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비타협적일 것…돌파구 명분 북미정상회담 가능”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은 최근 북한이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은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인 행동결 입구론에 대한 분석과 대응책 마련을 위한 ‘시간 벌기’라고 분석했다. 

또 최근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충격에서 벗어나 대내외적으로 체면을 회복하는 정치적인 이익을 확보했고, 이후 미국에서 ‘핵동결 입구론’이 제시되면서 북한이 이를 자신들의 ‘새로운 계산법’ 요구가 관철된 외교적 승리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안보전략연이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북한 정세 브리핑에서 성기영 안보전략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한미훈련인 ‘동맹 19-2’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비핵화 실무협상과 연계하는 것은 시간 벌기, 미국에 대한 기선 제압의 목적이 있다”며 “또다시 미국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략연은 “북한은 협상팀 교체와 하노이회담 실패를 교훈 삼아 실무협상 초반에는 비타협적이고 원칙적인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의 ‘동맹 19-2’ 훈련과 실무협상 개최 연계도 이런 맥락의 결과라고 본 것이다.

“최선희 외무성 1부상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협상팀은 실무협상을 소홀히 한 하노이협상팀에 대한 처벌을 보고 위험회피 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으로 이 때문에 “실무협상 시작부터 디테일의 함정에 봉착할 소지도 있다”고 관측했다.

전략연은 예를 들어 “(북미가) 설사 핵동결 입구론에 합의하더라도 하노이 협상팀이 미뤄놓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 문제 즉, ‘비핵화의 최종 상태’, 신고와 검증의 문제 등 갈등 요인이 산적하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국무부는 “핵동결은 북한 비핵화의 시작 단계”라며 북한과 핵동결부터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18일 '상반기 북한 정세 평가 및 하반기 전망'을 주제로 정세 브리핑을 열었다. 왼쪽부터 전략연 임수호·김인태 책임연구위원, 김일기 북한연구실장, 이기동 부원장, 최용환 안보전략연구실장, 이상근 부연구위원, 성기영 책임연구위원./미디어펜

이와 관련해 최용환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핵동결 합의도 그 대상과 신고 및 검증까지 복잡한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이전에 포괄적 합의를 주장하던 미국이 단계적 입장을 수용하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볼때 과거 미국의 입장보다 전향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동 부원장은 “핵동결을 ‘새로운 계산법’으로 보는 것이 맞다. 북한의 요구가 관철됐다고 해석해도 무방한 것 같다”며 “핵동결부터 시작하면 신고 및 검증이 뒤따라야 하니까 북한이 곤혹스러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핵동결도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원장은 “핵동결의 초기 단계부터 신고 검증을 꺼내면 당연히 협상의 진전이 어렵다”며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이 지목한 시설 또는 북한이 신고한 시설에 대해 먼저 동결 조치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신고 검증이 이뤄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방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부원장은 “이건 개인적인 아이디어이지만,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지난 1월 스탠포드대학 연설 때 신고 검증 문제를 초기단계부터 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비핵화가 일정하게 진전된 시점에 이르렀을 때 신고 검증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신고 검증이 처음부터 발목을 잡는 요인이 안 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수호 책임연구위원은 “핵동결 입구론과 관련해 비건 대표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동결, 감축, 폐기의 3단계를 얘기한 바 있다. 핵동결 입구론의 핵심은 감축 단계를 집어넣은 것”이라며 “감축 단계를 집어넣었다는 점도 북한이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이나 미국이나 기존의 쟁점 사항이 비핵화의 이행을 단계적으로 하는 부분은 다 합의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합의 자체를 미국은 포괄적으로 하자는 입장이었고, 북한은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은 각 단계별로 성과를 보고 다음 단계를 협의하자는 주장이었는데 그것을 절충한 것이 비건과 폼페이오가 말한 3단계론”이라며 “하지만 미국이 포괄적 합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므로 비핵화의 최종 목표, 즉 비핵화의 정의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얼마나 창조성을 발휘해서 표현을 잘 담아내느냐는 쟁점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안보전략연구원은 “앞으로 북미 간 실무협상이 난항을 겪더라도 북미 두 정상이 정치적 이해를 고려해 실무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명분하에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하다”면서 “지난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에서 톱다운 방식의 유용성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