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날두형'은 왜 그랬을까. 팬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누구 한 명 속시원히 해명도 해주지 않았다. '사기다', '한국팬을 X무시했다'는 험한 말도 나온다.

이탈리아 명문 클럽 유벤투스의 팀 K리그와 친선경기(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는 오점 투성이로 끝났다. 

경기 당일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유벤투스는 기상 악화로 인한 비행기 지연 도착으로 처음부터 행보가 꼬였다. 호날두가 참석하기로 했던 팬사인회는 취소됐다. 유벤투스 선수단은 예정됐던 경기 시작 시간(오후 8시)을 넘겨서 구장에 도착했다. 경기 시작은 50분 이상 늦어졌다. 

결정적으로 한국 축구팬들이 그렇게 보고싶어 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아예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벤치만 지킨 호날두는 팬들의 환호가 야유로 바뀌자 손 한 번 흔들지 않고 경기장을 떠났다.

   
▲ 사진=KBS2 '중계방송 캡처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한국축구와 팬들이 유벤투스와 호날두로 인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선수가 어떤 사정에 의해 경기에 못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호날두의 결장은 좀 다른 문제다.

유벤투스-팀 K리그 경기 개최가 결정된 후 주최사 더 페스타는 호날두가 최소 45분은 뛰기로 계약했다고 홍보했다. 세계 최고 축구스타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경기에 대한 축구팬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프리미엄존이 40만원이나 되는 등 높게 책정된 입장권 가격에도 예매 시작 2시간여 만에 6만5000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런데 호날두는 경기에 아예 뛰지 않았다. 물론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들과 '호날두 빠진' 유벤투스 선수들은 멋진 경기를 펼쳤고 3골씩 주고받으며 3-3으로 사이좋게 무승부를 거뒀다. 세징야(대구FC)가 호쾌한 골을 터뜨린 후 호날두 대신(?) 벤치에 앉아있는 호날두 앞에서 '호우 세리머니'도 선보였다.

하지만 결국 유벤투스의 이번 방한 경기는 최악의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약속했던 호날두의 팬사인회 참석도, 경기 출전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날두의 결장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유벤투스의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호날두가 원래 뛸 예정이었지만 컨디션과 근육 상태가 안 좋았다"고 밝힌 게 유일한 공식 해명이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호날두는 24일 중국에서 경기를 갖고, 하루밖에 못 쉰채 경기 당일 입국해 곧바로 출전하는 일정에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 사리 감독과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기로 25일 이미 결정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사전에 호날두의 결장이 결정됐다면 주최측은 이를 미리 알릴 의무가 있다. 호날두를 전면에 내세워 홍보를 해왔기 때문에 그가 못 뛰게 됐다면 그 사실을 알고난 후에는 즉각 공지를 해야 했다. 주최측도 몰랐다면 유벤투스(와 호날두)가 계약 위반을 한 것일테고, 주최측이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사기나 마찬가지다.

호날두는 정말 몸이 안좋았을 수 있다. 유벤투스는 21일 싱가포르에서 토트넘과 경기를 갖고, 24일 중국 난징에서 인터 밀란과 경기를 치렀다. 호날두는 인터 밀란전에 풀타임 출전하는 등 2경기에서 153분을 뛰었다.

6일 사이에 세 경기를 갖는 것 자체가 몸값 비싼 선수들로 구성된 유벤투스에겐 무리였다. '귀하신 몸' 호날두는 이런 무리한 일정에 화가 났을 수 있다. 부상이 우려될 정도로 컨디션이 안좋을 수 있다.

하지만 호날두는 화가 났다 하더라도 화풀이를 소속팀이나 에이전트(최소 45분 뛴다는 계약을 했다면)에게 했어야 했다. 공항에서 2시간 이상 연착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호날두를 환영해준 팬들에게 그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오래 기다렸을 것을 뻔히 아는 사인회 참석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불참했다. 6만 이상의 관중이 호날두를 연호하는 경기장에서, 자신을 보러온 팬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출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떤 미안한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지자 경기 종료와 함께 화가 난 표정으로 관중들을 외면한 채 그라운드를 떠났고, 취재진에게 말 한 마디 남기지 않았다.

'사기'에 의해 축구팬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금전적 또는 시간적인 손해를 봤다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한국 축구나 팬들을 무시한 처사일 수 있다. 호날두가 어떤 사정에 의해 결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정말 몸 상태가 안좋았다 하더라도 팬 사인회에는 참석해 팬들과 소통했어야 한다. 공항에 환영 나온 팬들이나 서월월드컵경기장을 꽉 메움 팬들에게 손이라도 흔들어주며 성의 표시를 했어야 한다. 한국을 다시 찾을 것도 아니고, 심기 불편한 김에 '무시'한 것이 맞다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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