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여야 5당대표를 만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내달 종료 예정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연장에 대해 재검토를 시사해 파장이 일고 있다.

정 실장은 이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상황에 따라서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다음날인 19일 청와대는 정 실장의 발언에 대해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의 발언이었다”고 설명했지만, 국가안보의 컨트롤타워가 직접 한미일 3각 안보협력 파기를 언급한 것 자체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19일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파기 대신 화이트 리스트 배제를 경고하는 것으로 최종 공동발표문을 조율했다. 이를 놓고 격론을 벌인 것은 명장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으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해 경제보복을 가속화할 경우 한미일 공조의 연결고리인 지소미아를 파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청와대가 내달 24일 자동 연장을 거부하는 방식을 예고해 일본과 미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회심의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정보 등을 공유하기 위해 2016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다.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효력을 발휘하며, 효력 만료 90일 전 어느 쪽이라도 파기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하면 종료된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당장 미국 국무부가 18일(현지시간) 한국정부의 한일 GSOMIA 재검토 입장에 대해 “미국은 한일 GSOMIA 연장을 전극 지지한다”고 발표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전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이날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 노력에서 중요한 수단”이라며 “한국과 일본 양자 또는 미국을 포함해 3자가 동북아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데 정보 공유 능력은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은 지난주 워싱턴을 찾은 우리 정부 당국자들에게 “한미일이 지켜온 안보협력을 해치는 경우는 절대 있어선 안 된다”며 한일 갈등이 한미일 안보 동맹에 미칠 악영향을 가장 우려했다는 전언도 있다. 특히 “지소미아가 흔들리면 안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정당대표 초청 대화'에 여야 5당 대표 및 청와대 보좌진들과 입장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대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청와대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소미아 폐기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일본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할 경우 정부가 지소미아 폐기로 맞대응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일본정부가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절차는 이달 26일부터 30일 사이에 일본 각의에서의 결정되고 내달 22일 시행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특히 정 실장의 발언은 문 대통령과 5당 대표의 공개발언 이후 국가안보실의 현안 브리핑 때 나왔다고 청와대가 이날 확인했다. 앞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공개발언 때 “지소미아 폐기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당대표들과의 토론 시간이 아닌 현안보고 때 발언한 것이어서 더욱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심상정 대표는 공개발언에서 “일본이 한국을 안보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페기를 검토해야 한다”며 “안보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국가에 군사정보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나. 명분이 있다. 미국이 협력할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할 경우 한일 간 경제‧외교 갈등이 군사‧안보 분야로 번질 것은 자명하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일본이 경제보복을 가하면서 안보 문제를 명분으로 삼고 있는 아베정권에게 더욱 더 한국을 고립시킬 명분을 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른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고, 아베정권이 지소미아 파기를 각오하고 안보 문제를 내세워 문재인정부와 삼성 때리기에 나섰다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지난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이 방한한 이후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매슈 포틴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한일 동시 방문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 카드가 미국의 적극적인 한일관계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마침 미국 의회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결의안’이 가결되는 등 한일 간 중재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국제법 위반을 방치하고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고 압박했다. 자신들이 정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 시한인 18일까지 한국정부가 응하지 않았다는 데 따른 조치이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일본 경제산업성의 한 간부의 말을 인용해 “문재인정권이 계속되는 한 규제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정부의 장기전 돌입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