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찾아왔다. 기택네 장남 기우가 박사장네 고액 과외 교사로 채용된 것이다. 가족은 자신들의 분수를 알았다. 또 영리했다. 부스러기나 주워먹고 말 게 아니라는 걸,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는 걸 곤충이 예민한 더듬이 세우듯 본능으로 알았다. '기생충'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수능 시험에만 4번 낙방한 기우(최우식)는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의 유일한 희망이다. 위조한 대학 재학 증명서를 들고 박사장(이선균)네에 가정교사로 입성하는 데 성공하고, 동생 기정(박소담)을 미술 교사로 소개해 박사장네에 끌어들인다. 다음은 예상대로다. 기택과 충숙(장혜진)도 같은 과정을 거쳐 박사장네 일손이 된다.

'기생충'은 와이파이까지 훔쳐쓰며 살아가는 반지하 방의 기택네와 모든 것이 넘치는 대저택의 박사장네 풍경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대조가 씁쓸함을 남길 것 같지만 글쎄, 오히려 경쾌하다. 가난과 속물근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알고 적당히 교활한 기택네의 활약이 즐겁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에서 경제적 불균형과 계급 간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면 '기생충'에서는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으로부터 수혜를 받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비호 아래 뙤약볕을 피할 수 있음을 찬양한다. "이 집 사모님은 부자인데 참 착해.", "부자라서 착한 거야."


   


파국은 이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던 상위 계층의 냉소를 포착할 때 벌어진다. '냄새'라는 아주 사소하고 내밀한 상징으로 인해 이들의 블랙코미디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기택네 특유의 냄새를 포착한 박사장네의 미간은 자연스레 찌푸려지고, 사적인 치부를 침범당한 기택네의 충격은 작지 않다. 필사적으로 생존 투쟁을 할 줄은 알았지만, 자신들의 궁상이 공격받을 줄은 몰랐다. 그들은 기생충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악연 또는 적대관계라면 차라리 나았을까. 봉준호 감독은 자연스럽게 체화된 빈부(貧富)의 얼굴이 마주보았을 때 일어나는 비극을 적나라하게 필름에 담아냈다. 폭우에 삶의 터전이 위태로워진 기택네와 놀이용 인디언 텐트로도 거뜬히 이를 이겨내는 박사장네 아들의 모습이 대조될 때, 비로소 빈부격차의 형상이 살갗으로 느껴진다.


   


언덕 위 대저택과 달동네 반지하 방을 교차, 현대 사회의 수직적 질서를 은유한 '기생충'. 서로의 높이를 인정하고 있던 기택네가 생각지 못한 균열로 극복할 수 없는 계급의 차이를 느낀다. 그제서야 내가 이 저택에 두 발로 서 있음이 어울리는지를 묻는다. 존엄성의 침해로 발화한 소시민의 얼굴에는 가난의 냄새를 지울 수 없는 이의 절규가 담겨 있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놀라운 변주 덕분이다. 블랙코미디로 시작한 영화는 스릴러로 바뀌고, 짜릿한 서스펜스가 묵직한 여운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유려해 탄성이 나온다. 전개만으로도 몰입감이 상당한 작품이다. 칸이 사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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