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명분을 앞세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좌절시키며 국내 증시에 충격파를 던졌다. 일각에선 대한항공에 존재한 ‘오너 리스크’가 해소됐다고 보고 실제로 주가도 상승했지만,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뒤흔드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 가능성에 대한 경계 심리도 발동되는 모습이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주총회 현장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기존 결정대로다. 결국 이 안건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 지난 27일 개최된 대한항공 주주총회 모습 /사진=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64%의 표를 받고도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이는 유독 까다로운 정관 때문이다. 대한항공 이사 선임에는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20년 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정관에 도입한 규정이 도리어 조 회장의 덜미를 잡아버린 모양새다.

이번 투표에서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11.56% 지분이 캐스팅 보트로 작용했다. 국민연금이 주총에 앞서 연임 안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외국인과 기관투자가, 다른 소액주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이른바 ‘여론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일반 대중의 여론 뿐 아니라 금융당국 수장들도 국민연금의 이번 활동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후 이행하는 긍정적인 면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저도 최 위원장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주총에서 조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대한항공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불과 하루 만인 이날 주가는 다시 약 5%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한진그룹 전반에 대한 조 회장의 영향력이 여전할 것이라는 증권사들의 연이은 분석에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향후 조 회장이 직접 이사회 참석을 할 수는 없지만, 기존 이사회 멤버들을 통해 대한항공에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쟁점은 국민들의 노후자금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의 이번 행보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로 옮겨 붙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만 200여개에 달한다”고 전제하면서 “작년에만 투자 실패로 6조원 가까운 손실을 낸 국민연금이 여론전에 몰입하며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게 반드시 ‘정의로운’ 것인지 생각해 볼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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