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정치자금 조달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출판기념회'가 최근 야당의원들을 겨냥한 검찰수사를 계기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현재 선출직 의원들이 하고 있는 출판기념회는 탈세이고 법의 사각지대"라며 "선출직 의원이나 로비를 받는 대상이 되는 고위 공직자들은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인 출판기념회란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주체는 검찰이었다. 검찰은 지난 19일 밤 출판기념회 축하금 명목 39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새정치민주연합 3선 신학용 의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간 합법적인 영역으로 분류됐던 정치인 출판기념회에 처음으로 법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문제는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책 판매대금 또는 출판 축하금이 불법정치자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신학용 의원은 검찰의 수사 소식을 접한 뒤 "과연 출판기념회를 통한 출판 축하금이 대가성 로비자금이 될 수 있느냐"며 "이는 이제까지 검찰에서 공식적으로 수사된 적이 없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검찰의 정치인 출판기념회 수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그간 여야와 선수, 전현직을 막론하고 절대다수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조달창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직접 법 개정 필요성을 거론한데다 검찰 수사와 이어질 법원 판결을 감안, 정치권은 출판기념회 관련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으로 보인다.

◇출판기념회, 정치인의 정치자금 젖줄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선거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열린다. 정치자금 조달 목적에서다.

실제로 지난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3월 정치1번지인 서울 여의도 곳곳에서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봇물 터지듯 잇따라 개최됐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90일부터 출판기념회 개최가 금지되므로 6월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3월6일까지 부랴부랴 출판기념회를 개최해야 했다. 지난해 초부터 지난 3월5일까지 국회 안에서 열린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만 70여건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을 정도다.

국회의원회관에서 하루에 여러건의 출판기념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고 이 때문에 대기업이나 정부부처, 관료, 정치인의 지인들은 출판축하금 또는 책 구입대금 명목으로 책값의 몇배 되는 돈을 지출하느라 허리가 휜다는 푸념을 곳곳에서 쏟아냈다.

책을 판매하는 것은 무관한데다 책값으로 얼마를 받든 상관없기 때문에 잇따라 열린 출판기념회는 책값으로 가장한 정치자금이 오고 가는 장이 됐다.

게다가 현행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관위의 관리도 받지 않기 때문에 수입과 사용내역을 선관위에 신고하거나 공개할 의무도 없었다. 고액이 오고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일각에선 출판기념회 관행을 고치려는 시도도 나타났지만 이 역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은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 제정안에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는 도서판매를 정가로 해야 하며 수입과 지출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난 4월 국회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 회부된 후 4개월째 잠자고 있다.

새누리당 역시 당내 준칙을 통해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임기 중 연 2회로 제한하며 국정감사·정기국회·예산국회·선거 임박 시점에는 행사를 개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실천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됐다.

출판기념회 관련 입법을 하려면 중앙선관위가 공직선거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시하고 국회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결성해 이를 선거법 개정안에 반영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수많은 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하는 이 과정에서 과연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족쇄를 만드는 입법에 흔쾌히 동의할지는 불투명하다.

◇출판기념회 무법지대는 아니다

다만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수수의 천국이자 무법지대인 것은 아니라는 게 중앙선관위의 설명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광범위한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초청장을 발송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다. 또 초청장에 지방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입후보예정자를 홍보·선전하는 내용은 게재할 수 없다.

출판기념회장에서 전문연예인 등이 아닌 자가 단순히 한 두 곡 정도의 축가를 부르거나 합창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가수나 전문합창단 등 전문직업가수가 축가를 부르는 것은 기부행위로서 금지된다.

출판기념회 참석자에게 저서를 시중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선거구민이나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에게 무료 또는 싼값으로 제공하는 것은 금지된다. 정치인이나 그 지지자들로부터 정치인의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으면 50배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그 장소에 비치된 차나 커피 등 1000원 이하의 음료를 마시는 것은 무방하지만 그 외 김밥이나 빵 등 다과류나 기념품 등을 제공받거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것을 대가로 정치인이나 그 지지자들로부터 음식물 등을 제공 받으면 50배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선거구민이나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들을 출판기념회에 참석시키기 위해 관광버스 등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금지된다. 교통편의를 제공받은 자는 50배 이하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게 된다.

출판기념회 개최 장소에 행사개최와 진행에 필요한 사항을 게재한 현수막 또는 포스터 등을 통상적인 범위에서 게시․첩부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거리 등에 게시하는 것은 선거법에 위반된다.

실제로 법원은 출판기념회와 관련한 각종 사건에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제3자가 또다른 참석자인 선거구민 5명에게 시가 5만원 상당의 수필집 5권을 무료로 배부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선거법 위반을 인정해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의 경력이 게재된 초청장을 선거구민이 포함된 1845명에게 발송하고 선거구민 150여명에게 초청장을 직접 배부하자 이 경우에도 대법원은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초청장에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의 약력뿐만 아니라 지지를 호소하는 문구를 게재하고 1500여명이 참석한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5만여명에게 초청장을 발송했으며 출판기념회 참석을 독려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도 1만2000여통이나 발송한 경우에도 대법원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