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진술만 듣고 '윗선 개입' 수사 안해
교육부, 해명 없고 담당자 직위해제 계획도 없어 비호 의혹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전국 43만 초등학생들의 교재로 쓰인 사회교과서 213곳이 불법으로 수정되거나 삭제된 사건으로 당시 교육부 교과서정책과장과 교육연구사가 불구속 기소됐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이에 대한 아무런 해명이 없고 담당자 직위해제 계획도 없어 '비호' 의혹이 커지고 있다.

공무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일단 직위해제되는 경우가 많지만 교육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사건을 맡은 대전지방검찰청은 관계자 진술만 듣고 '윗선 개입 여부'에 대해 수사하지 않아 축소·은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26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문재인정권 입맛에 맞게 사회교과서를 대대적으로 고친 조직적 범죄이자 국기문란 게이트라고 보고 있다. 

앞서 대전지검은 집필자인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가 고치지 않았고 수정에 동의한 적 없지만 교육부 담당과장 및 연구사, 출판사 직원이 함께 무단으로 교과서를 수정하면서 박 교수 도장을 이용해 가짜 서류를 만들었다고 결론내렸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교육부는 수정을 거부한 교수들까지 회의에 참석한 것처럼 조작했고 출판사가 갖고 있던 집필자들 도장까지 몰래 찍도록 만들었다. 검찰은 직권남용 및 사문서 위조라는 혐의로 관계자들을 기소했다.

   
▲ 교육부가 지난해 초등학교 6학년이 배운 국정 사회 교과서 내용을 문재인 정권 입맛에 맞게 고치는 과정에서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윗선으로부터의 지시나 보고 없이 이 3명이 알아서 다 했다는 것이 대전지검의 수사 결과라는 점이다.

당시 담당자들의 윗선은 남부호 교육과정정책관(국장), 이중현 학교정책실장, 박춘란 차관, 김상곤 교육부 장관에 이른다.

이들이 사회교과서를 불법으로 수정, 삭제하던 시기(2017년 9월~2018년 2월)는 박근혜정부 국정교과서에 연루된 교육부 관료들이 적폐청산 대상으로 몰락해 좌천되던 때였다.

하지만 교과서를 불법 수정한 후 담당 과장은 아무런 문제 없이 교과서 배포 직전 해외 한국교육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한국교육원 원장은 자녀 등 가족과 함께 교육문제 없이 3년간 해외에서 근무할 수 있어 '꿈의 자리'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교과서 불법수정 의혹이 불거지자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서 "출판사와 집필자간 문제이고 따로 지침 준 것이 없다. 교과서 수정 과정은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한 현직검사는 미디어펜과의 전화통화에서 "배후에 대한 의혹을 빌미로 누군가가 고소 고발하면 사건은 검찰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며 "도저히 과장급 공무원이 혼자 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전지검은 꼬리자르기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윗선의 인가 없이 서너명이서 쉽사리 할 수 없는 작업을 몇달만에 일사천리로 진행했다는 주장인데, 일개 과장급 공무원이 저술자 동의없이 정권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200곳 이상 고쳐 각급 초등학교에 배포하는 것을 주도했다고 믿으란 것이냐"고 반문했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 또한 "김상곤 전 장관과 교육부 고위관료가 개입하지 않았다고 결론 낸 경위를 밝혀야 한다"며 "대전지검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그런 판단을 했다면 '살아 있는 권력'에 꼬리 내린 검찰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