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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나 고우나 트로트는 대중음악의 주류 장르
1세기 한국인 마음을 사로잡았던 '음악의 그릇'
트로트 장르에 'K클래식'이란 문패 달아줘야 정상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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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9-03-19 1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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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트로트에 대해 첫 글을 쓴 뒤 확인한 건 그 장르의 족보에 대한 궁금증이 사람들 사이에 의외로 크다는 점이다. 어떻게 시작되고 흘러왔는지, 일본 엔카와는 뭐가 같고 다른지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트로트쯤이야 뭐" 하면서 알려 하지 않고, 얘기해주는 이도 없었던 탓이다.

잠시 그 얘길부터 하겠는데, 최초의 트로트 히트곡은 1928년에 불리고 1932년 음반으로 나온 이애리수의 '황성 옛터'다. 일본 유학파 전수린이 작곡한 이 노래는 폭발적으로 불렸는데 직후 대형 히트곡 두 개가 터지며 트로트 장르가 대중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사로잡았다. 그게 고복수의 '타향살이'(34년)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35년)이다.

이 세 곡이 트로트의 원형이자, 널리 지금도 불리는 불세출의 명곡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인데, 그럼 그 이전 등장했던 '이 풍진 세월'(21년), '사의 찬미'(26년)는 뭐지? '사의 찬미' 음반은 10만 장 팔렸고, '희망가'의 경우 한대수-전인권-장사익 등이 리메이크했을만큼 매력 있는 노래다.

   
▲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 /사진=TV조선 '미스트롯' 캡쳐

트로트의 전사(前史)를 아세요?

하지만 두 곡은 엄연히 트로트의 전사(前史)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희망가'는 창가다. 본래 서양 찬송가를 19세기 말 일본이 창가로 번안돼 불렀고, 그것에 동경 유학생들이 우리말을 붙였다. '사의 찬미' 역시 번안곡이고, 소프라노 윤심덕이 불렀으니 트로트와는 뿌리가 다르다. 단 두 곡으로 30년대 대중음악의 첨병 트로트가 만개하는 길을 닦았다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등장했던 '황성 옛터', '타향살이', '목포의 눈물' 직후에 또 다시 트로트 명곡이 마치 폭죽 터지듯 등장했는데, '애수의 소야곡'(38년), '홍도야 우지 마라'(39년) 등이 그것이다. 그럼 트로트 혹은 뽕짝의 원조는 일본 엔카인가? 맞다. 그걸 누가 부인하랴?

다만 근대 일본이 만들어낸 대중음악이란 그릇 안에 우리 정서를 담아내는데 성공했고, 지금은 일본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수준이 됐다는 게 중요하다. 좀 더 큰 시야로 보자면, 트로트에 관한 한 정치외교 분야와 달리 용일(用日)-극일(克日)이 이뤄졌다는 게 내 판단이다. 첫 글에서 '트로트는 힘이 세다'고 언급했지만, 요즘 들어 그걸 실감한다.

일테면 70년대 세시봉 출신의 가수 김세환이 요즘 이른바 팝 트로트에 도전하고 있다. 또 청승과 한을 떨쳐내고 신바람 나는 홍진영-태진아의 댄스 트로트은 일본산(産) 트로트가 우리문화 DNA로 바뀌었음을 확인시켜준다. 밉거나 곱거나 트로트는 우리의 주류 대중문화다.

그게 지난 1세기 대중의 마음을 지배했다는 게 중요하다. 내 경우도 트로트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 그 중요성을 외면한 바는 없다. 리메이크 음반도 꽤 모았다. '정선 아리랑', 패티김의 '초우' 등을 수록한 나윤선의 음반 'Lento',  '빨간 구두 아가씨'(남일해) 등을 담아낸 재즈가수 말로의 '동백 아가씨-K 스탠다드' 등이 그것이다.

한영애의 'Behind Time'(2003)도 가요에 바쳐진 훌륭한 헌정 앨범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릴 매료시키는 트로트 명곡 '봄날은 간다'(54년)에 왜 그렇게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반복했을까? 옛노래 리메이크 전문 프로 KBS 2TV '불후의 명곡'의 꾸준한 인기도 흥미롭다.

   
▲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 /사진=TV조선 캡쳐

서구근대음악만 클래식 아니다

내 논리로 보면 그건 클래식음악에서 중시하는 작곡가 중심주의를 뒤집는 작업이다. 음악에서 작곡가가 먼저냐, 연주자가 먼저냐는 오랜 논쟁이 있는데, 작곡가 중심주의를 신앙처럼 섬기는 게 유독 클래식이다. 하지만 그건 자의식 분명했던 베토벤 등 근대 서양음악의 특징일 뿐이다. 인류가 음악을 즐긴 이후 항상 연주자가 음악 행위의 선두에 서왔다.

그걸 위력적으로 보여주는 게 트로트에서 가수의 역할이다. 일테면 '동백아가씨'를 재해석한 장사익의 깊이에 나는 매번 탄복한다. 이미자의 청승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게 나훈아의 에너지, 남진-태진아-설운도 등의 통속성과 어울려 트로트는 여전히 대중문화의 기둥이다.

그걸 음악 외적인 담론으로 확장시키면 이렇다. 조금은 못나고 흠집 있는 앞 세대의 유산을 잘만 가꿀 경우 우리 시대 문화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앞 세대가 이래서 문제이고, 저래서 못 마땅하다는 내출혈 내지 자조에서 이젠 졸업해야 할 때다. 2차 대전 이후 독립국가 중 가장 성공한 게 대한민국 역사라면 앞 세대 삶에 옷깃부터 여미는 게 우선이다.

지난 번 나는 트로트를 포함한 고전가요를 'K클래식'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그 얘기로 마무리 짓겠다. 'K클래식' 제안은 새로운 문화 인식을 전제로 한다. 클래식은 여럿, 즉 복수(複數)라는 인식이 우선이다. 사실 서구 근대음악만을 클래식이라고 규정하는 건 문화폭력에 다름 아니다.

다른 문화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악을 열등한 음악으로 몰아붙이는 횡포이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제국주의 후광 아래 만들어진 가짜 신화일 수도 있는데, 요즘은 그게 거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확실히 트로트를 포함한 옛 가요 명편(名篇)에 대한 자리매김이 문제는 문제다. 어울리는 문패를 달아줘야 하는데, 아직도 그게 없다.

'흘러간 노래'라는 문패는 엉거주춤하다. 주현미가 말한 '전통가요'도 정확한 호칭일 리 없다. 트로트를 포함한 고전가요를 'K클래식'으로 부르자는 제안은 그래서이다. 반복하지만 사실 서양 근대음악이 지구촌의 보편적 음악이 아니고 세상의 많은 종족음악(ethnic music)의 하나라는 게 요즘 음악학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트로트에 'K클래식'이란 당당한 문패를 달아줘야 옳다. 100년 가까이 즐겨온 음악에 버젓한 문패가 없다는 건 낳고 기르며 정을 쏟아온 자기 아이가 막상 이름이 없다는 얘기와 뭐가 다른가. '언년이', '소똥이' 식으로 대충 부르지 말고 정식 이름을 붙여 호적에 번듯하게 올려줘야 할 때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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