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 고난 이겨낸 독립운동이 결실맺어, 북한초대내각은 친일파들 많아

   
▲ 박종운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2014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건국 66주년 생일이다. 1948년에 국민들의 총선거로 위임받은 국민의 대표들이 민주공화국 헌법을 만들고 대통령을 뽑고 정부를 구성했는데, 이는 정말이지 우리 민족 5천년래 가장 큰 사건이었다.늘 왕의 지배를 받았지, 한 번도 국민이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이제 민주주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의 성격을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더구나 이는 갖은 고난을 이겨내며 치열한 독립운동과정에서 피운 꽃이다.

1948년 명실상부한 민주독립국가의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민주독립운동은 대체로 3개의 시기를 거치며 진행되었다.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스러져가는 대한제국을 되살리려고 애썼던 제1기, 군국주의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 독립국가의 이상을 그렸던 제2기, 1945년 일본 항복 후 미소군정의 신탁통치추진에 맞서 반탁 즉시독립운동 끝에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로 국민의 대표를 뽑아 독립국가로서의 제1보를 내딛은 제3기가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립운동 제1기: 이 시기의 독립운동은 개화운동의 맥락 속에서 전개되었다.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의 이용후생학파(북학파), 그리고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문하에서 성장해서 무력으로 개화정권을 만들려고 했던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의 갑신정변 등이 각각 청과 일본의 선진문물을 배우려던 것이었다면, 갑신정변의 실패 후 미국에 가서 신문물을 배웠던 서재필이 귀국 후 조직한 독립협회는 미국식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갑오경장 후 귀국했던 서재필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중요하다고 보고, 아관파천 사건 이후 서대문 밖에 있는 영은문을 헐고 국민성금으로 독립문을 만들어 독립의지를 가시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이상재,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했다. 독립협회는 독립신문을 만들어서 국민들을 계몽했고, 과시하기도 했다. 만민공동회 집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참정권을 추진하여 민선의회의 성격이 가미된 중추원 관제를 만들기도 했다.

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의 확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으나,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추진한다는 혐의로 해산을 당했다. 비록 독립국가의 가능성을 꽃피워내지는 못했지만, 독립협회 운동의 정신 및 그 출신들이 이후 항일 독립운동의 중추가 된다.

독립운동 제2기: 공화제 추진 음모 건으로 한성감옥에 투옥된 이승만은 ≪독립정신≫이라는 독립운동사의 불후의 명저를 저술하였다. 국민들이 직접 계몽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순 한글로 작성된 이 책은 입헌군주제를 내세우긴 했으나, 미국의 독립혁명을 찬양함으로써 실제로는 민주공화제 사상을 기본으로 삼고 있음을 드러냈다. 고종은 그간 미국이 이승만을 구명해왔던 점을 고려하여 이승만을 미국에 밀사로 파견하였다. 이승만은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미국임을 간파하고, 독립운동에서도 미국의 도움을 확보하는 것을 우선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1919년 고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3.1독립만세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그 후 한성정부, 노령정부, 상해정부 등 독립운동가들에 의한 임시정부 수립운동이 생겨났다. 이를 통합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해임시정부다. 대통령으로는 독립협회운동의 중추적 인물이었던 이승만이 선출되었다. 상해임시정부는 독립운동 사상 대한제국의 복원이 아닌 민주공화제 대한민국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혁명적 전환을 이룩하였다. 이승만은 상해에서 하는 독립운동보다는 세계정세를 좌우하는 미국을 움직이는 독립운동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후 구미위원부장으로 미국을 움직이는 노력을 하였다.

≪일본의 본색(Japan Inside Out)≫이란 책을 써서 일본의 미국 공격을 예견했고, 1941년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국민들로부터 선견지명을 인정받았다. 미국의 대일전 참전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은 마침내 종말을 향해 갔다.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발의 핵폭탄으로 일본은 결국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한반도에도 민주독립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되었다.

