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모이기 힘든 사회원로들을 대거 모시는 것을 보고 청와대가 국정운영 기조를 전환하려는 줄 알았다.”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의 12인 사회원로 초청 간담회 이후 여권에서 나온 목소리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시작하면서 적폐청산 완결을 다짐했다. “이제 적폐수사 그만하고 통합으로 나가야 하지 않냐는 말씀도 많이 듣는다”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수사에 대해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고, 또 통제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말해 지금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한 참석자들의 우려는 다음날 일부 언론을 통해 불거져나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당일 사후브리핑에서 밝히지 않았던 내용이다. 

문 대통령에게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실패로 끝난 것 같다”며 “계속하면 정치에 치명타를 준다.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송 교수는 또 “촛불민심이 왜곡됐다”고 지적하며, 촛불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은 중간 단계인 시민사회활동을 거치지 않고 바로 광장으로 나갔다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 그 중간을 노동조합이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이 이익집단화돼 개혁도 안되고 미래담론 생성도 안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대변인이 당일 밝힌 내용 중에도 문재인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고언이 많았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민주당이 여당이 된지 2년이 됐는데도 야당처럼 보이고 있다. 융통성을 보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나 김우식 전 국무총리는 ‘탕평 인사’, ‘야당 협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대신 청와대는 3일 문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선 적폐청산 후 타협’이라고 표현한 언론보도를 부인하는 해명을 내놓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마치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읽혀진다”며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날 브리핑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에 대해 빨리 진상 규명하고 청산을 이룬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자는 데 공감한다면 그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얼마든지 협치하고 타협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도대체 언론보도의 무엇이 틀렸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데도 이 고위관계자는 “너무 이분법적으로, 적폐청산이 이뤄져야 타협이 이뤄진다로 보는 건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실 문재인정부가 자신의 임기 내에 적폐청산을 완결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적폐청산을 가치기준으로 삼아 칼을 휘두를 때 더 큰 적폐가 생기기 마련이다. 오랜 관습처럼 돼버린 부조리를 도려내는 것은 제도 개선으로 해야 지속력이 생기는 법인데 단기간 인적청산에 맞춰지면 승복하지 못하고 증오와 보복만 쌓게 된다. 

더구나 적폐청산을 하기 위해 ‘협치’와 ‘통합’을 뒤로 미룬다는 것은 정치를 안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툭하면 '벼랑끝 전술'을 쓰는 북한 김정은정권을 상대로 중재 역할을 자처한 문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대하는 관심과 포용력의 절반만 야당을 향해 쏟았어도 국민때문에라도 야당이 협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정권 초기 청와대 지시로 각 정부부처에 ‘적폐청산 TF’가 만들어지고, 문 대통령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돈봉투 사건’부터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김학의‧고 장자연 사건‘ 등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직접 지시하면서 적폐청산은 국민들 사이에 ‘정치탄압 프레임’으로 인식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권 내에서도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커지는 이유는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수사가 무죄로 판명되는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특히 청와대의 연이은 '인사 참사' 등 실책이 하나 둘씩 쌓이는 것과 무관치 않았다. 

여기에 ‘경제 불안’과 ‘의회민주주의 실종’이라는 뚜렷한 현상은 현 정권이 가장 두려워야해야 할 책임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라도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통합정부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진정성 있게 ‘준연정’의 형식을 취해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보수인사를 앉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또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청와대 1기 핵심 참모들이 너무 오랫동안 권력을 누리면서 의회민주주의가 실종됐다”는 푸념도 나왔다. “민주당 안에 견제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야당과 타협 못하고 싸움만 하는 여당으로 전락했다”, “문 대통령이 프레임을 바꾸려면 사람부터 바꿔야 한다”는 평가이다.

야당의 반발은 그렇다 치고 여권에서도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원로간담회라는 형식을 빌어 "이제는 통합하고 협치하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정책기조 고수를 재확인했다.

지금처럼 엄중한 경제 상황 속에서 추경예산과 개혁법안이 시급하다면서도 문재인정부가 적폐청산의 깃발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고 있는 것은 ‘국민통합’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야당과 협치로 국민의 절반도 끌어안는 '통합'이 아니라 적폐세력을 발굴해 처단하는 '분노'가 지속되어야 이해찬 당대표의 말처럼 20년 장기집권을 누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이날 오찬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김우식 전 부총리, 송호근 석좌교수, 김영란 전 대법관 등 12명이 참석했다./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