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천재 '슈퍼밴드' 참가자들과 완전히 닮은꼴
천재적 악상 대신 밴드 멤버들과 공동 창작했다
   
▲ 조우석 언론인
보름 전 JTBC의 밴드 오디션 프로 '슈퍼밴드'(이하 '슈벤') 얘기를 전했지만, 그 프로는 여전히 화제만발이다. 확실한 팬층을 확보했지만, 대중성도 없지 않다는 얘긴데, "신세계를 영접하듯 방송을 듣는다", "내가 다 긴장해서 숨죽인 채 TV를 보다니…. 전에 없던 일이다.", "예능프로가 아니라 콘서트다"는 등의 반응을 흔하게 듣는다.

창의성을 안 키워주는 이 나라 풍토에서 이 다양한 인재들이 대체 어디에서 쏟아진 거냐. 대한민국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그만큼 이 프로그램은 예능프로 그 이상이다. 벌써부터 밴드뮤직 프로그램을 상설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온다.

밴드 뮤직을 비주류로 취급해 홍대 앞밖에 무대가 없다면 차제에 고정 프로를 선구적으로 운용하라는 얘긴데, 충분히 경청할만 지적이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수지맞는다. 거친 듯 울림있는 이찬솔(보컬), 누구나 천재라는 디폴(스페셜 악기), 바이올린의 두 귀재 벤지·신예찬, 첼로의 맛이 좋은 홍진호·박찬영의 음악과 성장과정을 계속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음악 만들어지는 과정 그대로 보여준 '슈밴'

그리고 이참에 슈퍼밴드를 하나만 뽑을 게 아니라 세 팀 정도 해도 훌륭할 듯싶다. 좋다. 실은 이 프로에 대한 으뜸가는 찬사는 통조림 음악을 반복하지 않아서 신선하다는 대목이다. 오디션 참가자들이 팀을 짜고 편곡하며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니 유익하다는 것이다.

"아 음악이 이렇게 만들어지네?"하는 깨달음을 안겨준 것이다. 이제 이 글의 본론인데, 그게 맞는 관찰이다. 본디 음악이 창조되는 현장이란 게 바로 그렇다. 달리 말해 '수벤' 참가자들이 반 발자국만 더 나가면 베토벤-슈베르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나는 자신있게 말한다. 그래서 지난 회 베토벤-슈베르트가 어떻게 작곡하고 연주했는가를 보여드렸다.

오늘은 예고대로 '재즈의 모차르트-베토벤'로 불리는 듀크 엘링턴이 어떻게 작곡하고 연주했는지에 관한 또 다른 진실 편인데, 듀크의 음악행위야말로 '슈밴' 참가자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걸 흥미롭게 분석해낸 사람이 재즈 애호가이자 좌파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이다.

그에 따르면 작곡의 실제 모습이란 천재적 광기에 사로잡힌 채 어느 순간에 악보에 옮겨놓는 과정이 아니다. 차라리 땜질과 짜깁기의 방식이 일반적이고 때로는 연주가들의 어시스트 아래 공동 창작의 과정을 밟는다. 이를테면 1920~30년대 빅밴드 전성기의 재즈 황제였던 듀크 엘링톤은 녹음실이나 리허설장에 들어갈 때 손에 무언가를 들고 들어갔다.

엉성한 악곡 스케치가 전부였다. 완성된 악보? 그런 건 없다. 그러면 그가 남긴 숱한 재즈 스탠더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진실은 이렇다. 엘링턴은  피아노에 앉아 똥땅거리며 악곡 스케치를 연주한다. 시연(試演)하는 것이다. 대여섯 마디나 7~8개 마디가 전부다.

   
▲ 오늘은 예고대로 '재즈의 모차르트-베토벤'로 불리는 듀크 엘링턴이 어떻게 작곡하고 연주했는지에 관한 또 다른 진실 편인데, 듀크의 음악행위야말로 '슈밴' 참가자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사진=조우석 제공

베토벤 천재론에서 벗어나야 음악 보여

시간으로 치면 10~20초 분량. 이번에는 밴드 차례. 주의 깊게 듣던 밴드가 엘링턴이 제시한 멜로디를 밴드 형태로 반복연주하며 의견 교환을 한다. '멜로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 대목을 조금 길게 호흡 이어가보자' 둥…. 실은 엘링턴 주특기가 상대방 조언을 잘 새겨듣는다는 것이다. 이런 공정 속에서 작품이 탄생한다.

이런 '공동창작+땜질' 방식이야말로 바로 명 스탠더드가 만들어진 실제 과정이라는 걸 기억해두자. 《Mood Indigo》(1930), 《Creole Rhapsody》(1931),《Sophisticated Lady》(1933), 《Solitude》(1934), 《Ina Sentimental Mood》(1935)등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멜로디의 뼈대가 대충 자리 잡히면, 화음을 살을 갖다붙이는 것은 밴드의 각 파트 연주자들 몫이다. 이런 '누더기 작곡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홉스 봄의 말대로 제임스 링컨 콜리어가 쓴 듀크 엘링톤 평전 <듀크 엘링톤>(1987)이었다. 그런데 콜리어는 홉스 봄과 달리 엘링턴의 능력에 의문부호를 찍는다.

엘링톤은 고전적인 의미의 작곡자라고 할 수 없고, 편곡자 정도란 지적이다. 글쎄다. 콜리어라는 인물이 가진 고정관념이 문제는 아닐까? 무릇 작곡가란 천재이어야 하고, 베토벤처럼 곡을 좔좔 써내려가야 한다는 선입견을 그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런 지적이 받아들여질 경우 곤혹스런 상황이 벌어진다. 미국은 클래식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와 함께 엘링턴을 20세기 작곡가 ‘빅2’로 꼽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콜리어의 말대로 작곡가가 아니라고 하면 평생 6천여 곡을 작곡한 불세출의 듀크 엘링턴은 추락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좀 우스운 건 엘링턴 자신이 생전에 전전긍긍했다.

'나는 전혀 베토벤스럽지 못하네?'라는 자격지심을 품고 살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1933년 영국에 빅밴드를 끌고 연주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놀랍게도 유럽 사람들은 자기를 밴드 리더라기보다는 모리스 라벨이나 클로드 드비시와 같은 작곡가로 깍득하게 예우했다. 

엘링턴도 그런 예우를 즐겼고, 자부심을 회복했다. 사실 영화감독이나 뮤지컬 연출자들은 무수한 상의로 공동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그들을 가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엘링턴은 그들의 대선배다. 그리고 그들의 길을 ‘슈벤’ 참가자들이 지금 가고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21세기 동시대 음악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매진해주기 바란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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