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방문 때 일 국보 1호에 문화충격 고백
우리 오백나한상을 정신사 측면서 점검해보자면…
   
▲ 조우석 언론인
21세기 우리는 1000년 전에 비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가? 지금의 한국인은 이토록 범박(凡朴)하고 구수한 오백나한상을 조성했던 고려시대인과 같은 민족이 맞는가? 그 사이 현대사를 포함해 1000년 역사경험 속에 자기 잇속 차리기에만 밝은 헛똑똑이로 전락한 건 아닐까? 

국립중앙박물관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그렇게 정리된다. 88점 나한상 앞에 모두가 특별한 경험을 하는데, 미술사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런 궁금증을 품기 마련이다. 미술사란 결국 '눈에 보이는 정신사'인데, 1000년 전 문화재가 그런 근원적 질문을 유도한다.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 얘길 잠시 꺼내야 한다. 그는 1960년대 초 일본 방문 때 그 나라 국보 1호인 미륵반가사유상을 보고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구의 문화사적 전통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정신세계의 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가사유상은 인간 실존의 최고 경지이자, 절대적 이상세계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 말에 일본인 모두가 흥분했지만, 한국인 역시 그 말을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하고 우리 고대문화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왜? 일본 반가사유상이 목조(木彫)이고, 신라 미륵반가사유상(국보 78호)이 금동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 신라 미륵반가사유상(국보 78호).고금을 떠나 그중 아름다우면서도 숭고한 미소이며, 고대 동북아 정신세계의 봉우리다. /자료=조우석 제공

반가사유상과 로댕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

단 야스퍼스의 코멘트는 다분히 인상비평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들어가 본 게 지난해 타계했던 철학자 고(故) 김형효 선생이었다. 그는 우리의 미륵반가사유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같고 다른 점을 살펴봤는데, 썩 훌륭한 착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에 따르면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을 내려다보는 자의 모습이다. 본래 단테의 <신곡>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지옥이란 결국 인간세상을 말한다.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가사유상과 달리 유독 근육이 울퉁불퉁하다. 그게 인체에 대한 사실적 묘사일까? 그렇게 평범할 리 없다. 로댕 작품의 근육이란 현실과 대결하려는 의지를 말하고 근대 인간다운 자의식을 뜻한다.

우리나 일본의 미륵반가사유상은 너무나 다르다. 근육은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로댕이 바깥세상을 응시한다면, 미륵반가사유상은 마음과 진여(眞如, 세상의 참모습)가 하나로 합쳐진 경지를 넉넉히 관조할 뿐이다. 그래서 반가사유상에는 선정에 든 상태에서 가능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래서 고금을 떠나 그중 아름다우면서도 숭고한 미소이며, 고대 동북아 정신세계의 봉우리다. 반가사유상뿐인가? 신라시대 석굴암 본존불도 그러하다. 그럼 반가사유상과 오백나한상은 어떻게 연결될까? 둘은 500년 남짓 떨어져있지만 세월이나 외양만큼 크게 다르진 않다. 세부묘사가 가능한 금동이냐, 그렇지 않은 화강암이냐의 차이다.

단 나한상 쪽이 상대적으로 질박하고 인간미가 풍부하다. 어쨌거나 이 둘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불상도 없지 않은데, 6세기 고구려 시대 원오리 관음보살상이다. 좌대를 포함해 높이 10센티미터에 불과하고 진흙을 틀에서 떠내 만들었지만, 선정에 잠긴 눈매, 잔잔한 미소는 실로 기막히다.

   
▲ 창령사 오백나한상의 하나. 반가사유상과 오백나한상은 어떻게 연결될까? 둘은 500년 남짓 떨어져있지만 세월이나 외양만큼 크게 다르진 않다. 세부묘사가 가능한 금동이냐, 그렇지 않은 화강암이냐의 차이다. 단 나한상 쪽이 상대적으로 질박하고 인간미가 풍부하다. /사진=조우석 제공

오백나한상은 위대한 각성의 끝

창령사 오백나한상이나 원오리 관음보살상이나 은은한 향기 속의 탈속한 맛, 고졸(古拙)한 느낌은 거의 같은 세계다. 즉 고대의 위대한 미소, 까마득한 정신세계 앞에 21세기의 우린 그저 경탄스럽다. 꼭 일본 반가사유상 앞에 처음 섰던 야스퍼스와 같은 심정이리라.

유감스럽게도 이 미술사적 전통은  끊겼고, 재현 불가능하다. 참고로 20세기 조각가 권진규가 불상 제작에 도전했지만, 동시대 불교미술로 실패했다. 자의식 과잉의 현대조각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앞 질문을 재확인한다. 21세기 우리는 1000년 전에 비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단 우리가 예전에 비해 퇴보-타락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

왜? 이참에 철학자 칸트가 했던 말을 음미해보자. 그에 따르면 자연의 역사는 신의 작품임으로 선(善)에서 시작하지만, 인간 자유의 역사는 악 혹은 이기심에서 출발한다. 이 악-이기심이란 게 참 묘한 것인데, 그건 인간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하다.

즉 만일 그게 없다면 인간은 고요하지만 멍청한 자연상태, 즉 무기(無記)에 머물렀고, 역사전개 자체가 없었다. 불교 용어인 무기란 선악 구분 이전의 상태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에덴 시절과도 통한다. 그래서 새삼 1000년 전 우리민족이 위대하다. 즉 우린 고요하지만 멍청한 자연상태에 빠지지 않고, 고요하면서도 밝은 지혜가 깃든 정신에 기어코 도달했던 것이다.

그걸 보여주는 게 오백나한상이고, 반가사유상이었다. 정말 높고 위대한 경지다. 그럼 지금의 우린 과연 누구일까? 가장 낙관적으로 말하자면, 1000년 역사경험을 한 우리는 헛똑똑이이면서 동시에 고요하면서도 지혜가 깃든 제3의 정신 상태를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고 볼 순 없을까?

어제 오늘의 혼란을 뚫고 언젠가는 역사적-총체적 각성 상태에 도달하지 않을까? 그게 미래불로 상정된 미륵신앙, 즉 불교적 유토피아의 뼈대이기도 한데, 한반도 혼돈과 광기의 시대인 지금 잠시 참조해볼 역사철학이 아닐까? 글이 좀 어려워졌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기회에 1000년 전 조상 못지 않게 오백나한상을 보면서 우리가 소망하는 내일의 문을 함께 열어젖히자는 권면이 이 글이다. 그게 잠시 잊었던 걸출한 문화유산이자 위대한 '고려의 마음'을 더듬어보면서 미욱한 내가 떠올려봤던 짧은 생각의 언저리다. /조우석 언론인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