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등 5가지 감정 뒤섞여…전문기관 도움 받아야
   
▲ 정성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떤 가족 중 치매초기진단을 정신과의사로부터 받은 분이 1명 있다고 생각해 볼까요. 이분은 70대 초반의 할머니입니다. 이 가족에는 4명의 식구가 더 있습니다. 할머니의 남편, 큰아들, 작은아들, 막내딸이 이 할머니의 치매증상을 알게 되었죠.

이 치매할머니는 원래 성격이 불같은 분입니다. 처음 병원에 정신과의사를 만나러 가던 날 큰아들, 작은아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갔습니다. 두 아들은 어머니에게 종합병원에 건강검진 받으러 간다고 대충 둘러댔습니다.

진료실에서 큰아들이 어머니 눈치를 살피며 정신과 의사에게 어머니가 치매같다며 조심스레 증상에 대해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할머니는 두아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이 00자식아! 이 에미가 치매라고…." 소리치며 큰아들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또 할머니는 작은아들을 손과 발로 때렸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당황했고, 곧 이어 두 아들은 어머니가 무서워 진료실 문을 열고 재빨리 도망갔습니다. 할머니는 두아들을 잡겠다며 심힌 욕설을 퍼부으며 쫓아갔습니다.

안타깝지만 이 장면은 현실이고 사실입니다. 체격이 산만한 큰아들도 치매어머니가 뺨을 때리면 맞아야지요. 왜냐하면 사랑하는 어머니이니까요. 할머니의 남편은 병원주차장 차에 숨어서 벌벌 떨기만 합니다. 막내딸은 직장일이 바빠서 병원에 오지 못했습니다.

찬찬히 이 5명 가족의 마음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이 가족의 마음은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전쟁터보다 더 혼란스럽고 복잡합니다. 5가지 감정이 섞여있기 때문이죠.

이 5가지 마음은 부정(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 수용(Acceptance )을 가리킵니다. 이 5가지 마음은 서로 왔다갔다 하고, 순서대로도, 거꾸로도 나타나서 가족의 마음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치매할머니는 자신이 치매라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부정합니다. 동시에 분노가 폭발한여 가슴에서 머리끝을 통과하여 하늘로 치솟습니다. 원래 불같은 성격인데, 치매증상으로 인해 분노가 더욱 강력해집니다.

자신을 치매환자라고 말한 큰아들이 너무 미워 뺨을 세게 후려쳤습니다. 사실 치매증상이 없던 과거에 할머니는 큰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아들바보 어머니였지요. 너무도 사랑하던 큰아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 미움도 그만큼 커지게 되거든요.

평소 바빠서 할머니를 자주 못 본 막내딸은, 어머니가 치매라는 사실을 인정못해 계속 부정하고 자꾸만 화가 납니다. 왠지 큰오빠가 엄마를 잘 돌보지 못해서 치매가 생긴것은 아닌지, 큰오빠가 몹시 밉고, 작은오빠와 아빠도 싸잡아서 미워지거든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켠에선 자기자신과 협상하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치매란 병이 사라지거나 완전히 낫기만 한다면, 앞으로 엄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착한딸이 되겠다고. 심지어 매일 밤마다 간절하게 기도하며 신에게 맹세하기도 합니다.

그후 치매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해서 치매전문치료를 받게 되고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하여 외래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 과정동안 막내딸는 계속 부정하고, 분노하고, 협상한 후에 많이도 지쳤는지 우울해졌습니다. 할머니는 치매증상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았고, 집에서 지내며 주간방문요양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잘 지내십니다.

결국 막내딸은 우울한 기분 끝에 이 모든 사실을 수용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여전히 마음 한켠이 먹먹하고, 바로 그 밑에  큼지막한 돌덩어리가 들어있었지만요. 그리하여 막내딸은 엄마를 있는 현실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중에 이런 환자가 있다면 어떻게 하실건가요? 대답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정성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천소망병원 통합진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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