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심과 목심 활용한 축조기법…4∼5세기 유물 200여점 출토
   
▲ 당진 성산리 산성 석심 [사진=금강문화유산연구원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충남 당진시 아산만 입구 소재 성산리 산성이 백제가 1600년 전 무렵 고구려 침략에 대비해 쌓은 해안 방어기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금강문화유산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성산리산성을 발굴, 백제 한성도읍기(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 후기인 4세기 후반∼5세기 초반 산성임을 확인하고, 독특한 축조 기법을 파악했다고 1일 밝혔다.

성산리 산성은 해발 67m 정상부에 쌓은 길이 239m 테뫼식 산성인데, 테뫼식 산성은 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조성한 산성이다.

연구원은 산성 북쪽 성벽과 그 안쪽 일부를 조사한 결과 성벽 너비는 약 14m이며, 높이는 바깥쪽 하단부를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 5.3m이며, 성벽 안쪽에서는 건물터 유적 6기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축조 기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풍화토를 파낸 뒤 나무기둥인 목심(木心)을 1.1m 간격으로 박고 적갈색 점토를 두껍게 쌓아 올린 방식이며, 또 다른 축조 방법은 중심부에 돌을 쌓고 내부를 점토와 잡석으로 다져 잔존 높이 2m·너비 2.8m인 석심(石心)을 만들고, 안팎에 흙을 쌓아 올린 것이다.

연구원은 "전체적으로 토성이지만, 일부 구간은 석성(石城)에 비견될 정도로 짜임새 있고 견고하게 성벽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또 "한성백제기 성곽 중에서는 충주 탄금대 토성에서 초기 형태의 석심 토루(土壘, 흙을 다져 쌓아 올린 성벽)가 나왔을 뿐, 정연하게 축조한 석심 기법이 파악된 사례가 없다"며 "성산리 산성은 백제 성곽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건물터 유적은 대부분 사각형이었으나, 한 기는 한성도읍기 주거지의 특징적 형태로 평가되는 철(凸)자로 나타났으며, 성벽과 인접해 열을 지어 조성했고, 취사와 난방에 쓰는 구들시설이 있었다.

발이 세 개 달린 토기인 삼족기(三足器), 고배(高杯·굽다리접시), 계란 모양 토기, 시루, 가락바퀴, 쇠도끼 등 2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연구원은 성산리 산성이 고구려 광개토대왕(재위 391∼412)을 전후해 백제가 해안가에 세운 최전방 전초기지였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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