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반국가적 행동에 대해 반드시 처벌하고 규제하는 시민들의 노력 필요

경제민주화 열풍 이후 민생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심화되고 있는 사법의 공법화 경향, 간섭주의와 정부팽창이 가져올 위기가 심각한 가운데, 이러한 정치실패 중심에 국회 입법이 가장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 각축장이자 지역 포퓰리즘의 정쟁도구가 되어 버린 국회의 현주소를 되짚어 볼 때, 정치실패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의원이 갖는 권한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나, 그들이 특권 뒤에 숨어 무책임한 발언과 무분별한 입법행위를 정쟁의 도구로 악용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정치실패의 중심에 선 국회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대대적인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정치실패 연속 3차 토론회, ‘정치실패 중심에 선 대한민국 국회 진단과 해법’에서 국회의 정치실패에 관하여 토론하는 김행범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김행범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7일 오전 10시 자유경제원 5층회의실에서 열린 ‘정치실패 중심에 선 대한민국 국회 진단과 해법’ 토론회에서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본질상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사적 자치에 속하는 규칙을 국가가 정치화하고 이를 각종 왜곡된 입법으로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날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했다시피 우리나라 헌법상에서 언급된 경제 질서의 성격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이 연 6억원의 세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공공악(public bads)이라고 인식하는 다수 국민들의 뇌리에는 정치실패의 주역인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일단 국회의원이 되면 과거의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동들은 국회의원 지위에 이르는 필요조건이었다고 간주되기에, 어제의 데모 주동자가 국회의원이 되고난 뒤 시민들 앞에서 돌연 데모크라시의 주역으로 자처하는 것이 국회의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회의원 특권은 과도하다는 기본적인 문제의식 가운데, 의원들의 과거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동들에 대하여 반드시 처벌하고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시민들 다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 교수를 비롯하여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김선정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 김인영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패널로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

   
▲ 자유경제원 주최, ‘정치실패 중심에 선 대한민국 국회 진단과 해법’ 정치실패 연속 토론회 전경. 자유경제원은 ‘겉으로는 공익을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실패에 대해 토의하는 토론회를 연속해서 주관하고 있다. 7일 토론회는 지난 6월 26일 ‘교통분야 정치실패 진단 -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공항과 도로는 왜 만들어졌을까’ 토론회에 이은 세 번째 토론회다. 

다음은 김행범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된 국회의원의 권한

자생적 질서가 작동하는 영역의 규칙으로 작동하는 사법과 인위적 질서가 작동하는 영역에서 작동하는 공법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며 이 구분은 인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의 성격상 본질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최근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본질상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사적 자치에 속하는 규칙을 국가가 정치화하고 이를 각종 왜곡된 입법으로 양산함으로써 법(Recht)과 입법(Gesetz)가 오도되고 있다. 이런 입법들이 타당한가는 우선 우리 헌법 질서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전삼현 교수는 발제문에서 당면 주요 경제 민주화 입법들을 적시하며 이것들이 실은 헌법 질서에도 어긋난 것임을 하나하나 규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우선 그 논증 과정을 살펴보고 그 의미 및 몇몇 보충적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의 헌법 질서의 성격 및 거기에 경제민주화란 관념이 한정적으로 가능한 범위를 보아야 하며, 나아가 현행 경제민주화 입법들이 이 범위를 벗어났는가를 보아야 한다.

첫째, 우리 헌법상의 경제 질서의 성격을 보자. 10조의 헌재 해석(89헌마 204)으로부터 행복추구권에서 계약자유가 도출되며, 우리 헌법의 최고가치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전문, 평화통일)에 대한 헌재 해석으로부터 그 중핵이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임이 밝혀진다.

   
▲ 대한민국 헌법 10조-경제 질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석 

결국 우리 헌법 질서는 재산권보장(23, 37-②) 및 사적 자치 보장(119-①)을 담고 있고 법질서로 본다면 따라서 경제에 관해 우리 헌법은 사법(Private Law)질서를 기본으로 염두에 두었던 셈이다.

둘째, 이에 대한 통제(공법화)의 가능성을 보자. 재산권 보장의 공공복리 적합(23-②), 재산권 제한(공공필요+법률로써+정당한 보상으로) 가능(23-③) 및 119조 2항이 있다. 사법의 공법화를 평가할만한 헌법 해석의 기준은 “부동산실명법”의 위헌제청 사건에서 간접적으로 제시된 바 있고 그것은 과잉금지 원칙 및 평등 원칙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과잉금지의 위헌판단 기준으로 제시된 세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공공복리를 이룩할 수 없는 기본권 제한
② 기본권을 덜 침해하고도 공공복리를 달성할 방법이 있는가를 고려
③ 사적 자치 제한에 대한 공공 필요와 사적 자치의 제한의 균형

셋째, 이러한 기준에 의거하며 전삼현 교수는 시급한 몇몇 입법 사례들에 대해 위헌성 여부를 평가하였는데 입법별 평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경제민주화 입법별 위헌성 평가목록 

전삼현 교수가 정확히 규명한 상기 입법들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최고 가치로 둔 경제 질서의 기본 성격에 비추어 위헌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점은 앞으로도 널리 알려져야 하며 토론자도 완전히 동의한다. 그러나 몇 가지 의문점도 있다.

