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바른 합의’를 강조하면서 비핵화 빅딜안과 대북제재 유지를 고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에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의 빠른 시일 내 북미정상회담 개최도 요청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은 단계적이다. 빨리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빅딜 합의를 강조했다.

앞서 최고인민회의를 앞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핵협상 버티기‘를 천명한 바 있다.

따라서 비핵화 협상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며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4차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차기 북미정상회담까지 재촉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지난 2월 말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이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지 못하고 곧바로 워싱턴으로 향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굿 이너프 딜’ 카드를 제시하며 남북경협 재개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자고 설득했으나 트럼프행정부가 수용할 만한 북한의 비핵화 후속조치는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열어 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는 완전한 비핵화 대 경제보상이라는 ‘빅딜’에 대한 북한의 수용 여부에 달렸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제안한 스몰딜을 받을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 딜이 어떤 것인지 봐야 한다. 다양한 스몰딜들이 이뤄질 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 우리는 빅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빅딜이란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열릴 수 있다”면서도 “그것은 단계적 절차(step by step)다. 서두를 일이 아니다. 나는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즐겼고 매우 생산적이었다. 만약 그것이 빠르게 진행된다면 적절한 딜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미 정상회담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그것 역시 열릴 수 있다. 대체로 김 위원장에게 달렸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필요한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경제협력에 재량권을 줄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우리는 현재 인도주의적인 사안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솔직히 한국이 북한에 식량 등 다양한 것들을 지원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 양 정상의 부인이 11일 낮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로즈가든을 통해 함께 정상회담장으로 향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청와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는 김정은 위원장의 달라진 결심에 달렸다는 것으로 하노이회담에서 제시한 빅딜을 북한이 수용할 것을 거듭 촉구한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밝혀왔던 연이어 ‘조기 수확’을 거두는 방식의 ‘굿 이너프 딜’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아 빅딜 외 다른 방식의 협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와 같은 남북경협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선을 그었다. 대신 인도주의적 지원을 언급해 대북제재 유지에 대한 입장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얼마나 지지하나’라는 구체적인 질문이 나오자 “올바른 시기에 나는 큰 지지를 보낼 것이다. 지금은 올바른 시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문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앞두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하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당초 15분으로 예정돼 있던 단독회담이 30분 가까이 이어졌지만 정작 문 대통령과 배석자없이 보낸 시간은 2분 남짓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분간 모두발언을 한 뒤 예정에 없던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고, 기자회견은 27분동안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 때에도 문 대통령을 옆에 둔 채 34분간 기자들의 돌발질문에 답했다.

다만 단독회담에 이어 양국 핵심 참모가 참석한 소규모회담과 확대회담은 각각 28분간, 59분간 진행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소규모 회담이 사실상 단독회담이었다”며 “소규모회담에서 양 정상이 하고 싶은 얘기, 중요한 얘기가 모두 오갔다”고 말했다.

이번에 한미 양국은 공동성명이나 공동 언론발표 없이 양국의 입장을 담은 개별 언론발표를 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발표한 정부의 언론발표문은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차기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협력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가까운 시일 내 초청한다’는 내용에 방점이 찍혔다.

반면 백악관 세라 샌더스 대변인 명의의 언론발표에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와 한미 간 긴밀한 공조작업’이 강조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번에 한미 간 이견이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질문을 받자 “한미 간의 큰 이견이 노출됐다고 보지 않는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한미는 그러한 의견들에 관해서 아주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의 시기나 장소 등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번에 미국의 북미대화 재개 의지를 확인하면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대화 재개의 모멘텀을 살리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동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또는 남북 접촉을 통해 한국이 파악하는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알려달라”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에게 북미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계속 맡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제재를 통해 압박하는 세력을 적대세력”이라고 말한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 선뜻 응할지는 미지수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 만한 긍정적인 합의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이날 라디오방송에서 “서로 접점을 만들지 못했다. 지난번 하노이(회담)가 노딜이었다면 이번 워싱턴(회담)도 노딜”이라고 말했다.

해외 주요언론들도 한미 간 대북방법론에 균열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행정부는 비핵화 협상에서 여전히 빅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북한과 소규모 협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한미는 북한에 대한 비핵화 설득 방법론을 놓고 균열을 보여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