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보행성' 내세우며 '촛불광장'을 만들겠다는 것은 '전시행정'에 불과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서울 광화문광장을 확장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끈질긴 집착이 지난 1월 21일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제설계공모전' 결과 발표를 통해 윤곽이 드러났다. 광화문광장의 역사성과 보행성을 높이기 위해 광화문광장을 현재보다 약 4배 정도로 넓히고 현재 왕복 10차로인 세종대로를 6차로로 줄여 광화문을 기점으로 한 중심축 동쪽으로 이설한다는 계획이다.
 
땡볕 콘크리트 벌판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콘크리트 벌판 좌우로 별다른 안전시설도 없이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어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말이 광장이지 온갖 잡동사니 행사와 시위들로 난장판인 콘크리트 벌판을 지나다니자면 짜증이 난다. 얼마 전 난민촌처럼 들어섰던 세월호 텐트들을 걷어내더니 이젠 아예 광장을 확장해 추모상징물을 영구적으로 설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광장 조성 10년 만에 다시 갈아엎어야 할 필요성이나 당위성에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국가 안보와 경제의 위기 상황에 아랑곳없이 1,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광화문광장 확장공사를 하겠다는 서울시장의 의도에 대한 억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행정안전부)도 서울시 계획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서울시 입장이 엇박자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광복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기로 국가보훈처와 업무협약까지 체결한 서울시가 ‘시민 편의와 안전’을 이유로 무산시키기도 했다.
 
광화문광장 확장이라니?
 
광화문광장 확장 계획에 대한 논박 이전에 우선 광화문광장 조성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광화문광장 조성 문제는 1994년 '서울 정도 600년'과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세종로에 광장과 보행공간 조성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1995년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조성안을 발표했지만, 같은 해 7월 초대 민선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조순 시장이 광화문광장 조성안을 전시행정이라며 백지화시켰다.
 
그 후 2003년 서울시(이명박 시장)는 광장을 도로 양측에 나눠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2005년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은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를 없애고 광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같은 해 서울시는 여론조사를 거쳐 세종대로 중앙에 광장을 배치하는 안으로 확정했고, 2009년 8월(오세훈 시장) 서울시의 상징 나무이기도 한 은행나무 고목이 사라진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됐다. 세종대왕 동상도 이때 건립됐다.
 
그런데 불과 7년 후인 2016년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문가들과 '광화문 포럼'을 구성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앞장섰다. '광화문 포럼'은 당초 세종로 차도를 모두 지하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도로 지하화의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제기되면서 서울시가 설계공모전을 통해 세종문화회관 쪽 차도를 없애고 차도를 왕복 6차로로 줄여 광장 동편(미국대사관 쪽)에 설치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제설계전' 공모 당선작 조감도./사진=서울시

시위광장이 된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 인근 빌딩들은 광장에서 흘러나오는 고성능스피커의 굉음에 시달리는 게 일상(日常)이다. 평일 근무시간에도 각종 시위 구호들은 물론 이런저런 행사 무대에서 고래고래 질러대는 소리나 가무(歌舞)판에 시달린다. 광화문광장 확장이 이런 난장판을 더 키울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 이유이다.
 
개장 당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서의 시위를 금지하고 광장 사용은 '허가제'로 조례를 제정했지만, 상위법인 집시법(集示法)이 '신고제'를 규정하고 있는 가운데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으며 광화문광장은 아예 시위광장이 되어버렸다. 2016년의 대규모 '촛불시위'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세월호 텐트들과 촛불시위 상징물들이 수년간 광장을 어지럽혔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광장을 차지하지 못하는 단체들은 인근 인도까지 점령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고, 시민 통행이 많은 KT 앞 인도에는 좌파정당의 비닐천막 당사(黨舍)까지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광장을 보행자 우선의 '촛불광장'을 만들겠다니?
 
광장 조성 전 세종대로는 왕복 20차로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로 알려졌었다. 차로가 대폭 축소된 지금도 광화문을 중심축으로 남북으로 뻗어있는 세종대로는 대한민국의 위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시가 시민의 '보행성' 운운하며 이런 세종대로를 반쪽으로 줄여 한쪽 구석으로 밀어내고 광장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광화문광장 확장계획은 우선 보행자 중심이라는 전제부터가 문제이다. 토지는 사용용도별로 28개 지목으로 분류되며, 도시지역은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광화문광장 일대는 상업지역 중 '일반적인 상업기능 및 업무기능을 담당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역'으로 지정된 '일반상업지역'이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30조). 주거지역이나 녹지지역이 아닌 도심의 업무, 상업 지역을 시민의 '보행성' 우선으로 개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상업지역인 광화문 일대는 업무를 위한 차량 통행과 업무, 상업 시설 이용자들의 통행이 우선이지 일반 시민들의 산책이나 시위대의 집회나 보행이 우선일 수 없다. 보행 공간은 광화문 인근에도 많은 고궁들과 사직공원, 삼청공원, 인사동길, 삼청동길 등 여러 곳이 있다. 조금 멀리는 '서울 성곽길'과 '둘레길', 국립중앙박물관, 한강 고수부지 등도 있고 필요하다면 용산 미군부대 터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하필 수도 서울 도심의 상업지역 중심축을 교통 흐름까지 막아가며 걷는 공간으로 만들려 하는 걸까? 돌이켜보면 청계천 대역사(大役事) 후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고 세종대로와 동대문운동장을 뒤엎고 한강에 인공섬까지 띄우고도 시장 직마저 잃은 사람도 있다. 자신의 임기 중인 2021년 대통령선거 이전에 광화문광장 대역사를 마무리하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속내가 무엇일까?
 
