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모델 탄생지…발렌베리 그룹 대혼란 극복 주도 상생 노사 관계 이끌어
   
▲ 이석원 객원칼럼니스트
스톡홀름 동남쪽 발트해로 이어진 호수의 도시 살트세바덴(Saltsjöbaden). 지난 15일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처음 스웨덴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총리가 한-스웨덴 정상회담을 한 곳이다.

크고 작은 요트와 보트들로 가득한 클럽을 품고 고풍스러운 듯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새하얀 호텔 하나. 스웨덴의 대표적인 재벌인 발렌베리 그룹 소유의 휴양지에 발렌베리가 세운 그랜드 호텔에서 한국과 스웨덴은 지난 60년의 친분을 특별한 협력으로 발전시킬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 날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과 북미의 대화에 있어서 스웨덴이 적절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고, 스테판 뢰벤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회담 내용보다도 우리 국민들 눈에는 뉴스 화면을 통해 보뎌진 문 대통령과 스테판 뢰벤 총리가 함께 거닐던 호숫가의 풍광과 그 호수를 배경으로 새하얗게 반짝이는 호텔 건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 스웨덴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시각 15일 오전, 스테판 뢰벤 총리와 쌀트쉐바덴 그랜드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그런데 바로 이 아름다운 장소가 현재의 스웨덴을 만든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을 아는 한국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81년 전 지금 '스웨덴 모델'이라고 부르는 스웨덴의 노사 관계, 복지의 모델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스웨덴을 비켜가지 않았다. 수출 주도형 산업의 비중이 강한 스웨덴은 특히 철광석 수출에 치중했는데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철광석 수출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대량 해고와 직장 폐쇄 등으로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스웨덴의 노동자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 내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스톡홀름과 예테보리를 비롯한 대도시는 물론 중소 도시에서도 연일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노동조합원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던 학생과 부녀자들은 물론 노인들과 배고픔에 지친 어린 아이들까지 시위에 합류하며 스웨덴 정국은 대혼란에 빠졌다.

1931년 5월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60여 km 떨어진 오달렌(Ådalen)이라는 소도시의 한 제재소에서 파업이 있었는데, 이를 지지하던 3000여명의 시위대에게 군대가 발포했다. 스웨덴 역사가 ‘오달렌 사태’로 기억하는 일이다. 이 사건으로 임산부를 포함한 5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 스웨덴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오달렌 사태'는 이듬 해 총선에서 스웨덴 정권을 바꿨다. 40년 이상 집권하던 우파 정권이 마감한 것이다.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노동당이 원내 최대당이 됐고, 보수성향의 농민당(중앙당의 전신)과 연정해 집권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웨덴의 노사 분규로 인한 혼란은 잠재워지지 못했다.

이후 페르 알빈 한손 총리는 노조와 사용자들의 타협의 테이블을 계속 만들었지만 결론도 없이 갈등만 이어졌고, 시민 삶의 피폐는 가시지 않았다. 노사 문제에 정부가 나서는 것을 꺼렸던 건 기업뿐만이 아니라 노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더 이상 정부의 개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고, 발렌베리 가문에서 먼저 나섰다.

   
▲ 발렌베리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스톡홀름 최고급 호텔인 살트세바덴 그랜드 호텔. 정중앙 3층에 있는 홀에서 1938년 ‘살트세바덴 협약’이 탄생했다. /사진=이석원 제공

   
▲ 호텔의 뒤쪽은 수십 척의 요트와 보트가 즐비하다. 근처에 유명한 요트 클럽도 있다. /사진=이석원 제공

발렌베리 그룹의 총수는 당시 재무장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에게 자신의 휴양지인 살트세바덴의 그랜드 호텔에 테이블을 마련할 테니 담판을 짓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 LO(스웨덴 노조연맹)와 기업 대표인 SAF(스웨덴 사용자연합), 그리고 사민당이 모여 스웨덴의 미래를 결정한 것이다.

이 협약에는 노조와 기업 모두가 엄청난 희생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다. 비그포르스는 LO에 '고용의 유연성'을 요구했다. 그리고 생산성의 극대화에 협조할 것도 당부했다. 그리고 기업에게는 최상의 일자리와 그 근로 복지를 요구했다. 또 직원을 해고할 수 있지만 해고된 직원을 책임지게 한 것이다. 그리고 최고 85%에 이르는 소득세도 내게 했다.

1938년 12월 20일, 살트세바덴 호숫가 그랜드 호켈 3층에서 고용과 해고가 유연하지만, 그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무한하게 한 '살트세바덴 협약(Saltsjöbadsavtalet : the Saltsjoebad agreement)', 이른바 '스웨덴 모델'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이후 스웨덴은 이러한 노사 관계를 바탕으로 '직장인들의 천국'이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어쩌면 우리의 관점에서는 배치되는 2개의 정서가 자리 잡은 나라가 된 것이다.

근로자는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근로 환경에서 일을 하며 노동생산성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업은 그를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높이면서도 국제적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도 스웨덴에서는 공공기관은 물론 개인 기업들이 대량 해고가 이뤄진다. 국제 경쟁력의 변화라든지, 세계 금융 시장의 변동에 따른 유동성 약화, 산업 형태의 변화 등에 따라 전통적인 노동 시장의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든 기업에서 대량으로 해고를 한다고 해서 그로 인한 노사 분규는 발생하지 않는 곳이 스웨덴이다. 최근 국적 항공기 SAS에서 일시적인 파업이 있긴 했지만, 노조의 힘이 그토록 강함에도 스웨덴에서는 어지간해서는 파업이 없다.

또 비정규직도 적지 않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도 거의 없다. 비정규직의 상당수는 자기 필요에 의한 자발적 비정규직이고, 물론 살트세바덴 협약에 기초해서 임금의 차이가 없으니 갈등이 일어날 일도 없다.

결국 노조와 기업, 그리고 정부가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어낸 ‘스웨덴 모델’은 복지 천국 스웨덴의 기반이 된 것이다. /이석원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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