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옥자' 이후 2년 만 신작 '기생충'으로 귀환
"시나리오 쓸 때 인물 이름부터 구상…이번에는 가족적 낙인"
"현대 사회에서 상생하려면 사람에 대한 기본적 존엄 지켜야"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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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까지. 7편의 장편이 나오는 20년 동안 그의 필모그래피와 함께 역사가 쓰였다. 봉준호 감독의 이름은 한국영화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고, 재기로 충만한 영화광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회의 거울이자 모든 예술가들의 영감이 됐다. 그렇게 봉준호 감독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 2017년 6월 개봉한 '옥자' 이후 2년 만에 '기생충'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국내 관객들 사이 영화 해석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 이 인터뷰에는 '기생충'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돼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감상하지 않은 분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기생충' 타이틀을 연상시키는 기택·충숙 부부와 기우·기정 남매의 이름… 어떤 방식으로 작명했나.

"시나리오 쓰는 첫날 하는 게 이름 짓는 거예요. 이름부터 느낌이 착 붙어야 진행이 되는데. 기택, 기우, 기정 '기'자 돌림의 느낌이 중요했죠. 기우는 왠지 걱정이 많아 보이고… 또 가족을 가족답게 보이게 하는 요소가 있잖아요. '기생충'에서는 최우식과 박소담의 얼굴이에요. 굉장히 닮았기 때문에. 둘이 화장실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은 의도해서 찍었어요. 가족의 비주얼적인 낙인을 찍는 거지."

▲ '기생충'은 블랙코미디, 스릴러 등 장르의 변주가 다채롭다. 시나리오를 쓸 때 장르적 설계를 하는 편인가.

"전혀 안 그래요. 사건과 인물을 따라가요. 삶이나 감정에 장르가 있다면 그게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잖아요. 직장 상사에게 공포의 상황을 겪고, 퇴근해서 자신의 애인을 만나면 저녁은 멜로의 시간이 되고… 24시간을 살아도 여러 가지 장르가 교차하는데, 한 가지 톤으로 가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 같아요. 슬픈데 웃기기도 하고, 무서운데 애잔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전 장르의 느낌이 하나로 지속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이건 여기부터 무슨 장르야' 의식하고 하는 건 없어요."

▲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는 꼭 소동극이 등장한다.

"카오스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그 느낌을 즐기는 경향이 있어요. 찍을 때 되게 흥분이 되고, '이건 내 분야야' 하는 느낌이 있어요. 좋은 느낌으로 피가 확 역류하죠. '기생충'에도 많이 있죠. 짜파구리 신이라든가. 그런 카오스의 시퀀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장르영화 감독의 특권이 아닐까 싶어요. 이 장르적 활기를, 카오스를, 난장판을 휘몰아치면서 표현하는 건 장르영화의 특권이죠. 재미고."


   
▲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박사장(이선균) 딸 다혜(현승민)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봉준호 감독 작품 속 소녀들에게는 유사한 이미지가 스치는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소녀와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능동적이고 다이내믹하잖아요. 전 '미래소년 코난'의 라나 같은 캐릭터를 좋아했어요. 걸리쉬한 것 같으면서도 파괴력이 있죠. 라나는 '괴물'의 현서(고아성) 캐릭터와 유사성이 있고, '옥자' 때는 본격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 이미지가 반영된 것 같아요. 돌진하는 소녀가 나오잖아요. 어린 시절 접한 것들이 창작자의 혈관 속에 흐르는 것 같아요. 몸 안으로 들어와버리는 거죠. 오히려 영화인이 되고 나서 보는 영화들은 직업적인 시각이 투영되거나 영화를 공부한다는 진지한 접근이 적용되고."

▲ 박사장(이선균)과 연교(조여정)의 베드신이 놀랍도록 강렬하다.

"그 장면은 배우들과 상의하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부부니까 리얼하고 가감 없이 하자. 애매하게, 괜히 신음소리만 헛헛하게 내면서 그러지 말고. 그 장면은 각자의 캐릭터가 드러날 기회거든요. 영화가 '야함'을 목표로 달려가는 영화는 아니니까. 그리고 이선균의 캐릭터에 레이어가 하나 더 얹어지는 느낌. 평소에는 소피스티케이티드한 척 하고 매너와 젠틀함을 잘 포장하는데, 거기선 스스로 상스럽게 말하잖아요. 손가락 동작도 그렇고. 두 사람의 모습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타인의 사생활을 아주 근거리에서, 신랄하게 목도하는 느낌의 톤이거든요. 사실 별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는데 집이라는 건 되게 사적인 공간이잖아요. 우리가 기본적인 예의로서 타인과 유지하는 거리가 있는데, 그 거리가 무너져요. 카메라가 인물들에 대해 선을 많이 넘고 있죠. 그리고 서로 다른 계층 간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잖아요. 물론 부부끼리 소파에서 하는 말이니 그게 큰 잘못은 아니죠. 근데 그걸 밑에서 듣고 있단 말이죠. 그게 상황의 잔인함인 거고. 그런 내밀한 상황들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야한 듯 야하지 않게 텐션을 갖는 거고."

▲ 결국 '기생충'은 빈부격차나 사회적 구조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아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나오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이야기하죠. 기본적 예의의 마지노선이 붕괴됐을 때 파국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사람이 냄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무례한 것이 없는데, 기묘한 상황에 의해 서로 다른 이들이 가깝게 놓이는 것이 이 영화의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냄새가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찍고 싶었어요. 물론 그건 배우들에게 의존을 많이 했죠. 배우들의 표정과 대사에 의해 전달이 되니까."

▲ 기생이 아닌 상생으로 나아가려면?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존엄, 최소한의 리스펙트가 유지돼야죠. 그 부분이 붕괴됐을 때 갑질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최소한의 리스펙트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지하실의 남자는 계단 위를 향해 '리스펙트' 하고 소리치잖아요. 가장 힘든 처지에 있는 자가 슬로건으로 '리스펙트'를 외쳐요. 참 아이러니하죠."


   
▲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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