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안전보장' 내세웠지만 ‘제재 완화’ 놓고 8월 말까지 기싸움 벌일듯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이달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면서 지난 5월에 이어 또다시 무력 도발을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한 이후 기대됐던 북미 실무협상이 더 미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정부는 이번에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북한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한국정부는 북한을 향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으며, 미국정부는 북한의 미사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6일 “북한 당국의 담화가 아닌 매체의 보도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정부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 판단과 결정은 유엔 안보리가 할 것”이라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그것은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며 “북한은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다른 미사일들은 실험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대화의 판을 깨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의 이번 무력 도발은 불과 25일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판문점 회동 사실을 돌이켜볼 때 미국에 대한 압박용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전혀 언짢지 않다”고 말한 것을 볼 때 현재 북미가 실무협상 조건을 놓고 물밑에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군사연습과 남측의 신형군사장비 도입에 반발해 지난 25일 신형전술유도무기(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위력시위사격'을 직접 조직, 지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조선중앙통신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난 2월 말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협상 조건은 ‘제재 완화’에서 ‘체제 안전 보장’으로 전환됐고, 이에 따라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즉, 북한은 미국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포함시킨 체제 안전 보장을 내세워 상대적으로 쉬운 대북제재 완화 쪽으로 미국의 결정을 유도하는 셈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하노이회담 이후 북한은 줄곧 ‘미국의 셈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면서 대미 협상라인은 물론 대남 협상라인도 모두 교체했다. 북한은 셈법을 바꿨지만 미국과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아 현재 북미 간 물밑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노이회담이 결렬되자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1일 0시10분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 있어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 군사 분야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보고 부분적 제재 문제를 상응적 조치로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었다.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제재 완화’가 막히자 더 힘든 조건인 ‘체제 안전 보장’을 내세워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새로 건조한 잠수함 공개, 다음달 2일 태국 방콕에서 여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담에 리용호 외무상의 불참 결정은 자신들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되는 셈이다.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에서 우리는 미국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실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도 문서 형태로 줄 용의를 표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하노이회담에서 북한은 비핵화 협상의 시작 조건을 ‘핵동결’로 제시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미 백악관에서 나온 ‘핵동결’ 발언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와 이에 따른 ‘상응 조치’를 어떻게 상정하고, 합의할 수 있을지, 또 북미 간 실무협상의 시작을 결국 ‘핵동결’ 대 ‘일부 제재 완화’로 풀어가는데 동의할지 주목된다.  

한편, 이번 북한의 미사일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것으로 요격을 피할 수 있는 ‘풀업’(Pull-up·상승) 기동을 갖춰 더욱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종말 단계에서 바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도약해서 내리꽂듯 표적에 명중하는 방식”이라며 “사드, 패트리엇 등 미사일 방어체계의 무력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이에 대한 방어 시스템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군 당국은 다음달 5일부터 약 3주 가량의 일정으로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이 있는지를 검증할 한미연합연습을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던 당일인 25일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 오클라호마시티호가 부산항에 입항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