독립운동 제3기: 흔히 1945년 8월 15일을 해방일이라고 하는 데 실은 그렇지 않다. 그 날은 일본 패망일일 뿐이다. 실제로 일제 총독부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수립된 소군정과 미군정이 대신하였다. 물론 히틀러의 생활권(Lebensraum) 이론과 유사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독립을 부정하는 것이었던 것과 달리, 미소군정은 독립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신탁통치 과정을 거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독립운동은 신탁통치에 반대하고 즉시 독립을 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반탁운동에 적극적이어서 국민적 지지를 모을 수 있었던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찬탁으로 돌아섬으로써 국민적으로 고립에 처하게 되었다. 게다가 소련의 점령지 사회주의화가 동유럽에서 진행되고, 북쪽에서도 1946년 2월에 임시인민위원회 정권(수상 김일성)이 만들어지고, 1947년에는 정식으로 인민위원회 정권까지 출범시키는 등 일방적으로 점령지 사회주의화를 진행하자, 미국의 세계전략이 사회주의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으로 바뀌게 되었다.

세계 정세를 간파한 이승만은 미국을 설득하러 갔고, 귀국했던 임시정부는 국민대회를 열어 이승만을 임시정부 주석으로 김구를 부주석으로 선출한다.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는 이런 맥락에서 실시되었다. 비록 김구가 돌연 유엔감시하의 총선거를 반대하고 김일성과의 회담을 추진하는 등 이상한 행보를 했지만, 대한민국 건국으로의 도도한 물결을 바꾸지는 못했다.

총선거를 방해한 소군정과 김일성 정권 때문에 남쪽에서만 선거가 치러졌지만, 최초로 국민이 뽑은 국민 대표에 의해서 헌법이 만들어지고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총의에 의한 민주주의 독립혁명은 유엔의 지지 하에 달성되었다.

이러한 독립운동과 독립의 성취 과정을 돌이켜볼 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은 독립협회로부터 시작된 독립운동이 정신적으로나 인물 면에서나 일관성을 가지고 결실을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과 건국의 아버지들이 항일운동의 고난을 뚫고 변화무쌍한 세계정세까지 잘 활용하여 만들어낸 위대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1948년 5.10 선거를 방해하고 민주주의 건국에 훼방을 놓은 세력은 점령지 사회주의화를 전면화하였다. 소군정을 없애는 대신 인민위원회 정권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공식화하였다.

이제 한반도에서는 항일독립운동과 일제의 대결이라는 주요모순에서 자유민주주의 반공 대한민국과 점령지 사회주의화 세력의 대결이 주요모순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주요모순의 변화 때문에 많은 친일파들이 죄의 경중에 따라 혹자는 처벌되고 혹자는 용서되고 재기용되었지만, 대한민국의 초대 내각이 독립운동가 일색이었던 반면, 북한의 내각 등 주요 직위들에는 동생 김영주 외증조부 강양욱 등 친일파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1948년 8.15 독립 건국 이후 66년이 지나는 동안 대한민국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상위권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반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3대세습 독재에다가 세계에서 가장 자유가 없고 못사는 나라로 추락했다. 현실이 어떤 체제가 우월한 체제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파나 일부 사람들은 그릇되게도, 독립운동을 중단하고 소련 하바로프스크에 숨어있던 세력이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인 양 하고, 독립이 미처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마치 1945년 이후의 해방공간을 미군정이 압살한 듯이 이야기하고, 건국이 1948년이 아닌 듯이 이야기하고, 또 북한이 친일파 척결을 확실하게 한 듯이 말하고, 대한민국 건국이후에도 여전히 주요 모순이 반공여부로 바뀌지 않고 친일여부인 듯이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추적해보면, 그리고 그 이후 독립운동을 성공으로 이끈 결단들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들이 사실이 아님을 이내 알 수 있다. 이러한 혹세무민을 확실히 떨쳐내는 것이 시급하다.

나아가 민주주의 독립 건국 66주년을 맞이하여 다시금 고난을 뚫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우리에게 물려준 선열들에게 고마워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더욱 번영을 꽃피우고, 북한민주화와 북한해방으로 통일을 이룩하는데 나서야 할 때다. 그래야만 고난을 이겨낸 선조들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될 수 있다. /박종운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