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아닌 극일의 자세로 배울점은 배워야…글로벌 외교의 중요성 깨우쳐
도쿄 시내를 5일 동안 지하철과 도보로만 여행을 했다. 도쿄 지하철 안에서 조그만 구인광고란(求人廣告欄)이 눈에 띄었다. 초임 연봉은 600만엔∼700만엔(한화 6000만원∼7000만원)이 되고, 경력이 많아질수록 연봉액도 점점 많아지는 광고란이었다. 다른 지하철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해준다는 구인정보(求人情報) 소개업체 광고가 붙어 있었다.

일할 직장을 소개해 준다는 구직업체 광고는 볼 수 없었다. 나리타 국제공항의 입국심사장에서도 남녀 노인들이 제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인들이 공원에서 휴지 등을 줍는 한국과는 많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일본에서는 일자리가 넘쳐나서, 한국의 젊은이들을 일본 기업에 채용시키려 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관광지의 아이스크림 상점 벽에서는 알바생을 구하는 광고지가 붙어 있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로 1일 3∼4 시간 근무이고, 시급은 930엔(한화 9300원) 이상이라는 광고지였다.

도쿄의 최저시급은 930엔이었다. 현재 일본의 일인당 GDP는 4만2020달러이고 한국은 3만1940달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현재 최저시급이 8350원으로 계속 1만원까지 올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우리 정부 정책이 참으로 허황되고 화려한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도쿄역은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였다. 무질서하고 시끄러운 시위장소가 된 우리나라와는 많은 점이 달랐다. /사진=이명호 제공

   
▲ 롯폰기, 신주쿠, 시부야, 긴자, 우에노, 가와고에, 아사쿠사 그리고 아키하바라 등 도쿄의 번화한 거리들을 방문했지만 빵빵거리는 차량의 경적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다. 사진은 롯폰기 거리. /사진=이명호 제공

도쿄시내 방문 첫날 오후에 도쿄역을 방문하였다. 마침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2개 학교의 중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중학생들이 학생복을 입은 모습은 모두가 다 한 줌 흐트러짐이 없는 단정함 그 자체였다. 그 중학생들이 똑바로 두 줄로 맞춰서 도쿄역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서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모습은 마치 군인들의 행군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장면은 평생 동안 교사로 근무한 필자에게는 감탄을 넘어 경악을 느끼는 순간이 되었다. 여러 번 수학여행 학생들을 지도했던 필자의 경험상, 보통 수학여행을 끝마치고 돌아갈 때의 우리 학생들의 모습은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롯폰기, 신주쿠, 시부야, 긴자, 우에노, 가와고에, 아사쿠사 그리고 아키하바라 등 도쿄의 번화한 거리들을 방문했던 5일 동안에 빵빵거리는 차량의 경적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또한 빨간 신호등 앞에서 정차한 차량들의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모든 도로들에서 정지선 밖으로 정차한 차량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차간 거리는 충분한 간격으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도쿄 시내 도로 그 어디에서도 신호·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된 곳을 한 번도 발견할 수 없었다.

도쿄 도로들과 지하철 안 보도들  어디에서도 길거리 노점상을 볼 수 없었다. 도쿄 시내와 근교 마을에 지어진 주택들과 아파트들의 베란다들은 모두들 건설되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지, 베란다 새시들을 설치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구조변경의 현상들은 없었다. 일본 사람들의 준법정신을 엿볼수 있었다.

아주 조그만 식당들을 여러 번 들어갔었다. 그 식당들의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은 마치 한국의 큰 호텔의 요리사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즐거운 표정으로 요리사 두건을 쓰고 요리사 제복과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프로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음식점뿐만 아니라 모든 종업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는 감동적이었다.

때마침 대우조선해양 노조원들이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현대중공업 실사 반대를 한다는 노조 파업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도쿄의 거리들 어디에서도 농성이나 시위 현장을 볼 수 없었다. 아울러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플래카드와 시위용 포스터를 단 한 곳도 발견할 수 없었다, 외국 바이어들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방문한 후에, 어느 나라에 투자할 것인가는 분명했다.

