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장소 두고 시작도 못한 한국지엠
현대차, 시작은 조용했지만 난제 산적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국내 완성차 업계의 2019년 임금 및 단체교섭(임단협)이 올해 역시 힘겨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지난해 임단협을 마무리도 못한 상태고 한국지엠은 교섭장소를 두고 노사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일단 시작은 순탄한 모습을 보였지만 풀어야 될 과제가 많아 힘겨워 보인다. 기아자동차 역시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의 난제가 산적해 있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30일 현대차 노사는 울산공장 아반떼룸에서 하언태 현대차 대표이사 부사장과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 등을 비롯해 노사교섭위원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단협 상견례를 가졌다. 

   
▲ 현대차 노사는 지난 30일 오후 2시 울산공장 아반떼룸에서 노사교섭위원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임단협 상견례를 가지고 있다. /사진=현대차 노조


앞서 현대차 노조는 상견례 하루 전 현대중공업 노조의 법인분할(물적분할) 반대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전운이 감돌았지만 시작은 순조롭게 마무리 됐다. 다만 정년연장과 통상임금 등 올해 산적한 현안들을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상견례에서는 노사 교섭위원들의 인사와 올해 단체교섭에 임하는 입장 발표 등이 진행됐으며 노조는 추석 전 타결 목표와 함께 사측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언태 부사장은 "자동차 산업 자체가 제조업체에서 구매 후 활용하는 업체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며 "국내 공장 생존과 고용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어렵겠지만 역지사지 자세로 노사가 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부영 지부장은 "불필요한 교섭보다는 압축교섭으로 단체교섭에 전념해야 한다"며 "추석 전 타결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하부영 지부장은 "지난 20여년간의 교섭 결과를 분석해보면 임금과 성과 분배는 일정한 패턴과 공식이 나온다"며 "특히 정년연장 관련은 정부의 방침도 변화하고 있고 현장의 기대감도 높은 만큼 노사가 미래지향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사는 이번 상견례를 시작으로 매주 2차례 본교섭을 갖고 의견 조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올해 현대차 노조의 임단협 요구안이다. 

올해 요구안은 △기본급 대비 5.8%인 12만3526원(호봉승급분 제외) 임금 인상 △당기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정년 연장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적용 등을 요구한 계획이다. 정년 연장의 경우 현재 만 60세에서 국민연금법에 따른 노령연금 수령개시일이 도래하는 해의 전년도로 바꾸는 안이다.

이는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감원추세와 반대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도 질책을 받고 있는 문제고 통상임금문제는 이미 법원으로부터 판결이 끝난상황이지만 노조가 꾸준히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올해 역시 순타치 못한 임단협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한국지엠 노사의 경우 지난 30일부터 임단협을 시작하기로 했으나 교섭 장소와 노조 교섭대표 등을 확정하지 못하며 시작도 못했다.

한국지엠 사측은 교섭 장소를 기존에 사용하던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본사 복지회관동 건물 노사협력팀 대회의실에서 본관 건물 내 회의실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으나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사측은 지난해 7월 기존 교섭장소에서 노사 간 협의에 임하던 회사 임원진이 노조 조합원들에 의해 감금된 사례가 있어 교섭 장소 교체를 요청했다. 해당 교섭장은 출구가 하나밖에 없어 감금 시 임원진이 대피하기 어려우니 출구가 여러 곳인 다른 교섭장으로 옮겨달라는 요구다.

하지만 노조는 기존 교섭장은 30여년간 노사 단체교섭이 있을 때마다 사용했던 곳으로 상징성이 있어 교체할 수 없다고 맞서며 2019년 임단협을 시작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올해는 기본급의 경우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공동요구안인 12만3526원 인상(기본급의 5.65%)을 요구안에 넣었다. 

여기에 지난해 부도 위기에 몰린 한국지엠이 자구책의 일환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동종업체들은 임금을 올리면서 발생한 임금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며 기본급 1만6200원을 추가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 국내 완성차 업계가 잇따른 노조의 파업으로 벼랑 끝에 몰려있다. /연합뉴스


또한 성과급으로 통상임금(409만4000원)의 250%인 1023만5000원, 사기진작 격려금으로 650만원 등 총 1673만5000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지난해 자구책의 일환으로 축소된 각종 복지도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단협 개정을 통해 축소된 법정휴가, 상여금 지급방법, 귀성여비 및 휴가비, 학자금, 임직원 차량할인 등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한국지엠 노조는 연차휴가 미사용시 대체 지급액을 일당의 100%로 줄였던 것을 다시 150%로 늘리고, 자사 차량 소유 직원에 대한 월 50ℓ상당의 자가운전보조금 지급 혜택도 지난해 소멸됐던 것을 되살리도록 요구할 예정이다. 

차량구매시 할인혜택도 지난해 근속연수별로 15~21%로 낮췄던 것을 21~27%로 되돌리고, 임직원 가족에 대한 할인혜택도 10%에서 다시 16%로 늘리는 내용도 요구안에 담겨있다. 

지난해 임금 동결과 복지 축소는 부도 위기에 몰린 한국지엠이 제너럴모터스(GM)와 산업은행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인 자구책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지만 이와 무관하게 노조측은 복지를 늘리려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지엠은 올해도 내수 판매 부진 지속으로 실적 회복이 안된 상태고, 경영정상화 지원 차원에서 GM에서 배정키로 한 신형 CUV와 SUV도 내년 이후부터 투입돼 그때까지는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형편에서 동결됐던 임금을 다시 보전하고 복지혜택을 부도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자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노조는 주간연속 2교대 후반조의 심야연장근무를 축소하되, 근무시간 축소에 따른 임금감소분도 전액 보전할 것을 주장했다. 정년도 만 65세까지 연장할 것을 요구했다.

GM 본사의 구조조정 작업이 한창인 상황에서 한국지엠 노조의 이같은 무리한 요구는 회사의 경영정상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르노삼성은 올해 임단협 상견례는커녕 지난해 임단협도 여전히 마무리 짓지 못했다. 노사는 11개월 갈등 끝에 지난 16일 잠정합의안을 만들었지만 노조가 지난 21일 투표로 부결시켰다. 

기본금 동결, 노동 환경 개선 등 내용이 담긴 절충안을 마련했으나 노조 조합원이 반대표를 더 많이 던지면서 노사 갈등이 격해졌다. 이후 노조 집행부는 지명파업(간부 34명)을 진행했고, 사측은 오는 31일 하루 동안 부산공장 가동중단(셧다운)을 하기로 했다. 재교섭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사태를 격은 국내 완성차 업계지만 1년만에 위기의식이 사라진 모습이다"며 "고용대란을 막기 위해 혈세까지 투입했는데 노조에서는 여전히 호화판 복지와 자리보존을 요구하고 있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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