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제·공수처 설치 패스트트랙은 '민주 독재'에 대한 경고음
   
▲ 윤주진 객원논설위원
"헌법수호 독재타도"
2019년 여의도 국회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진 구호다. 그런데 이 구호를 외친 쪽은 이른바 '민주화 운동세력' 계승 정당을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이 아닌 자유한국당이었다. 그래서인지 反자유한국당 진영에서는 멸시와 조롱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당신들이 독재타도를 외칠 자격이 있느냐"라는 식의 야유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존영을 벽에 걸어둔 자유한국당과 독재타도는 일견 어색해보일 수도 있겠다. 그 이유와 동기가 어찌됐든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전두환-노태우 정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권위주의 통치세력과 민주화세력이 혼합 정당을 구성했고, 그것이 오늘 자유한국당의 뿌리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과연 자유한국당의 '독재타도'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구호이자 '과민반응'으로 볼 수 있을까. 또, 자유한국당은 독재타도를 외칠 자격이 없는 정치 세력일까.

독재(Tyranny)의 얼굴은 다양하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독재의 다양성, 다면성은 이미 역사를 통해 입증된 팩트다. 히틀러의 독재와 김일성의 독재는 다른 것이고,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독재와 이라크 후세인의 독재는 또 다르다.

그리고 독재는 그 정도에 따라 스펙트럼도 넓다. 전체주의 체제를 극단적 형태의 독재로 본다면, 민주주의 질서 안에서의 일부 권위주의 정치도 독재적 요소를 담고 있다. 또 1인 독재가 있는가 하면, 집단지도체제에 따른 독재도 있다. 이견이 있겠으나, 여전히 중국은 집단지도체제에 따른 일당독재 국가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독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무엇이 '독재가 아닌 체제'라고 설명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꽤 유의미한 독재에 대한 이해의 시도다. 아마 적잖은 이들이 '민주주의'라는 대답을 내놓지 않을까 싶다. 소위 '반독재 민주화'라는 레토릭에 꽤 익숙한 한국사회이니 말이다.

   
▲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은 의총에서 발언 중인 황교안 대표.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하지만 틀렸다. 민주주의는 독재의 반대말이 아니다. 독재의 반대말은 권력 분산이다. 민주주의가 독재의 반대말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민주독재'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충분히 독재의 수단이 될 수 있다. 히틀러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움켜 쥐었다. 차베스 역시 한 때 민주주의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이것이 민주와 독재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해주는 단적인 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설치를 위한 패스트 트랙 강행처리는 그렇다면 독재 시도의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일단 선거제를 '다수의 논리'로 처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독재적인 정치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어떻게, 어떤 절차에 의해 선출할 것이냐'라는 민주주의에 있어 본질과 같은 제도의 결정을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여서 통과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소수에 대한 존중'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충분히 선거제 개편을 통해 상대 정치세력을 완전히 '말살'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거제만큼은 다수결이 아닌 합의제에 의해 고쳐나가는 것이 적어도 '독재가 아닌 것'에 가깝다.

공수처 역시 우려가 쏟아진다. 앞서 이야기했듯 독재의 반대 개념은 '권력 분산'이다. 그것이 민주공화정에서 '공화'의 가치를 보다 구체화한 개념이다. 공화정이 지탱되기 위해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삼권분립이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힘이 의회와 사법부에 각각 있어야만 비로소 권력이 분산되고 독재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공수처는 바로 그러한 삼권분립의 가치와 충돌한다. 물론 판사, 검사, 국회의원도 혐의가 있다면 수사를 받아야하고 또 처벌도 받아야 한다. 삼권분립이라고 해서 사법부와 입법부가 치외법권을 쥐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 시도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에 명시된 질서다.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부여한 그 맥락을 우리는 다시 꺼내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직속 수사기관이 사법부, 입법부를 상대로 마음껏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를 수 있다면 거기서 오는 삼권분립의 해체 우려는 쉽게 해소하기 어렵다.

연동형 비례제와 공수처 설치 패스트 트랙은 그런 의미에서 '민주 독재'로 대한민국을 잡아 당기는 위험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독재'로 규정하고 타도하겠다고 외치는 것은, 자유한국당의 자격 시비를 떠나 결코 과하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은 늘 그냥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를 강조해왔다. 그 차원에서라면 오늘날 시도되는 민주독재에 대한 비판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여당과 야3당은 진정 '개혁 의지'를 갖고 연동형 비례제와 공수처 설치를 강행하는 것일까. 그 의도를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만약 순수한 개혁 의지더라도 그 외관이 독재이고 또 결과가 독재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당명에 포함된 민주가, 어느새 '민주독재'가 될 수 있다. 정의당의 '정의'가 '정의로운 독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정치에서의 공당이라면 말이다. /윤주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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