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이범호(38)가 현역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날, 은퇴식은 그가 숱하게 보여줬던 짜릿한 만루홈런만큼이나 빛나고 감동적이었다

이범호는 1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KIA 타이거즈전을 끝으로 20년간의 프로선수 생활과 작별을 고했다. 이범호가 거의 절반씩 몸담았던 두 팀간 경기가 이범호의 은퇴경기를 장식해 의미를 더했다.

   
▲ 사진=KIA 타이거즈


이범호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통산 최다 만루홈런(17개) 기록도 갖고 있지만 톱스타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또한 KIA에서 은퇴를 했지만 한화에서 10시즌, KIA에서 9시즌(2010년은 일본서 활약)을 뛰어 KIA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날 이범호의 은퇴식은 이전 어떤 레전드들의 은퇴식보다 야구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범호의 인간미, KIA 구단의 성의와 노력, 그리고 만루홈런 세리머니와 배번 승계식 같은 적절한 이벤트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

이범호는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선수 생활을 해왔으며 인성이 돋보였다. 

   
▲ 사진=KIA 타이거즈


사실 이범호는 현역으로 더 뛸 수도 있었다. 잦은 부상에 시달린 것이 은퇴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지만, 이범호쯤 되는 한 방 능력이 있는 베테랑이 좀 쉬어 가더라도 계속 뛰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더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범호는 '물러날 때'가 됐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시즌 중에 과감한 은퇴 결단을 내렸다. 구단, 코칭스태프, 후배를 두루 고려한 결단이기도 했다. 

평소 이범호가 보여준 인성을 감안하면 이런 식의 은퇴 결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내 김윤미 씨는 이날 동영상을 통해 "나는 프로야구 선수가 아닌 인간으로 좋아했다"고 남편의 인간미를 이야기했다. 이범호를 한화에 입단시켰던 정영기 전 한화이글스 스카우트 팀장도 이범호가 고교시절부터 홈런을 많이 친 것을 주목했지만 "진짜 영입했던 이유는 (이)범호가 잠재력도 있었지만 훌륭한 인성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한화 시절도 프런트나 선수들이 이범호를 다 좋아했다"고 증언했다. 

이범호에게 성대한 은퇴식을 안겨준 KIA 구단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베테랑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은퇴식을 준비해주지는 않는다. 그가 평소 얼마나 인성 좋은 선수로 선수단과 구단에 각인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날 은퇴식에서 KIA 선수들과 상대팀이자 친정팀 한화 선수들 모두 이범호의 은퇴를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앞으로 지도자로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이범호는 고별사를 통해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

KIA 측은 이범호의 은퇴 발표 후 성심껏 은퇴식을 준비했다. 이범호의 뜻을 받아들여 한화와 홈경기에 맞춰 은퇴식 일정을 잡았다. 박흥식 감독대행은 한창 시즌 중이고 순위다툼이 치열한 가운데도 이범호가 2000경기 출장을 달성하고 떠날 수 있도록 출전에 배려를 해줬다.

은퇴식에서 마련한 다양한 이벤트. 사인회나 가족들의 시구 시타, 양 팀 선수단의 축하와 격려, 고별사, 헹가래 등 일반적으로 은퇴식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외에도 이범호만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 사진=KIA 타이거즈


이범호의 옛 한화 동료였던 류현진(LA 다저스)이 동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해와 눈길을 끌었다.

'만루홈런의 사나이'를 위한 만루홈런 세리머니가 있었다. 이범호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5번의 타격 기회에서 3번째 만에 홈런을 날려 팬들에게 추억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그리고 '9회말 끝내기 만루홈런'같은 결정적 한 방도 있었다. 자신의 배번 25번을 KIA의 신예 스타로 떠오른 박찬호에게 물려준 배번 승계식 행사는 뜻깊게 다가왔다.

이범호는 한화 시절 7번을 달았고 KIA에 와서는 25번을 달고 뛰었다. 은퇴하는 선수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영구결번'이다. 하지만 이범호는 KIA에서 영구결번 대접을 받기에는 팀에 기여한 기간과 활약이 부족했다. KIA에서 영구결번은 선동열(18번)과 이종범(7번) 둘 뿐이다.

   
▲ 사진=KIA 타이거즈


이범호는 대신 자신의 25번을 KIA의 3루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박찬호에게 물려줬고 은퇴식에서 직접 유니폼을 입혀주기도 했다. 은퇴식에서 처음 나온 장면이었고, 나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장면이었다. 영구결번을 통해 오래오래 팬들에게 기억되는 선수들도 있을 것이고, 이범호처럼 후배에게 물려준 등번호를 통해 오래오래 팬들에게 기억되는 선수도 있어야 한다.

원정팀 한화의 원정 응원단까지 상당수 챔피언스필드를 찾아 이날 이범호의 마지막 현역 모습을 지켜봤다.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 '꽃범호'의 은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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