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중국전 위작(僞作) 뒤범벅…정말 이 정도였나?
2019-08-22 10:22:3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23일 중국전 마무리…'작품 세탁' 의혹은 더 커져
출품작 전수 조사와 문체부 조사, 검찰 수사 있어야
출품작 전수 조사와 문체부 조사, 검찰 수사 있어야
▲ 조우석 언론인 |
지난 6월 중국 베이징 중국국가미술관에서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 특별전 얘기인데, 문제의 전시는 내일, 그러니까 23일로 일단락된다. 하지만 의혹은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도 안 되는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하시겠지만 첫 의혹 제기한 것은 필자였다. 개막 뒤 미디어펜 지면(6월 18일)에 첫 글을 썼다.
'추사 중국전에 위작 섞였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이란 제목의 조심스러운 글이었는데, 보름 뒤 같은 의혹이 다른 매체에 의해 제기됐다. 국내 언론 UPI뉴스가 7월 2일 '위작시비 추사 작품 중국전 출품…작품세탁 논란'을 보도한 것이다. 내용도, 시각도 흡사했다.
지난해 문화재청 보물 심사 때 위작 시비 때문에 탈락한 작품 '계산무진(谿山無盡)'과 '명선(茗禪)' 두 점을 중국전에 포함시킨 건 전형적인 작품 세탁 혐의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놀라운 건 주최 측인 예술의전당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태도다. 그들은 7명의 심의위원회에서 출품작을 선정했으니 우린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했다는 게 UPI뉴스의 보도다.
▲ 추사 중국전 출품작 117점 대다수가 위작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누가 봐도 형편없는 태작(駄作)까지 수두룩하다. 그 중 하나인 '산수국화(山水菊花)'. 꽃과 잎 묘사와, 그림 주변을 둘러싼 화제(畵題) 글씨까지 너무도 수준 이하라서 졸작 중의 졸작으로 지목된다. |
꿀 먹은 벙어리 심의위원 7인
밝혀진 심의위원은 최완수(간송박물관장), 이완수(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규선(선문대 교수), 권창윤(서예가), 김양동(서예가), 김영복(고미술가), 우찬규(고미술상)인데, 놀라움은 계속된다. 전문성에 먹칠을 당한 그들은 혐의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게 순서였다.
뜻밖에도 그들의 선택은 침묵이었다. 저들이 꿀 먹은 벙어리라면, 주무부처인 문체부가 조사에 나서든가 언론이 움직였어야 했다. 당장 문제가 된 게 '계산무진'과 '명선(茗禪)'이지만, 출품작 117점 중 위작이 어느 정도 규모인가는 더 큰 의문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걸 파악하기 위한 전수(全數)조사와 시비의 전말 확인은 너무 당연한 게 아닐까?
이 명백한 의혹 앞에 지난 두 달 관련 학계, 주무부처, 언론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던 차에 미술사 분야 최고 전문가 강우방(78·전 국립경주박물관장) 전 이화여대 교수가 나섰다. 그는 천지일보에 '북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추사 예술혼의 대참사'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중국전은 "대담무쌍한 국제적 사기극"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예술의전당이 언론에 보낸 홍보자료로 보낸 것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홍보자료에 수록된 13점 가운데 '난' 그림 2점을 포함한 11점은 말이 필요 없는 위작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글씨로 위작인 까닭을 거론하기도 부끄럽다. 자신 있다고 배포한 홍보자료가 그러할 진데 출품작 117점 전체의 작품의 질을 가늠하기 어렵지 않아 두렵기 짝이 없다."
그럼 어느 정도란 말일까? 강 교수가 필자에게 전화로 확인해준 바에 따르면, 출품작 중 자신이 사진으로 확인한 건 50~60점이다. 놀랍게도 거의 대다수가 가짜 글씨에 가짜 그림에 해당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진품 출품작에 일부 위작이 섞여든, 그런 차원이 아니란 얘기다.
더 기막힌 건 누가 봐도 형편없는 수준의 태작(駄作)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주최 측이 홍보용으로 공개한 13점 중 두 점을 예로 들자. 일차로 '산수국화(山水菊花)'(가로 22.8센티, 세로96.5센티). 국화꽃과 잎사귀 묘사와, 그림 주변을 둘러싼 화제(畵題) 글씨는 너무도 졸렬하고 유치찬란하다. 전체 구도와 글씨까지도 그러해 졸작 중의 졸작이다.
▲ 추사가 여섯 살에 썼다는 '입춘부(立春賦)'. 어린애 글씨를 흉내 내 어른이 고의로 삐뚤빼뚤하게 쓴 위작 혐의가 짙다. 이런 괴발개발 그린 글씨를 용납할 어른도 없지만 그게 무슨 보물이라고 수백 년을 보관해왔다는 것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
"말이 필요 없는 위작"
아무리 작품 세탁을 하려 했다지만, 이런 졸작까지 추사의 것으로 둔갑시키려 했다니 분노가 절로 치민다. 추사가 여섯 살에 썼다는 '입춘부(立春賦)'도 어이없다. 누가 봐도 어린애 글씨를 흉내 내 어른이 고의로 삐뚤빼뚤하게 쓴 장난질에 해당한다. 생각해보라.
