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사건진행, 액자형식 구조, 바닥과 벽면까지 무대 활용

평일 저녁 8시 대학로 소극장에 연극 ‘예수의 사랑’을 보려고, 청년들이 길게 줄을 섰다. 공연 시작 30분전이다. 객석은 70좌석 정도, 꼭 학교 교실처럼 금새 관객들로 가득찼다.

공연 안내자가 “여기는 대학로에 자라잡은 소극장이지만, 연극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드리는 공간이다”면서 “공연을 보면서, 예수님을 직접 보거나, 음성을 듣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소개한다. 관객들에게 “예수님을 3번 불러 주세요”라고 주문하자, 모두 “예수님” 외친다.

빛이 사라졌다. 벽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기괴한 소리가 허공을 때린다. 모습을 드러낸 무대엔, 검은 마귀가 어떤 사람을 조종하는 장면이다. 아기 예수를 죽일려고 음모를 꾸몄던 헤롯대왕이다. 마태복음 2장에 나온다. 헤롯은 권력의 끈에 메달린, 마귀의 장난감처럼 묘사됐다. 그 마귀들이 관객들쪽으로 기어오다가, 순간 암전.

예수의 3대시험이다. 마귀들이 ‘돌로 떡을 만들라’,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모든 권력을 줄테니, 한번만 절하라’고 요구하자, 청년 예수는 단호하게, 비장한 목소리로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령한다. 복음서에 기술된 마귀와 예수의 싸움이 대화식 답변이 아니라, 치열한 내면적 전쟁이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수가 승리하고, 장면이 바뀐다.

하얀 배경의 무대위로 청년 예수가 세마포옷을 입고 등장한다. 모든 장면전환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점차 무대는 성경속으로 들어가고, 관객은 무대를 중심으로, 예수의 산상수훈을 직접 듣는, 이천년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된다. 예수는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열처녀 비유를 설명한다.

음악이 빨라지더니, 연극 속에서 또 다른 연극이 펼쳐진다. 액자형식 구조다. 예수의 열 제자들은 5명씩, 5명씩 나뉘어, 열처녀 비유의 연극을 연극속에서 새롭게 공연한다. 연극과 현실이 신비롭게 겹쳐지면서, 예수는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찬송가가 무대에 울려퍼지기도 하고, 극장과 교회의 간격이 점차 좁아진다.

연극속에서 다섯 제자들은 실제로 기름을 사러 갔다가, 문이 닫히자, 구원에 탈락됐다고 낙심하면서, 연극속 현실로 장면이 전환된다. 탁월한 연출기법이다. 연극과 실재, 과거와 현실의 벽이 자주 겹치면서, 관객을 무대에 있게 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연극 '예수의 사랑'에서 액자형식으로 펼쳐진 '신랑을 맞는 열처녀 비유'의 한 장면.
▲연극 '예수의 사랑'에서 액자형식으로 펼쳐진 '신랑을 맞는 열처녀 비유'의 한 장면.



역사속에 갇혀있던 예수의 사건이 실재 무대에 부활했고, 좁은 공간이지만, 연극 ‘예수의 사랑’은 예수를 한국적으로, 현대적으로, 사실적으로 밀도깊게 표현해 냈다. 특히, 예수가 왜 죽어갔는지, 어떻게 죽어갔는지, 죽음의 진정한 참뜻이 무엇인지,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가 ‘지옥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자, 무대 바닥이 쩍 갈라지더니, 제자들이 혼비백상 도망친다. 온통 암흑이다. 검은 천이 무대 중앙에 자리잡고, 기괴한 괴물들이 출연하면서, 예수는 영적 현상의 실체를 눈물로 호소한다. 권력, 재물, 타락, 잡념 등등 하나님을 최우선에 사랑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 마귀의 틈이 된다고 울부짖는다. 관객들은 침만 꼴깍 꼴깍 삼키고, 죽은 듯이 객석에 붙었다.

가룟 유다가 재물에 붙잡혀, 예수를 팔아 넘기고, 로마 병정이 쇠사슬과 몽둥이로 예수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모든 장면이 느려지고, “재판 받을 때 이미 팔이 탈골 상태였다. 재판이 수십번이었다. 물었던 거 또 물어서 정말 미칠 듯이 괴로웠다. 사탄이 사방에 지키고 있었다”고 예수가 울부짖자, 관객들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제자들이 도망친 자리엔, 객석의 관객들이 십자가 사건의 참여자가 되어, 모두 베드로처럼, 마리아처럼, 도마처럼, 니고데모처럼, 요셉처럼, 백부장처럼 고통을 함께 한다. 2천년 전에도, 관객들처럼 십자가 사건을 쳐다만 봐야했을 제자들의 아픔도 느껴졌다. 그때 청년 예수는 실재 사건으로 골고다를 걸었었고, 연극을 통한 간접 경험으로도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통증이다.

온갖 조롱속에 ‘하이데거의 내던져짐’처럼 가시관에 홀로 쓰러진 예수가 울고, 침묵도 입을 다문다. 로마 병정이 채찍을 내리치자, 십자가 형틀을 짊어진 예수의 등판이 드러났다. 150회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두들겨 맞았던 흉터자국이 수북했다. 청년 예수의 그 흔적이다.

굵은 쇠망치가 예수의 손에 대목을 내리치자, 연극에서 예수는 대못을 움켜잡고, 십자가에 메달린다. 이천년전 청년 예수는 손바닥이 보이도록 대못이 박혔을 것이다. 두 다리사이에 박힌 굵은 대못이 발등에 나무박듯 박혔을 것이다. 죽음을 내걸면서까지 예수가 지키고자 했던 그것이 무엇일까


연극 '예수의 사랑'에서 십자가를 지고 있는 청년 예수, 김경태 배우가 맡았다.
▲연극 '예수의 사랑'에서 십자가를 지고 있는 청년 예수, 김경태 배우가 맡았다.



“다 이루었다”는 말을 남기고, 예수는 고개를 떨군다. 음악도 멈추고, 성전 휘장이 찢기듯, 무대의 벽면이 쓰러진다. 성만찬식이 있었던 목요일 밤 7시,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혔던 밤 12시, 십자가에 못박힌 금요일 정오, 그리고 그날 오후 3시 청년 예수는 운명했다.

‘배우는 살아있기에’ 무대 십자가에서 예수의 갈비뼈가 움찔 움찔 움직인다. 그렇게 예수의 사랑도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지금도 저렇게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일까 연극이어서 죽지못한 배우의 숨결처럼 역사의 무대에서 여전히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은 아닐까


마리아가 눈물을 머금고, 죽은 예수의 못박힌 발등에 입술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