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 아직 구린 맛 탈피하지 못한 중국차 수준
지구촌 트렌드 이끌 철학과 뚝심 키우는 게 과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도시를 춤추게 하는 건 세 가지다. 길거리의 다양한 가게들, 도시 미학의 결정판인 빌딩 그리고 멋진 디자인의 자동차 물결…. 가게-빌딩-자동차야말로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요소인데, 특히 자동차는 움직이는 미술작품이다. 그런 판단 아래 현대차-기아차-쌍용차 등 국산차의 디자인을 점검하는 글을 상하 두 편으로 정리한다. 메시지는 자명하다. 110년 서구 차 역사에 비해 우린 절반밖에 안 되지만, 디자인 정체성의 구현 없이 차 산업의 내일은 없다는 인식이다. [편집자 주]

   
▲ 조우석 언론인
[연속칼럼] 국산차 디자인의 혁신, 더 미룰 수 없다-下
 
2년 전 개봉했던 거장 리들리 스콧의 영화 '올 더 머니' 도입부에 멋진 자동차의 등장이 썩 인상적이었다. 1960년대 당대 세계 최고 부자인 J. 폴 게티의 손자와 엄마 아빠 일행이 당시 유행하던 미국 대형승용차에 몸을 감싼 채 미끄러지듯 이탈리아 로마 시내를 달리는 장면 말이다.

당연히 운전사가 딸렸는데, 차체가 요즘과 달리 엄청 길쭘한데다가 트렁크 뒤의 크고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붙잡았다. 테일핀(tailfin), 말 그대로 꼬리지느러미인데, 전투기 날개에서 영감을 받았던 그게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로 콤팩트해진 차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풍경인데, 테일핀으로 가장 유명한 차는 1959년형 캐딜락 엘도라도다.

   
▲ 화려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미국 풍토를 반영한 1959년형 캐딜락 엘도라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의 차로 꼽히며 특히 전투기 날개에서 영감을 받은 테일핀(tailfin)이 크고 화려한 걸로 유명하다. /사진=조우석 제공

차 디자인, 현대미술보다 외려 더 중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의 하나로 꼽히며, 전후 풍요의 상징이자 화려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미국 풍토를 반영한 차였는데, 화려한 핑크색이 특히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고 <카 디자인 북>(조경실 지음)에 쓰여있다. 확실히 자동차 디자인은 시대와 나라 따라 바뀌는데 1950~60년대는 자동차의 바로크시대다.

당시엔 실용주의와 화려함이 공존했는데 그때 차들을 유심히 보면 결코 재현될 수 없는 멋진 시기라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길거리를 달리는 멋진 차는 그때도 지금도 선망의 대상인데, 얼마 전 타계한 배우 신성일이 타고 다니던 빨간색 머스탱도 그랬다. 1960년대 중반엔 개성 있는 스포츠카 스타일의 스포츠 쿠페도 유행했는데, 바로 그것이었다.

정확하게 1969년 식 머스탱 마크1인데, 거금 640만 원에 샀다. 이태원 그의 집값의 두 배 이상이던 돈 덩어리 차를 보면 미군들도 우르르 몰려들어 넋을 잃고 구경하기 바빴고, 막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하며 박정희 대통령 일행의 차와 경쟁하듯 스쳐가기도 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확실히 자동차 디자인이야말로 20세기 내내 대중의 관심의 표적이었다. 분류컨대 산업디자인이지만 현대미술 등 어떤 파인아트의 영역보다 시선도 끌고 다양한 흐름을 연출해낸 도시의 꽃이었다. 1886년 독일의 칼 벤츠가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한 이후 단순한 마차 형태에서 지금의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변화를 이뤄왔다.

자동차 디자인의 중요성이 각인된 건 1930년대다. 대공황 직후 프레스 가공기법이 도입되면서 차 외관에 조형성을 가미할 수 있게 됐다. 그걸 상징하는 게 1934년 크라이슬러의 첫 유선형 자동차 에어플로우. 당시로선 얼마나 새로운 컨셉트였으면 '공기의 흐름'이란 작명까지 했을까.