광화문광장에 '촛불혁명'의 이미지를 각인하겠다는 발상은 더욱 가관이다. 우선, 광화문광장이 '촛불시민'만의 축제장인가? '촛불정신'을 기린다는 게 고작 광장 바닥에 상징물을 새겨 넣고 오가는 사람들이 밟게 하는 것인가? 그리고 언젠가 '촛불광장'을 '태극기광장'이나 '평화광장' 등으로 다시 뒤엎는 일은 없을까?
 
도시 설계와 도시의 미관
 
도시 설계에는 교통소통을 우선으로 해서 도시의 역사성, 상징성, 안전성, 편리성, 경제성 등과 함께 지형적 조건, 기하학적 균형과 조화, 도시의 기능적 측면 등이 고려된다. 그럼에도 교통혼란을 자초하며 광화문을 기점으로 한 좌우대칭을 흔들어 대로의 위용과 균형을 훼손하면서까지 광화문광장을 확장하겠다는 명분이 고작 '보행 친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인가?
 
이에 더해 서울시는 어디서든 경복궁과 북악산을 막힘 없이 볼 수 있도록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장군 동상을 각각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옆으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설계도면상에선 시선을 막는 구조물로 그려질 수 있을지언정 시민들의 조망 시선을 막는다는 주장은 궤변이다. 동상 좌대(座臺) 바로 뒤에 붙어 서서 북쪽을 바라보겠다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 한 시민들이 동상 때문에 시선에 불편을 느낄 일은 거의 없다.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의 동상은 문무(文武)의 상징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삭막한 콘크리트 벌판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대표적인 포토 존(photo zone)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동상 이전 문제는 발표 직후부터 반대 의견에 부딪쳐 엉거주춤하고 있다.
 
파리의 '샹젤리제'와 '콩코르드' 광장을 보라
 
광화문에서 서울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대로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으로 이어지는 '샹젤리제'를 비교해보자. '샹젤리제'는 좌우에 잘 보존된 옛 건물들에 명품 상가, 호텔, 식당, 노상 카페, 극장, 은행, 항공사 사무실 등이 즐비하여 시민들과 전세계 관광객들로 일년 내내 붐비는 거리이다. 그런데도 중앙분리대도 없이 대로 중앙을 택시정류장으로 활용하면서 '프랑스혁명기념일'과 같은 국가행사 때는 도로 전체를 행사 광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세종대로 일대는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좌우 몇 개의 상업시설들을 제외하면 정부종합청사, 대사관, 언론사, 고층 오피스빌딩들 뿐으로 일반 시민들이 한가롭게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아니고 관광명소도 아니다. 그러니 삭막한 땡볕 벌판이 시위장소 외에 별다른 쓸모가 있겠는가?
 
오벨리스크와 분수대가 있는 작은 공간이 로터리 역할을 하고 있는 파리 시내 한복판의 '콩코르드' 광장도 넓은 차로와 보도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각종 관제행사 외에 별 쓸모도 없는 서울광장에 철마다 잔디와 스케이트장을 깔았다 엎고 연중 무대시설과 행사텐트들을 세웠다 철거하기를 반복하며 엄청난 예산을 써댄다. 이러면서도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광화문광장을 확장하겠다는 서울시의 막무가내에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서울은 '촛불시민'만의 도시가 아니다
 
서울시의 '재구조화' 계획에 대해 현 종로구청장(더불어민주당)은 한 인터뷰에서 "광화문광장 조성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교통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계획에서는 교통대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 종로구청장은 건축공학과 환경설계학을 전공한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세종대왕동상 이전 계획에 대해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영원 교수는 "문화재라면 담장 너머에 경복궁이 있고 멀지 않는 곳에 창덕궁도 있다. 그런데 굳이 대로를 막아가면서까지 무리하게 문화재 복원을 한다는 건 타당성이 없다…21세기 첨단 세계, 미래로 달려가는 이 시점에, 대한민국의 얼굴인 광화문에 옛 건물 몇 개를 지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발상은 지극히 단순한 복고주의적 발상이자 과거로의 회귀이다."라며 한탄했다.
 
그는 또한 세종대왕동상은 시민들의 여론을 두루 수렴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전문가 20여명의 자문과 고증을 거쳐 제작, 설치한 것이라며, "광화문광장이 서울에 있다 하여 서울시만의 소유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전국민의 광장이다. 따라서 서울시가 함부로 손을 대서 뜯어고칠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은 도시 한복판에 산과 강이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하고 곳곳에 역사의 발자취가 살아 숨쉬는 품위 있는 도시이다. 서울은 '촛불 시민'만의 도시도 아니고 시장이 자신의 치적(治績)을 쌓겠다고 멋대로 뜯었다 고쳤다 할 수 있는 놀이터도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과거 오세훈 시장이 벌인 공사들에 대해 '전시행정'이라고 비판했듯이 시민의 '보행성'을 내세우며 광화문에 '촛불광장'을 만들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계획이야말로 '전시행정'이자 '정치적 쇼' 아닐까? 그리고 이 나라 정세가 '촛불광장' 조성에 시간과 돈을 쏟아부을 만큼 여유롭고 한가한가? 과거 광화문광장의 태극기 게양이 무산된 것처럼 정부가 민의를 외면하고 서울시의 전횡(專橫)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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