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주진 객원논설위원
"우리 정당과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평가가 내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정부의 정당 해산 청구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대해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이 입장을 내놓으면서 모두에 한 발언이다. 이미 여론재판, 마녀사냥, 그리고 저급한 조롱과 야유의 장으로 변질되어버린 지 오래된 청와대 청원에 대한 100번째 답변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답변이, 청와대의 '민주주의 부적응'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앞서 소개한 문장을 보듯, 청와대가 국회와 정당을 공존의 동반자, 나아가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기 보다는 압박과 공세의 대상, 나아가 공존 불가의 존재로 여긴다는 느낌을 주는 내용으로 점철된 답변이기 때문이다.

특히 두 눈을 의심케 만드는 대목은 내년 총선에 대한 언급이다. 강 수석은 "이처럼 국민청원으로 정당 해산을 요구하신 것은 '내년 4월 총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하다'는 질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사실상 지금의 국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심판의 대상임을 의미한 것이다.

엄연히 국회는 국민의 선택을 받아 선출된 국회의원들로 구성돼 있다. 반면 강기정 정무수석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고위공무원이며, 별도의 청문회를 거치거나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간접적 민주적 정당성만을 가진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정당 활동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리 헌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게다가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불신임과, 또 행정부의 국회 해산 제도가 없는 대통령제 국가의 대한민국에서, 강 수석 발언은 삼권분립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냈다는 경고를 받기에 충분하다.

강 수석의 이 같은 맹공의 논거는 소위 '일 안하는 국회'다. 답변 후반부에서 저조한 법안 통과율과 추경 지연 등 소위 '일 안하는 국회'를 언급했다. '눈물을 훔치며 회초리를 드시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위헌정당 해산청구 청원이 올라왔다는 해석에서는, 사실상 국회가 삐뚤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정적 판결까지 내려버렸다.

그렇다면 정부가 낸 추경안, 그리고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전혀 비판받을 소지가 없이 완벽하다는 이야기인가? 국회가 정부를 향해 드는 회초리도 결국 국민을 대신해 드는 회초리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당연히 국회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 참여 인원의 숫자가 많더라도, 결국 국민의 일부에 불과한 이들이 올린 청원을 빙자해 청와대가 국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 방향을 둘러싼 행정부와 입법부의 열띤 토론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이번 청원 답변과 같은 식의 청와대의 국회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옳지 않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서, 막대한 예산을 쓰고 대규모 공무원단을 거느리며 강력한 권력과 권한을 행사하는 행정부를 견제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 행정부 감시가 곧 국회의 존재 이유다. 반면, 행정부가 국회를 압박하는 모습은 주로 정치 후진국에서 자주 포착되는 모습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질타를 피하겠다는 것은, 곧 국민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의지로 보일 수밖에 없다. /윤주진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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