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 검토
WTO 소송서 승소해도 실효성 낮아…상대국 제재 불가
   
▲ 나광호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나광호 기자]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한·일 수산물 분쟁에서 WTO가 한국의 손을 들었고, 정치 이슈를 이유로 경제보복을 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WTO협정에 담겼다는 점을 들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지만, 일본이 통신기기 및 첨단소재 수출 통제를 비롯한 경제적 이슈 뿐 아니라 비자 발급 등 다른 분야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확전을 선택할 경우 추가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WTO로 간다고 해도 그간의 사례를 볼때 WTO 분쟁조정 절차의 경우 2~4년 가량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업계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승소하더라도 구속력이 없는 WTO가 상대국을 제재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로 꼽힌다.

실제로 미국이 한국과 불거진 11건의 소송 가운데 8건을 패소했으나, 판정 결과를 무시하거나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어 미국 무역법원(CIT) 등 현지 법원에 직접 제소하거나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있었음에도 또다시 WTO를 고집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이 한국 대사관 등에 규제 관련 내용을 언질도 하지 않은 채 '기습'을 감행한 것을 볼때 WTO 승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불거진다.

   
▲ 삼성전자 직원이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이번 조치가 정치적 갈등의 산물이라는 점도 거론된다. 일본 역시 對한국 수출 물량이 감소하면 손해를 입을 수 있으며, 지난해 기준 70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일본 여행을 다녀온 상황에서 비자 발급 제한시 관광수입 감소가 우려됨에도 이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을 두고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상을 뒤집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일본 경제단체들도 양국관계 악화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또한 판결이 나온지 일주일 만에 한국 정부가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을 통해 조선산업을 지원하면서 저가수주 국면이 형성됐다는 이유로 WTO 분쟁해결절차상 양자협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지원과 성동·STX조선해양 구조조정 등을 언급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이와 관련해 "양국 조선소는 건조하는 선종이 달라 경쟁관계가 아니다"라며 "강제징용 같은 정치이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상황 가운데 지난 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국제회의'에 참석, "이제까지 위안부와 관련한 노력에 있어서 생존자 중심의 접근법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들의 존엄과 명예를 다시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발언하면서 파장이 염려되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양국이 합의한 내용에 하자가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방침을 재차 밝힌 것으로,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조치를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 정부의 지지율 높이기 전략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고,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일로 인해 현재와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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