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롯데 자이언츠가 '폭투 왕국' 구축을 위한 기념탑 하나를 세웠다. KBO리그에서 처음 나온 '끝내기 스트라이크아웃낫아웃 폭투' 불명예 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벌어진 일이다. 롯데는 1-3으로 끌려가던 8회초 2점을 뽑아 3-3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 승부를 연장으로 넘겼다. 두 팀은 전날(11일)에도 연장 12회 혈투를 벌인 끝에 1-1로 비겼기 때문에 이틀 연속 진땀 나는 연장전을 벌였다.

문제의 장면은 10회말 롯데 수비에서 나왔다. LG는 김현수의 내야안타와 조셉의 볼넷으로 무사 1, 2루의 좋은 기회를 잡았으나 채은성이 병살타를 쳐 2사 3루가 됐다. 롯데 6번째 투수로 등판해 있던 구승민은 이형종을 고의4구로 거르고 오지환과의 승부를 택했다.

이런 선택 자체는 옳아 보였다. 2연속 스트라이크를 잡은 구승민은 3구째 빠른 공을 낮게 던졌다. 볼은 원바운드가 될 정도로 낮았지만 오지환은 헛스윙을 했다. 삼진 아웃으로 이닝이 끝나는가 했으나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롯데 포수 나종덕이 바운드된 볼을 제대로 블로킹하지 못했다. 미트에 맞은 공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이른바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상황.

   
▲ 12일 잠실 롯데전 연장 10회말, LG 3루주자 김현수가 오지환 타석에서 나온 스트라이크아웃낫아웃 폭투 때 홈을 밟아 끝내기 승리를 거둔 후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LG 트윈스


오지환은 재빨리 1루로 뛰어가 세이프됐고, 3루주자 김현수가 홈을 밟으면서 LG의 4-3 끝내기 승리로 마무리됐다. LG 선수단은 환호했고, 롯데 선수단은 허탈감에 빠졌다.

공식기록은 '끝내기 스트라이크아웃낫아웃 폭투'였으며 KBO는 이 기록이 KBO리그 최초라고 밝혔다. 

올해 롯데는 투타 모두 침체에 빠져 꼴찌에서 헤매고 있다. 여러 지표가 최하위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폭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날 구승민의 끝내기 폭투는 올 시즌 롯데의 61번째 폭투다. 67경기에서 61개나 폭투를 범했으니 거의 1경기 당 1개 꼴이다. 롯데는 지난해만 해도 총 144경기에서 폭투가 65개밖에 안됐는데, 이번 시즌은 절반도 치르지 않은 시점에서 지난해 기록에 육박했다.

다른 팀과 비교해도 롯데의 '폭투병'은 심각하다. 폭투 2위 KIA가 67경기에서 35개로 롯데와는 26개나 차이가 난다. 폭투가 가장 적은 삼성과 KT는 20개밖에 안된다.

폭투가 쏟아져나오다 보니 다양한 불명예 기록도 쌓이고 있다. 5월 19일 키움전에서는 박시영이 한 이닝에만 4개의 폭투(역대 3번째)를 범했다. 장시환은 12경기에서 10개의 폭투를 기록해 1999년 김상태(LG)가 기록한 시즌 최다 폭투(22개)를 넘어설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과 같은 페이스라면 롯데는 2017시즌 NC가 기록한 한 시즌 최다 폭투(93개) 정도는 너끈히 넘어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이 확실시 된다.

롯데의 폭투가 유독 많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약한 투수력이 우선적인 원인이다. 제구가 불안하거나, 자신의 공에 자신감이 없으니 존에서 크게 벗어나는 투구가 자주 나온다. 롯데 투수들이 포크볼 계열의 떨어지는 변화구를 많이 구사하는 경향도 있다.

허약한 포수력도 폭투 양산에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 강민호의 삼성 이적 후 롯데는 2년째 포수 고민을 해결 못하고 있다. 김준태, 안중열, 나종덕이 번갈아 안방을 맡고 있는데 다른 팀 주전 포수들에 비해 아직 기량이 많이 처진다. 막을 수 있는 투구를 폭투로 만들어주는 장면이 롯데 경기에서는 심심찮게 나온다.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산더미인데 폭투로 쓰라린 패배를 당하거나 승부의 흐름을 놓치는 것까지 신경써야 하는, 총체적 난국의 거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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