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들과 결혼한 구스타브 왕의 세 자식들…법까지 바꿔 아버지의 뒤를 이은 그들
   
▲ 이석원 객원 칼럼니스트
입헌군주국인 유럽 국가의 왕실에서 국왕의 자식들이 크고 작은 말썽을 부리는 것은 일상화된 일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67년 째 왕위에서 군림하는 영국 왕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르웨이나 덴마크, 네덜란드와 스페인 등 주요한 왕국의 왕실들은 저마다 자식들의 말썽으로 종종 골머리를 썩인다.

왕실의 자식들이 벌이는 가장 골치 아픈 사고들은 연애 문제다. 그 나라에서 가장 부유하고, 명망 높은 왕실의 자식들은 아들이건 딸이건 방탕한 연애 활동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며, 방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왕실의 법도와 체통에 맞지 않는 연애와 결혼을 하는 일이 흔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그것이다.

스웨덴도 입헌군주국인 왕국이다. 그리고 현 스웨덴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브는 모두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째 빅토리아 공주. 왕위계승 서열 1위다. 이변이 없는 한 구스타브 왕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국왕이 될 것이다. 둘째는 칼 필립 왕자. 할리우드 스타 올랜드 블룸을 닮았다. 어떤 사람들은 콜린 퍼스를 닮았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잘 생긴 외모 덕에 한 때 스웨덴 젊은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막내 마들렌 공주 또한 빼어난 미모로 유명하다. 하도 파티를 즐기며 값비싼 명품 두르는 걸 즐겨서 꽤 시끄러운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했다.

   
▲ 스웨덴 왕위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왕세녀와 그의 남편인 다니엘 대공. /사진=이석원

이들 세 명은 모두 평민과 결혼했다. 1973년까지 스웨덴 왕위계승법에 의하면 평민과 결혼한 왕족은 왕위계승 자격이 없다. 귀천상혼제라고 한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왕족은 다른 나라의 왕족 또는 귀족 신분과 결혼을 해야 했다. 만약 지금도 그 법이 존재한다면 현재 스웨덴 왕실의 자녀 중에서는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 법이 개정된 것은 현 국왕이 왕위에 오르면서다. 1973년 미혼인 상태에서 왕위에 오른 구스타브는 브라질계 독일 여성 실비아 좀멀라트와 동거 중이었다. 귀천상혼제라는 왕위계승법 때문에 왕세손이기는 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왕위에 오른 후 의회와 의논해 왕위계승법을 바꿨다. 그런 뒤 실비아와 결혼했다. 이와 함께 왕자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도 고쳐 왕자든 공주든 첫 번째 자녀가 왕위계승 서열 1위가 됐다.

구스타브 왕의 첫 자녀인 빅토리아 공주는 아버지와 똑같은 연애를 했다. 차기 스웨덴 국왕의 남편이 될 다니엘 대공(베스테르예를란드 공작)은 스웨덴 시골 촌뜨기다. 지도에서 찾기도 쉽지 않은 오켈보라는 시골 벽촌 면 직원의 아들로 평민 중에서도 평민이다.

치렁치렁한 장발에 찢어진 청바지, 한마디로 거지꼴을 하고 다니던 다니엘은 말투까지 촌스러웠다. 빅토리아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스웨덴 상류 사회의 놀림감이 됐다. 왕도 빅토리아와의 연애를 막았다.

하지만 헬스 트레이너인 다니엘에게 개인 트레이닝을 받던 빅토리아는 그의 야성미에 반했다. 또 앓고 있던 우울증과 거식증도 말끔히 나았는데 순전히 다니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빅토리아는 제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실비아와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으면 왕세손을 포기하겠다고 버텼던 구스타브 왕처럼 빅토리아도 다니엘과 결혼할 수 없다면 왕세녀의 지위를 버리겠다고 버틴 것이다. 결국 2010년 6월 19일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다니엘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도 보여줬다.

   
▲ 왕위계승법이 바뀌지만 않았어도 왕세자가 됐을 칼 필립 왕자와 그의 부인 헬퀴스트. /사진=이석원

왕위계승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왕세자가 됐을 외아들 칼 필립 왕자는 누드모델 출신인 소피아 헬퀴스트와 사랑에 빠졌다. 2010년부터 헬퀴스트와 교제를 시작해 2012년부터는 공개 연애를 했고, 2015년 6월 13일 왕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을 올렸다.

헬퀴스트를 구스타브 왕보다 어머니 실비아 왕비가 더 반대를 했다. ‘스웨덴 왕실의 수치’라고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스타브 왕이 큰 반대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왕이 될 아이도 아닌 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을까? 아무튼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대중들의 예상과는 달리 2명의 아들을 낳고 아직은 잘 살고 있다.

'스캔들 메이커' 마들렌 공주에게는 8년 간 교제하고 7년 간 동거한 변호사 요나스 베리스트룀이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발표하고 얼마 뒤 이 자가 노르웨이 핸드볼 선수와 바람이 났다. 당시 보도에는 ‘원 나잇 스탠드’였다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둘이 이미 마들렌을 속이고 오래 연애를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무튼 결혼은 깨졌다.

   
▲ 스웨덴 왕실의 막내 마들렌 공주와 그의 남편 크리스토퍼 오닐. /사진=이석원

마들렌은 '진짜 파티'와 '명품'을 찾아 뉴욕으로 갔고, 거기서 영국계 미국인 은행가인 크리스토퍼 오닐을 만나 사귀게 됐다. 은행가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평민. 이번에는 구스타브 왕과 실비아 왕비 둘 다 이들을 만남이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2013년 6월 8일 결혼식을 올렸다.

이렇게 구스타브 왕의 자녀들은 모두 평민과 결혼했다. 스웨덴이 워낙 결혼이나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귀족이나 왕족들의 삶은 일반인들의 삶과 결코 같지는 않을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귀족이나 다른 나라의 왕족과 결혼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스웨덴 시민들은 '그 아버지의 그 자식들'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는 비난이 아니다. 구스타브 왕이 시민들에게 별로 존경받는 왕은 아니지만,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자식의 일에 대해 큰 간섭을 하지 않고 믿고 맡기는 가장 흔한 스웨덴의 부모 중 하나라는 그런 친근감 같은 것을 국왕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차기 스웨덴 국왕이 될 왕세녀 빅토리아 공주는 아버지보다는 스웨덴 시민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다. 스캔들도 없고, 사치도 적다. 게다가 서민적인 행보가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빅토리아 공주의 큰 딸인 에스텔 공주에 대한 스웨덴 시민들의 애정이 깊다. 에스텔 공주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스웨덴 시민과 의회에서는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로 가자는 얘기도 많았는데, 에스텔 공주의 탄생 이후 그런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당분간 스웨덴의 왕실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석원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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