1940년대는 2차대전의 영향으로 군사기술을 적용한 차 산업이 이뤄졌다. 일테면 미 국방부 요청으로 포드가 만든 게 4륜구동 지프다. 그게 1960년대 바로크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모델 체인지가 이뤄졌고, 1970년대엔 요즘 차의 원형인 콤팩트한 차가 집중 개발됐다. 요행히도 그 흐름을 잘 탔던 게 아시아에서 두 번째 고유모델인 현대 포니였다.

1974년 이탈리아 디자이너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포니는 실로 뛰어난 디자인이 아닐 수 없는데, 어느 정도일까? 바로 그해 나왔던 폭스바겐 골프 1세대보다 밀릴 게 없다. 골프는 박스스타일인데, 포니도 그쪽이다. 골프도 주지아로가 디자인했으니 비슷하게 보이는 게 당연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 포니가 더 간결한 맛이 있다.

   
▲ 아시아에서 두 번째 고유모델인 현대 포니1(1974년형). 이탈리아 디자이너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이 차는 바로 그해에 함께 나왔던 폭스바겐 골프 1세대의 디자인에 밀릴 게 전혀 없다. /사진=조우석 제공

한국만의 고유함에 모던한 맛 살려야

근데 비교대상인 골프가 어떤 차란 말인가? 단일 차종으로 가장 오래 팔렸다는 폭스바겐의 간판이며, 지금도 유럽 최고다. 그게 지금 골프 8세대까지 진화했지만, 그에 비해 현대 포니는 지속적인 진화 과정이 아쉬웠다. 즉 유럽차와 우리는 단지 한 끗발 차이인데, 이게 커서 문제다. 실은 포니 디자인은 1972년에 선보였던 일본 혼다의 시빅보다도 더 낫다.

시빅 등장 이후 혼다는 베스트셀러 자동차 반열에 올랐고, 저출력 엔진으로 구현한 뛰어난 연비까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 살펴보면 시빅은 촌스럽기 짝이 없다. 결국 한 번 이룩한 디자인의 혁신을 자기 DNA로 만들어내는 꾸준함에서 우리가 밀릴 뿐이다.

지난 번 글대로 자동차 역사는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서구 사회가 주도했고, 우린 따라가기 바빴다. 과거 국내 차 디자인은 세계시장의 흐름을  베끼는 수준의 '미 투 전법'을 구사했지만, 그걸론 안 된다는 인식도 분명해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 차 시장의 5위인데, 앞으로의 트렌드를 이끌고 갈 철학과 뚝심이 없이는 우리가 원하는 도약도 없다.

물론 차 디자인에서 핵심을 그 나라 풍토와 문화를 살려 한국적 예술철학을 기반으로 그 무엇 즉 K 팩터(factor)라고 지적했지만, 이참에 고백하자. K 팩터는 한 때 일본 도요타의 다자인 책임자였던 와헤이 히라이가 만든 용어 J 팩터에서 따왔다.

일본 디자인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그걸 오래 고민하던 차에 결국엔 자국의 예술철학을 기반으로 자동차 디자인밖에 길이 없다는 걸 확인했고, 그 방향에서 도요타와 렉서스 디자인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정도의 고민을 해야 차체에서 그 나라만의 고유함이 살아있고 동시에 모던한 맛이 가능하다.

그거야말로 차 산업의 도약이자 서울을 아름답게 만들고 결국 시민의 미술 감각을 끌어올리는 쾌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일테면 아는 이는 다 알고 있지만 현대차 디자인 총괄은 이상엽인데, 그가 제너럴모터스, 폭스바겐, 벤틀리를 거쳐 현대차로 옮긴 것도 벌써 몇 해 됐다.

당신의 명성을 우리는 충분히 존중한다. 클래식과 트렌드를 오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급 디자이너가 그 사람인데, 그래서 안타깝다. 왜 아직도 현대차는 이렇게 구린 맛을 탈피하지 못하는지 답답하다. 아직도 뭔가 어색한 쏘나타 DN8, 오각빤스 그릴 소리를 듣는 제네시스 G90, 투박하기 짝이 없는 펠리세이드의 크롬 범벅 그릴….

이래선 중국차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결국 다자인의 기본을 다지는 게 필수라는 걸 재확인한다. 더 이상 수요자들의 눈높이가 높네 낮네 할 게 아니라 디자이너, 당신들이 문제다. 디자인의 정체성은 한국적 예술철학을 기반으로 한 그 무엇 즉 K 팩터가 담겨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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