라마 속 인물들을 보면서 기껏 대리만족을 하거나 쯧쯧 혀를 차거나, 막장 전개가 던져주는 쾌감에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는 정도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눈이 부시게'가 괜찮은 드라마라는 생각은 했지만, 극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혼란스러움이 생겼다. 샤넬할머니(정영숙 분)의 죽음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효도원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김혜자의 주도하에 어벤져스급 액션(?)을 펼쳤다.

갑자기 왜 이렇게 황당해지고 있을까, 당황해하고 있을 때, 강력한 한 방이 터졌다. 치매에 걸린 김혜자가 자신의 개인사와 어우러진 과거 추억과 바람, 못다한 일에 대한 한 등을 환상으로 엮어냈다는 것을 10회 엔딩에서 밝혔다. 심장이 쿵~ 했다.

   
▲ 사진=JTBC '눈이 부시게' 방송 캡처


알츠하이머를 다룬 많은 드라마가 있었다. 치매에 걸린 당사자보다는 주위 사람들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에 주로 그런 점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가곤 했다. '눈이 부시게'는 새롭고도 놀라웠다. 치매를 앓는 '노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했다.

우리는 그동안 알츠하이머를 대할 때 당사자보다는 주위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오지 않았던가. 걱정이든 위로든 주로 그 가족들에게로 향했다. 정작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고령화 시대다. 노인들의 삶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폭은 더 넓어져야 한다. 알츠하이머는 그 중 일부다.

12부작인 '눈이 부시게'는 이제 2회를 남겨두고 있다. 어떤 결말을 제시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던져온 다양한 사회적 화두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이미 문제작이 됐다. 

'눈이 부시게'를 문제작으로 완성시킨 결정적 공은 배우 김혜자의 명품 연기에 있다. 25살 혜자를 연기할 때 김혜자는 한지민이 돼 있었고, 몸은 노인이지만 마음은 청춘인 어려운 연기도 실감나게 해냈다.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 친구들, 주위 노인들을 바라볼 때 김혜자의 눈빛을 떠올려 보라. 단언컨데, 김혜자가 없었다면 '눈이 부시게'도 이만큼 완성도를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다.(좋은 연기는 전염성이 있는 것일까. 김혜자와 호흡을 맞춘 주변 인물들의 연기 역시 눈이 부시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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