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가사집·한양대 본관도 등록…이자해자전 초고본 등은 예고
   
▲ [사진=문화재청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구한말 국운이 기우는 현실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해 자결한 매천(梅泉) 황현(1855∼1910) 선생이 남긴 문집과 유물 6건이 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매천 황현 매천야록'(사진), '매천 황현 오하기문', '매천 황현 절명시첩', '매천 황현 시·문(7책)', '매천 황현 유묵·자료첩(11책)', '매천 황현 교지·시권(2점)·백패통'을 각각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7일 밝혔다.

전남 광양 출신인 매천은 젊은 시절 상경해 강위·이건창·김택영과 교유하며 '한말 4대 시인'으로 꼽혔고, 구례로 내려간 뒤에는 저술 활동에 몰두했는데,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지식인으로서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절명시'(絶命詩)를 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 절명시첩은 등록문화재 제746∼748호로 지정됐다.

매천야록은 흥선대원군이 집정한 1864년부터 일제가 국권을 빼앗은 1910년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글로, 모두 7책으로 구성됐으며, 위정자들이 저지른 비리와 비행, 일제 침략과 우리 민족의 저항 양상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상세히 기술했다.

오동나무 아래에서 글을 썼다는 뜻인 오하기문은 매천야록의 초고로 추정되며, 친필 원본 7책으로, 이 책도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을 비롯한 항일활동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절명시첩은 매천의 절명시 4수가 담긴 첩으로, 서간과 상량문을 포함하는 것이다.

등록문화재 제749-1호로 지정된 매천 황현 시·문(7책)은 이름난 문장가인 매천이 1880년대부터 1910년까지 지은 시 548수를 모은 시집 4책과 문집 3책이다.

또    매천 황현 유묵·자료첩(11책)은 황현 저술 및 그가 지식인과 주고받은 편지·신문기사를 묶은 자료이고, 매천 황현 교지·시권(2점)·백패통은 황현이 과거 시험에 제출한 답안지인 시권(試券)과 교지(敎旨), 백패통 등이다.

문화재청은 매천 황현 자료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활동한 지식인의 우국충절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료라고 평가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윤희순 의병가사집'과 '서울 한양대학교 구 본관'도 각각 문화재로 등록했다.

의병가사집은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1860∼1935) 선생이 의병 사기 진작을 위해 지은 낱장 가사를 모은 순한글 가사집이며, 여성 독립운동가의 문집으로서 희소성이 있고, 국어학과 국문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 평가된다.

지난 1956년 건립된 서울 한양대 구 본관은 외관을 석재로 마감하고 중앙부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세운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천안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이자해자전 초고본'과 '한국독립운동사략(상편)',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이자해자전 초고본은 내몽골 지역에서 의사로 활동한 이자해(1894∼1967)가 남긴 전기로, 서간도 지역에서 일어난 대한독립단의 조직과 변화, 한국광복군과 연계해 전개한 병력 모집 활동에 대해 서술했다.

한국독립운동사략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한 김병조(1877∼1948)가 쓴 책으로, 3·1운동의 배경과 독립운동 양상, 일제 탄압 실태, 임시정부 수립과 통합 과정을 정리했다.

구 이리농고 본관은 1963년 제2본관으로 조성한 붉은 벽돌 건물로, 출입구 상부 계단실과 현관부를 화강암으로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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