이들 입법을 평가함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준거가 되어야 할 점은 입법자들이 119조 1항, 2항이 병렬적 구조가 아니라 1이 원칙이고 2가 예외라는 위계적 구조임을 간과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는 이 점이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만 우리가 제대로 국회 및 정치인을 설득한다면, 그릇된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한 실질적 제약이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 입법들을 평가할 때에 또 이 논문의 시작 지점이래로 곳곳에서 이것이 경제 성과에 나쁜 영향(즉 투자 위축 등)을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이 기형적 입법 하에서 경제성과가 좋게 나타났더라면 그 법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가? 포스너(Richard Posner)식 B/C 분석적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매우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자유에 부합되는 법을 제안하려면 그 이전에 우리는 그런 미래 이익을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 자칫 경제성과에 유익하다면 자유가 침해되어도 좋다는 공리주의적 함의를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자유를 침해해서가 아니라 경제에 미치는 성과가 안 좋아서 바꾸어야 한다는 그릇된 함의.

회사기회유용금지 부분을 논증할 때에는 이 입법이 “오히려 공공이익을 침해”한다고 설명해 놓고는 그 뒤의 평가에서는 “공공 필요성에 비해 ...과도한 ” 제한이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만약 “오히려 공공이익을 침해”한다는 점을 정확히 규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입법은 37-② 뒷 부분인 “.....공공복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의 사적 자치 제한이 불가능하다고 바로 말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 논문의 서론에서 경제민주화 입법들이 가져온 경제성과가 나쁘다는 점을 “시장(의) 실패”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이 명칭이 바른 것인가? 자칫 시장 경제가 이런 나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란 인상을 주는 호칭이다. 정확한 맥락은 정부가 시장에 잘못 개입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나쁜 경제 성과인데 그것이야 말로 ‘정치 실패’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의 특권

권혁철 소장의 발제 주제는 매우 흥미롭고 이미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사항이다. 일을 잘하고 있는 공직자에게 많은 이익과 권리가 주어짐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흔히 국회의원의 세비에만 착안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일인당 GDP를 자세하여 상대적 평가를 한 것은 매우 정확하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과도하고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이면에는 정치 실패 및 그 실패의 주역인 정치인에 대한 공유된 반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국회의원은 연 6억의 세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공공악(public bads)인 셈이다. 그런데 국민들이 국회의원의 특권을 문제 삼는 초점이 이러한 공식적 특권 측면일까?

우선, 그들이 가진 과도한 입법권 및 그로 인해 부수되는 부패, 비효율성의 주역이면서도 적절히 통제되지 못하는 특수한 지위에 대한 불신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국회 의원의 진정한 특권의 논의의 핵심은 비공식적 측면에서 그들이 누리는 음성적 이익이 더 중요한 내용이다. 그런 것은 가끔 부패라는 사건으로 표출되지만 대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합법적인 외관을 지닌 지대추구 활동의 한 주역이 되어 누리는 이득이야 말로 국회의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특권이다. 이 점이 더 주요한 항목이고 국민이 바로 이 점 때문에 국회의원의 특권을 거론하지만 정작 이에 대한 실상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세비 및 부수적 비용 등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언젠가 어느 국회의원의 이 부분에 대한 양심선언이나 실태의 커밍아웃이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공식적 측면의 특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토론자가 보기에는 국회의원이 가진 최대의 특권은 도덕성을 스스로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아무리 형편없는 자라도 국회의원이 되기만 하면 과거의 모든 반국가적 행동, 범법 기록, 파렴치 행위들을 덮고 성공적인 공직자로 자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법-사법-행정의 3부 진입에 소요되는 절차가 상이하다. 사법부에 가려면 사법시험 및 로스쿨이란 힘든 실체적 지식을 쌓아야 하며, 행정 공무원 역시 행정 고시 및 다양한 각종 시험에 요구되는 지식과 기능을 구비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이런 능력을 구비하고도 된 사람도 있지만 때로 이런 능력이 전무하더라도 진입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직의 자릿수는 행정-입법에 비해 훨씬 적지만 공직 수행에 요구되는 지식 및 능력 수준이 아주 낮고도 진입할 수 있는 것이 국회의원이다. 그러고도 이에 비해 얻는 보상은 행정-사법부에 비해 더 크다는 점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바로 국회의원 특권론 점화의 뿌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현재 지식과 능력과 기술이 가장 부족하되 일거에 운명을 역전하고 싶은 무능력자들은 사법-행정부나 경제계로 갈 것이 아니라(갈 수도 없거니와)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그나마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소망을 둘 수밖에 없다. 일단 국회의원이 되면 과거의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동들은 지금에 와서 보니 이러한 고아한 국회의원의 지위에 이르는 필요조건이었다고 간주된다. 어떤 수를 쓰든 일단 국회의원이 되기만 하면 어제의 데모 주동자가 여러 부모 및 그 자녀들 앞에 돌연 데모크라시의 주역으로 자처할 수 있다. 모든 과거의 비도덕도 도덕으로 새롭게 재평가 받는다. 국회의원이 받는 특권 중 이것이야 말로 가장 큰 특권이다. 우리가 국회의원의 특권을 제한하고자 할 때에 이 국면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