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소멸시효 10년 지난 상태…분쟁 종지부 아닌 시작"
   
▲ 금융감독원 표지석/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금융감독원이 내달 중에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건을 은행의 키코 상품 판매를 불완전판매로 규정하고 피해액의 20~30%를 배상하라는 권고안을 내는 방안이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업계에선 권고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낮아 사태의 종지부가 아닌 또 다른 분란의 시작일 뿐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0일 금융권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르면 내달 9일, 늦으면 16일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키코 사태 재조사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7월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직후 키코 사건 재조사에 착수한 이후 1년 만이다. 윤 원장은 올해 상반기 중 결론 도출을 예고했다. 그러나 피해기업과 은행 간 입장차가 워낙 커 분쟁조정위원회 상정 시기가 미뤄져 왔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번 분쟁조정 대상은 △일성하이스코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4개 업체로, 피해금액이 총 1500억원 수준이다.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키코 상품 때문에 회사별로 30억~8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봤지만 앞서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 절차를 거치지 않아 이번에 금감원의 분쟁조정 대상이 됐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대거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732개 기업이 3조30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

당시 피해기업 상당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대법원이 2013년에 판결을 내려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키코 계약의 불공정성이나 사기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는 키코 상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의미였으므로 사실상 은행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금감원은 이번 재조사 과정에서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부분, 즉 불완전판매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이는 이번에 제시할 분쟁조정안이 불완전판매 부분에 방점이 찍혀 은행들이 이에 대한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이 상품 위험성을 어떻게 고지했느냐는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4개 기업별로 과실비율도 다를 전망이다.

금융당국 내외부에선 피해기업이 입은 손실의 20~30%를 은행에 배상토록하는 분쟁조정안이 유력하다. 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이 큰 경우 배상비율이 50%까지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은행들이 부담할 배상액은 300~450억원 선이 된다.

은행들은 겉으로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를 본 후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손해배상에 대한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이므로 은행이 분쟁조정안을 거부하고 피해기업들이 이후 소송을 걸어도 승산이 희박하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은행들은 이번에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처럼 앞서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업이 150곳에 달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키코와 유사한 상품으로까지 전선이 확대될 경우 피해 규모가 조 단위로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선 은행이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일 경우 추후 유사 사안으로 분쟁조정 범위가 확대돼 은행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감독당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일정 선에서 정무적 타협안이 도출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은행들이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을 수용하면 다행"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수용 불가능하고 수용을 하지 않을 경우 금감원의 분쟁조정은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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