서예를 시작할 때 누구나 반듯한 정체(正体) 쓰기부터 시작하는 법이지 이렇게 붓을 들어 장난치듯 괴발개발 그리는 경우란 없다. 그걸 용납할 어른도 있을 리 없지만 더구나 그게 무슨 보물이랍시고 수백 년을 보관해 오늘에 이르렀다? 저들의 치졸한 위작 장난질과, 빈곤한 상상력에 허탈감마저 든다. 그리고 결정적인 의문 하나를 지울 수 없다.
어릴 적 그의 글씨를 포함해 추사의 글씨와 그림이 이토록 양적으로 엄청났던가? 왜 듣도 보도 못했던 것들이 요즘 들어 튀어 나오는가? 누군가가 공장에 숨어 '돈이 되는' 추사 글씨를 양산하고 있으며, 그게 이번 전시회에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런 문제제기는 당연하다. 우리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의 세금으로 전시회가 이뤄지고, 천문학적 보험금까지 들여 운송했고, 한중 우호친선이란 목표로 한 국제적 전시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예술의전당 측은 무슨 영문인지 전시회가 끝난 지금까지도 도록(圖錄)을 제작하지 않고 있다. 위작 시비 확대를 두려워한 탓이라고 봐야 한다.
누군가가 대답을 해야 하고, 책임 져야 한다. 자백할 리 없다면 당국의 수사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강우방의 이번 비판 글은 막연한 개탄이 아니다. 미술사학자로 활동하는 두 사람의 실명(實名)을 들고 있어 주목된다. 최완수(간송박술관장)와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두 명이 문제의 인물이다.
최완수는 이 전시에 공개적으로 간여했지만, 유홍준은 뒤에서 영향력을 끼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다. 놀랍게도 둘은 대중에게는 추사 연구의 대단한 권위자로 알려졌지만, 그들은 외려 정반대라는 것이 강우방이 쓴 천지일보 글의 지적이다. "(둘은) 붓글씨를 올바로 써보거나 사군자를 그린 적이 없어서 작품의 진위를 구별할 줄 모른다".
또 미술사연구의 기본인 "이른 바 '작품 조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그의 폭로다. 미술사학에서 작품 조사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은 과학자들이 실험이나 관찰을 할 줄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인데, 두 사람은 묘하게도 추사에 대한 논문은 단 한 편도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 진위 논란 때문에 지난해 2월 문화재청 보물 지정 과정에서 탈락했으나 중국전에는 버젓이 출품된 '계산무진'(계산은 끝이 없구나). 추사 '작품 세탁'의 전형적인 케이스의 하나로 지목된다. |
최완수-유홍준 입장 밝히라
단지 개설서나 교양서가 전부라는 지적은 실로 뼈아픈 것이다. "최완수와 유홍준이 사실상 까막눈"이라는 비판을 완곡하게 한 것이다. 이게 인격모독이 아니고 미술품 세탁과 관련한 근본적 원인에 대한 지적이라면 두 사람은 성실하게 응답할 책임이 있다. 최완수는 '미술사와 결혼했다'는 평판이 있고, 유홍준 역시 대중적 명성이 크다.
개인적 명성이 문제가 아니다. 대중은 간송 콜렉션을 우리 문화재의 보물창고로 여기지 않던가? 그리고 백 번 고쳐 생각해도 이런 의구심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다 아시겠지만 이번 전시회는 1년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치바이스(齊白石)와의 대화전'에 이은 국가 교류전이다.
이런 전시회에 장난질을 했다는 건 용서 못할 범죄행위다. 그리고 이 정도 사안에 모두가 쉬쉬하는 건 미술사학계와 고미술업계 그리고 주무부처까지 몽땅 망가졌다는 뜻이다. 당신들이 계속 침묵할 경우 또 다른 의혹도 밝힐 용의가 있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첫 칼럼의 내 입장이 아직도 유효하다.
"한국 문화계를 대표하는 분들인 강우방과 최완수-유홍준 중에서 어느 한 편은 틀린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생산적 논쟁이 가능할까? 학계의 자체 여과 과정을 기대할 수 없다면 주무부처 문화관광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진상조사팀을 만들어 대응하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단순한 착오나 학문적 견해차가 아니라 무언가 냄새나는 결탁과 음모가 있었는지도 밝히는 게 필수인데, 이미 거대한 의혹으로 번진 이 사안을 대충 덮을 순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도 유야무야된다면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것도 생각 못할 게 없다." /조우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