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호색한 소리 듣지만, 실비아 왕비와의 유명한 순애보
스웨덴은 참 많은 이야기를 품은 나라다. 민주주의 정치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사회 복지를 이야기 할 수도 있다. 회사 다니기 좋은 나라니, 아이들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이니, 국회의원이 특권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나라니 하는 이야기들도 있다.바이킹으로 대변되는 스웨덴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무궁무진하다. 유럽 30년 전쟁의 최강국이었고, 러시아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나라였으며, 핀란드를 670년, 노르웨이를 150년이나 지배했던 북유럽 역사의 중심이다.  신비한 신화의 나라이기도 하다. 천둥의 신 토르나 인류 최후의 전쟁 라그나토크 등 할리우드 영화와 모바일 게임에 등장하는 신화도 스웨덴의 이야기이다. 하루 종일 해가지지 않는 백야나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는 극야, 밤하늘의 오묘한 오로라도 스웨덴의 것이다. 아바의 나라인 줄은 알지만, 컴퓨터 마우스와 GPS를 처음 발명한 나라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에서 발명 특허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지만, 한 편으로는 특허를 내지 않고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발명품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케아(IKEA)와 볼보(Volvo)의 나라,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음원 제작 수출국인 스웨덴, 그 이야기들을 시작해보기로 하자. [편집자 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웨덴 국왕 이야기

   
▲ 이석원 칼럼니스트
스웨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스웨덴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러나 늘 동네북이기도 한', 하지만 아직은 분명히 '스웨덴의 심장'이기도 한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브로 시작해본다.

1인당 국민소득 6만 달러,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순위 10위권에는 언제나 드는 스웨덴이지만 이들은 대단히 검소하다. 화려하고 비싼 것들에 열광하지 않을 뿐 더라 그렇게 하고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까지 한다.

스웨덴 왕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스톡홀름의 드로트닝홀름 궁전은 스웨덴 국왕의 거처라고 하기에는 매우 소박하다. 프랑스나 독일의 어느 영주도 이보다는 큰 궁전에서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현재 이 궁전의 주인 칼 16세 구스타브 왕과 그의 부인인 실비아 왕비. 1973년 9월 15일 즉위한 구스타브 왕은 지난 2월 20일부로 스웨덴 역사상 가장 오래 왕위를 지킨 국왕이 됐다. 44년 6개월. 영광과 찬사를 받으면서도 스웨덴 시민 중에는 "이제 그만하지. 빅토리아(구스타브의 장녀. 왕위 계승권자)도 영국 찰스처럼 늙어만 가는데…" 하는 푸념을 한다.

현재 스웨덴 시민들에게 구스타브 왕의 이미지는 한 마디로 '바람둥이'다. 해외 순방지에서 스트립 클럽에 드나들다가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고, 대놓고 바람을 피기도 했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해도 유부남 유부녀에게만은 엄격한 성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고, 가족의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국왕은 '가정의 배신자' 이미지가 강한 것이다.

그런데 구스타브 왕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구스타브 왕의 의 실비아 왕비에 대한 사랑은 유명했다.

   
▲ 드로트닝홀름 궁전 - 스톡홀름 시내 중심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드로트닝홀름 궁전. 현재 칼 16세 구스타브 국왕과 실비아 왕비의 거처이며, 스웨덴 왕실의 정궁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고, 궁전의 일부는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다. /사진=이석원

구스타브는 1946년 증조부 구스타브 5세가 왕위에 있을 때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구스타브 6세 아돌프는 당시 왕세자였고, 아버지인 구스타브 아돌프는 그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그 바람에 그는 조부가 왕위에 오르자 4살의 나이에 왕세손이 됐다.

1968년부터 군에 복무한 구스타브 왕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독일에 갔다가 브라질계 독일 여성 실비아 좀멀라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당시 스웨덴 왕실에는 귀천상혼제라는 것이 있었다. 즉, 왕이 될 사람은 왕족이거나 그에 상응하는 신분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만 했다. 당시 스웨덴 왕실에서 왕이 될 수 없는 자는 여자이거나 평민과 결혼한 왕족이었다. 그러니 평민인 실비아와 결혼한다면 구스타브는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조부는 손자에게 실비아와 헤어질 것을 명령한다. 실비아와 결혼하면 왕세손의 자격을 박탈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구스타브는 이미 할아버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실비아와 결혼해 왕위를 포기하는 것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는 묘안을 낸다. 할아버지에게는 ‘실비아와 결혼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1973년 구스타브 6세 아돌프 왕이 승하한다. 그리고 구스타브는 왕이 된다. 그는 왕위에 오르면서 의회와 함께 왕위계승법을 바꾼다. 평민과 결혼해도 왕위에 오를 수 있고, 남녀의 구분 없이 첫변째 자녀가 왕위계승권을 가지는 것으로. 그리고 3년 후 독일에 있던 실비아는 드로트닝홀름 궁전의 안주인이 된다.

   
▲ 스타브 왕과 실비아 왕비 - 스톡홀름 중심 감라스탄에 있는 스웨덴 왕궁 앞에 선 국왕과 왕비. 스웨덴의 국경절인 6월 6일 국왕은 이곳에서 스웨덴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는 것으로 국경절 축제가 시작된다. 실비아 왕비는 스웨덴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사진 = 이석원

구스타브 왕은 결국 왕위도,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실비아도 차지할 수 있었다. 대신 그는 그때까지도 남아 있었ㄷ4JS 국왕의 통치권인 총리 임면권과 법안 승인권을 의회에 내주었다. 의회의 요구도 있었지만, 국왕 스스로 모든 권한을 내려놓은 것이다. 국가의 원수로서 그가 가진 유일한 권한은 스웨덴 주재 외국 대사에 대한 신임장을 주는 것 뿐이다.

결국 구스타브는 실비아를 얻기 위해 전 세계 입헌군주국의 국왕 중 가장 권한이 약한 국왕이 됐다. 이 때 구스타브에 대한 스웨덴 시민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왕위 이상의 왕권을 포기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실비아에 대한 사랑은 오랫동안 스웨덴 시민들의 기억을 아름답게 했다. 마치 동화 속의 왕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지난 해 평창 동계올림픽 때 구스타브 왕은 소리 소문 없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영접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도 없었다. 그는 휴가를 내고 국왕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 스웨덴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 것이다. 자비로 항공권을 끊어서, 공식 경호원이 아닌 사설 경호원을 고용한 채.

   
▲ 구스타브 왕의 가족들 - 국경절 행사 중 하나인 국왕과 가족의 마차 퍼레이드. 국왕 맞은 편 스웨덴 전통 복장은 한 여성이 장녀이며 왕위계승권자인 빅토리아 공주. 그 앞은 빅토리아 공주와 다니엘 대공 사이에서 난 공주 에스텔과 왕자 오스카르다. /사진=이석원

구스타브 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8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그 중 공식 방문은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세계 잼버리 때를 비롯해 2번 뿐이다. 나머지는 개인 자격이었다. 특히 전남 여수와 순천을 좋아하는 구스타브 왕은 전라도 음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스타브 국왕이 언제 왕위를 큰 딸 빅토리아 공주에게 물려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웨덴 안에서 군주제 폐지에 대한 여론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군주제를 유지하려면 하루 빨리 빅토리아가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여론도 세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1, 2년 안에 스웨덴의 국왕이 바뀌길 기대한다. 역사상 세 번째 여왕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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