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국빈 방문에 교민 초청 행사 없어…아쉬움에 원망도 섞여 설왕설래
   
▲ 이석원 객원칼럼리스트
한국과 스웨덴이 국교를 맺은 것은 1959년 3월 11일이다. 이제 만 60년이 지났다.

한국과 스웨덴은 어쩌면 피로 맺어진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과 스웨덴은 처참했던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깊어진 사이다. 당시 스웨덴은 한국으로 의료부대를 파병했고, 부산을 근거지 수많은 우리의 목숨을 살리는 일과 전쟁고아를 동보는 일, 그리고 가난하고 비참한 한국 땅의 버려진 어린이들을 스웨덴의 아들 딸로 만드는 일을 했다.

당시 스웨덴이 노르웨이와 함께 설립했던 야전 병원이 지금 을지로에 있는 국립 중앙의료원의 모체이고, 그때부터 한국의 스웨덴 이민사가 시작됐다. 

사실 스웨덴의 국가 원수가 한국에 발을 들인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다. 1926년 일제 치하에 현 스웨덴 국왕의 조부이며 당시 왕세자 신분이던 구스타브 6세 전 국왕이 경북 경주를 찾았다. 그는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는데 마침 경주에서 신라 고분을 발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그 작업에 참여했다.

고고학을 전공한 구스타브 6세는 경주 노서리 129호 고분 발굴 현장에서 찬란하고 아름다운 신라의 금관 하나를 들어 올렸고, 이는 당시 유럽에서도 대서특필됐다. 나중에 이 129호 고분은 서봉총(瑞鳳塚)이라고 이름 지었다. 한자 '서(瑞)'는 스웨덴을 이르던 한자어 '서전(瑞典)'에서 따온 것이고, '봉(鳳)'은 봉황 장식을 한 금관에서 딴 것이다. 어쩌면 우리 땅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스웨덴의 흔적일 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간 스웨덴을 국빈 방문한다. 한국과 스웨덴이 수교 60년을 맞았지만, 국가 정상 간의 외교는 많지 않았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합쳐서 한국 국가 원수의 스웨덴 방문은 많지 않다. 1974년 6월 당시 백두진 국회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회사절단이 스웨덴을 방문한 이후 1981년 8월 남덕우 국무총리가 국무총리로는 처음 스웨덴을 찾았다.

   
▲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스웨덴을 방문 때 교민 행사가 열렸던 그랜드 호텔. /사진=이석원 제공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 번 스웨덴을 방문했지만, 1989년 2월에는 평민당 총재 자격으로, 1994년 2월에는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방문했으니 한국을 대표하는 신분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된 후 2000년 12월 스웨덴을 세 번째 방문했지만, 이 때도 대한민국의 국가원수 자격이라기보다는 그 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참석을 한 것이다. 

그 뒤 2007년 9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방문했고, 사실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는 2009년 7월 이명박 전 대통령 한국과 스웨덴의 수교 50주년을 맞아 스웨덴을 공식 방문했다. 

오히려 스웨덴의 국왕은 한국을 수차례 방문했다. 앞서 언급한 구스타브 6세의 손자이며 1973년부터 스웨덴 국왕인 현 국왕 칼 16세 구스타브가 1987년 9월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1988년 9월과 1991년 8월, 1994년 11월과 2008년 4월까지 네 차례 비공식 방문을 했다.

그 후 2012년 5월 최초 국빈 방문을 했고, 지난해에는 비공식으로 한국에 와 평창 동계올림픽을 참관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웨덴 사회에서도 칼 16세 구스타브 왕의 각별한 한국 애정은 늘 화젯거리이기도 했다.

스웨덴 총리 중에서는 칼 빌트가 1993년 4월 한국을 방문했고, 페르손 전 총리가 2000년 10월과 2001년 5월, 그리고 2004년 3월 세 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그 외에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왕세녀가 2015년 3월 한국을 방문했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 대통령이 스웨덴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 문재인 대통령이 세 번째이기는 한데, 국빈 방문은 처음이다. 그래도 스웨덴 현지에서는 교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그런데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스웨덴 방문 일정 중에는 그 흔한 한국 대통령이 주최하는 현지 교민 초청오만찬 행사가 없다. 7일 청와대가 공식으로 일정을 발표하기 이전 이미 스웨덴 교민 사회에서는 '문 대통령의 교민 패싱'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지금쯤이면 대통령 초청 교민 행사 참석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초청 대상이 정해지기 마련인데, 전혀 그런 것이 없다.

다만 스웨덴에서 사업하는 교민 소수와 한인 입양인 몇 명 정도가 초청받은 중소기업 관련 행사가 예정됐다고 한다. 물론 이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행사에 대한 보안 조치 때문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만 하는 상대.

이러다보니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왜 교민 초청행사가 없을까?'하는 의문들이 제기된다. 항간에는 '교민 수가 적어서'라는 이유도 등장하지만, 외교부의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은 3000명이 넘는다.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캄보디아 방문중 동포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이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당시 청와대는 스웨덴 유일의 5성급 호텔이면서 노벨상 시상자들의 숙소로도 쓰이는 스톡홀름 시내 그랜드 호텔에서 대규모 교민 초청 만찬 행사를 했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교민들은 이번 문 대통령 순방을 맞아 '오랜만에 조국의 국가 원수를 뵐 기회가 오는구나'하며 기대를 했던 것이다.

일부 교민 중에서는 "대한민국이 북유럽의 교민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낸다. 초기 스웨덴 이민자인 교민들 중에는 "조국의 대통령을 이곳에서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언제 또 어떤 대통령이 올 때까지 기다리나?"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문 대통령이 교민 초청 행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 정부가 스웨덴이나 북유럽의 교민들을 무시한다고 할 수는 없다. 아마도 합당한 스케줄을 만들었고, 그에 맞춰서 진행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민들의 실망을 좌시해서도 안된다.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살아가는 현지 교민들의 아주 작은 소망 중에 하나는 조국의 대통령이 자신들을 만나서 위로의 한 마디 건네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긴 그런 것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겠지만. /이석원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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