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으로 '경제통합', 전기로 '제2차 산업혁명' 주도...1894년 세계 최강 등극
   
▲ 백열전구를 발명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미국은 광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다.

대서양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영토를 확장한 미국은 광활한 서부의 황무지에 국민들을 이주시키고, 개척을 해야 했다. 이 드넓은 국유지 분배를 위해 1841년 토지 조례에 이어 1862년 자작농장법을 제정, 토지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했다.

덕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유럽 국가들에서의 이민도 이에 한 몫을 했다.

미국의 산업혁명은 1820년대부터 1860년대의 '남북전쟁'(1861~1865)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진행됐다.

미국 공업화의 특징은 대량생산 방식으로, 국토와 자원에 비해 부족한 노동력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진 영국의 기술을 도입, 한 차원 높게 발전시켰다.

또 교통수단의 발달이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했다. 초기의 운하에 이어 철도가 그 역할을 떠맡았다.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하면서, 북부의 공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관세정책이 도입됐고, 국립은행이 생겼으며, 공유지의 불하가 촉진되고 서부 개발이 촉진됐다. 미국은 비로소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남부의 '면화왕국'이 붕괴되고, '하나의 사회경제체제'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은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를 세계 최초로 산업화, 영국의 증기기관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인 전력을 창출, '제2차 산업혁명'을 선도했다.

그 비결은 바로 수많은 '발명과 혁신'을 가능케 한 창의적 문화와 제도였다.

미국은 1865~1900년 사이 공식 등록된 발명 건수가 64만 건에 달했다. 1789년 헌법으로 특허권을 인정, 발명을 촉진했고 링컨 대통령은 "특허제도는 천재의 발명이 가져올 이익에 연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허 제도는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됐으나, 법으로 이를 보장한 것은 미국이 최초다.

사실 유명한 은행가 J.P.모건의 투자가 없었다면, 에디슨의 전구 발명도 없었을 것이다. 모건은 발명가들이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금지원을 통해 수익배분 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에디슨의 전구 발명에는 당시 미국 중산층 가정의 1년 소득이 넘는 연구비가 필요했는데, 모건은 이를 기꺼이 지원하고 신 발명품 전구를 자신의 저택에 설치, 적극 홍보했다. 또 200만 달러를 투자해 에디슨과 합작회사를 만들었다.

이렇게 백열등은 이전의 가스등과 석유등을 대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밤 늦게까지 안전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제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미국의 공업생산량은 1880년 영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르렀고, 1894년에는 마침내 세계 최고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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