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국민(독자)을 대신해서 질문하는 것…듣는 것 보다는 질문이 본연
   
▲ 윤주진 객원논설위원
당초 문재인 대통령과 KBS의 '지상 최대 하모니'가 될 줄 알았던 대통령 대담이 엉뚱한 논란으로 번졌다. 지지자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문답', 비판 세력 입장에서는 '뻔한 문답'이 오고갈 줄 알았던 대담이 생각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에게 불편한 심기를 안겨준 것이다. 

대담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태도 논란'이 번지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이미 린치 민주주의의 장(場)으로 전락해버린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저 자를 매우 쳐라'라는 식의 청원이 올라왔다. 

극렬 지지층이 벌이는 인터넷상의 집단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굳이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절대로 등판해서는 안 될 사람이 링 위에 올랐다. 바로 이낙연 국무총리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자"라며 "기자들은 '물을 문'자로 잘못 아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 듣는 일이 먼저입니다. 동사로서의 '신문'은 새롭게 듣는 일"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송현정 기자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다.

한자의 뜻 그대로만 풀이하면 실제로 새롭게 듣는다는 뜻의 신문(新聞)이다. 신문의 어원은 중국의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싶다. 남초신문(南楚新聞)이라는 수필 서적이 있었는데, 당시 떠도는 풍문을 모아 놓은 책이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풍문, 새롭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의 모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들음(聞)'의 최종 주체는 누구일까. 만약 기자나 신문의 제작자가 그 들음의 최종 종착지라면 굳이 돈을 들여 종이에 글을 써서 전국에 배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나만 들으면 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니 말이다. 

대부분의 신문은 '전달 매체'에 불과하다. 영어의 News도 마찬가지 의미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새로운 소식들의 모음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바로 해당 신문, 매체의 구독자, 수요자다. 일간지라면 전 국민이 해당되는 것이고, 전문지라면 말 그대로 전문가들이 '듣는 사람들'이다. 보편적인 신문의 목적을 고려한다면, 결국 '새로운 소식을 듣는' 주체는 바로 국민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KBS 송현정기자의 대담이 엉뚱한 논란으로 번졌다. 내용보다 송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는 마녀사냥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가세했다. 이 총리는 페이스북에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자"라며 "기자들은 '물을 문'자로 잘못 아신다"고 했다. 이는 신문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과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사진=연합뉴스

그런 의미에서 이낙연 총리의 지적은 틀렸다. 기자는 국민들이 듣고자 하는 것을 대신 물어주는 직업이다. 그래서 흔히 기자들은 질문을 회피하는 정치인이나 권력가들에게 이렇게 따져 말하곤 한다. "저는 국민을 대표해서 묻고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적잖은 기자들이 국민의 뜻을 빙자해 사생활을 침해하고 본질과 무관한 가십성 질문을 해서 문제이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다는 저 말 자체는 사실 틀리지 않다. 기자란 묻는 직업이다.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들어야 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질문하는 업이다. 

단순히 틀린 지적이라면 다행이겠으나,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대통령 다음의 행정부 수장인 국무총리가 기자들에게 "들으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후진적인 언론탄압의 대표적 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인 출신의 총리라는 점에서 더더욱 이해되기 어렵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해주기 위해 묻고 또 묻고, 걷어차이고 밀쳐지는 과정에서도 물어야 하는 기자들에게 "잘 듣는 일이 먼저"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듣는 대로 써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부와 집권세력의 잘못된 언론관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한 외신 기자가 여당과 좌파 세력에 의해 심각한 공격을 당했던 사례, 청와대 대변인이 특정 언론을 겨냥해 공격성 발언을 쏟아낸 점 등은 보수언론, 비판언론에 대한 이 정권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오죽하면 외신기자들까지 성명을 내고 비판을 했겠는가. 이 정권 사람들은 줄기차게 '민주'를 외치지만 사실은 언론의 '자유'는 아직 어색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역사는 분명히 말해준다. 언론을 겁박한 정권은 단 하나도 온전히 살아남지 못했다. 왜냐하면 언론은 결코 듣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언론에게 그저 들으라고 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에게 듣기만 하라는 겁박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언론이 침묵하면, 결국 국민이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윤주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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