전 세계 대학 순위 13위이고 아시아권 대학 중 최고인 도쿄대를 방문하였다. 평일 오후였지만  캠퍼스는 참으로 조용했다. 이런 조용한 분위기에서라면 학문이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입구부터 광고성 플래카드들이 펄럭이고 모든 게시판들뿐만 아니라 대학 건물 벽들과 땅바닥들에까지 정치적 투쟁의 대자보들과 광고지들이 붙어 있는 시끄럽고 번잡한 서울대학교 분위기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도쿄 방문 중에 가장 많이 사용했던 일본의 화폐 1000엔에 있는 인물은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1876.11.24~1928.5.21)라는 과학자이다. 그는 일본의 세균학자이고 독사 및 사독(蛇毒)의 연구를 하였으며, 매독과 트라코마·오로야열·파상풍·황열병 등의 연구에도 종사하였다.

일본의 화폐에 과학자가 있다는 것은 과학자가 아닌 주로 조선시대 인물들이 있는 한국의 지폐와는 아주 대조적인 것이었다. 이런 상황들을 살펴볼 때 일본이 지금까지 자연과학 부문에서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과 생리학·의학상 등 22명의 노벨 과학상들을 수상하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2014년 10월에  판교 야외 공연장 인근 지하주차장 환풍구 덮개가 무너지는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필자는 도쿄 도로들에 설치된 지하철 환풍구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도쿄의 지하철 환풍구 덮개들은 덤프트럭 등 중장비들이 지나가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철강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지하철 환풍구들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위험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한국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도쿄의 길거리들에서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들의 등하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일정한 규격의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그 책가방들에는 安全第一(안전제일)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일본 사람들의 안전의식은 유치원 생활 때부터 교육을 통해 몸에 배어진 습관이었다.

필자는 도쿄 시부야 하라주쿠역에서 가까운 도고 신사(東鄕 神社)를 방문했다. 이곳은 평소에 필자가 꼭 방문하고 싶었던 장소였다. 이곳은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함대의 총사령관이었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을 섬기는 곳이었다. 도고 제독의 유명한 일화(逸話)가 있다.

러일 전쟁 승전 축하연이 있던 날 밤, 어떤 신문 기자가 도고 제독에게 "각하의 업적은 영국의 넬슨 제독, 조선의 이순신 제독에 비견할만한 빛나는 업적이었습니다."라고 아부성 발언을 하자, 도고 제독은 그 기자를 즉각 야단쳤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마라. 그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이끌어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왜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공덕을 기려서 치하하는 대신, 이순신 장군을 옥에 가둬 모진 고문을 해서 온갖 고통을 겪게 한 후에 장군을 백의종군하게 하는 모욕을 주었던 당시 선조와 고관대작들의 참담한 행태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 반도 끝인 신의주까지 도망을 갔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적국(敵國)의 장수를 존경하고 칭찬하는 것이 바로 일본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서 전쟁의 참패와 참상(慘狀)을 안겨준 미국을 일본은 증오하지 않고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워서 일본은 세계경제대국 3위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한국의 많은 분들이 반미(反美) 구호를 외치는 것이 마치 지성인인양 착각하고 있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 지난 36년동안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해 왔던 사실만을 언급하면서, 일본보다는 중국과 러시아를 좋아하는 것을 마치 애국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과 일본 두 나라들 중에서 어느 나라에서 배울 점이 더 많은가! 우리가 항상 고통스럽게 겪고 있는 미세먼지들은 주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불량식품들, 부정 의약품들은 주로 어디에서 오는가! 보이스피싱 사기의 근거지는 주로 어디인가!

조선시대의 참으로 허약하고 참담한 현실 가운데에서, 우리나라 한복판은 강대국들의 전쟁터였다. 러일 전쟁과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했다면 우리나라는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소련의 레닌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뼈아픈 과거 역사를 거울삼아서 다시는 그런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일본만을 미워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국민이 되지 말아야겠다. 즉 반일(反日)이 아니라 극일(克日)의 자세로, 일본인들의 장점들과 바람직한 면들을 겸손하게 배워서 일본을 이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반미 감정과 반일 감정만으로는 글로벌 시장 경제 속에서 우리가 생존하기 힘들다.

도쿄 시내 가는 곳마다 일본인들의 남들을 배려하는 모습들과 친절한 모습들을 경험했고, 그들의 준법정신과 안전하고 튼튼하게 설치된 시설물들을 볼 수 있었다.

아,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현실들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5일 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기적적인 경제 발전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일본은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나라가 되었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결승선을 향해서 허덕거리며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호 전직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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