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광화문 :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의 역사, 빛나는 역사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최근 서울관광재단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복절 제74주년을 맞아, 망국과 광복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다크 투어리즘'을 기획했다.

그 중 한 코스가 '고종의 길'이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덕수궁, 아관파천의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 정동공원,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등을 잇는 길이다.

이 길은 트래킹이라 하기엔 너무 짧다. 그래서 필자는 길을 좀 더 늘여서 서소문 중앙일보 사옥 인근에서 시작, 남대문과 덕수궁을 거쳐 대한성공회 성당으로 돌아나와, 광화문네거리까지 걸어본다.

   
▲ 정동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덕수궁과 서울시내 [사진=미디어펜]

이 길은 고종만의 길은 결코 아니다.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 총탄과 최루탄의 비를 뚫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민주투사들의 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민중의 길이다.

그래서 '고종, 독립, 그리고 민주의 길'로 명명했다.

고종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망국에 대한 책임'이 그 누구보다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무능과 무지, 무책임이 36년 '암흑의 일제침략기'를 불러왔다.

그래도 우리 민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또 이 길에서 그들은 다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이 길은 '4월 혁명'의 현장이자,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된 곳이고, 다시 '2016년 촛불 혁명'의 중심지가 됐다. 그렇게 아픔과 통곡의 역사는 빛나는 영광의 역사로 바뀔 충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하철 1.2호선이 교차하는 시청역의 서소문 쪽 9번 출구로 나와 조금 길을 따라가면, 호암아트홀이 보인다. 그 앞 언덕 위 골목으로 올라선다.

이 곳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4소문 중 하나였던 서소문, 즉 소의문(昭義門)이 있던 자리다.

1396년 처음 건립됐을 당시엔 '소덕문'이라 하다가 1744년 소의문으로 고쳤는데, 1914년 일제가 철거해버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이 동네를 서소문이라 부른다.

언덕길을 조금 가니, 한양도성 성벽이 보인다.

멸실된 구간이 더 많지만, 이 골목길은 '한양도성 순성길'의 일부다. 성벽이 복원된 곳도 빛바랜 옛 성돌보다 요즘 새로 쌓은 흰 화강암 성돌이 대부분이다.

이 것은 1907년 일제의 군대해산령에 맞서, 구 대한제국 군인들이 봉기한 정미의병(丁未義兵)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강제해산에 울분을 참지 못한 박승환 대대장이 자결하자, 그 부하들과 이웃 대대 병사들이 일제히 봉기,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였고 지방으로 흩어져 의병들과 합류했다.

이 의병들이 독립군으로, 다시 광복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됐다.

대한상의 빌딩 앞 남대문로터리에서 신한은행 및 부영빌딩 뒷골목을 걷는다.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의 숙소였던 태평관 터라는 표식이 보인다.

구 삼성전자 빌딩 옆에서 대로로 내려왔다. 시청 앞 교차로에서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 소공동 길로 접어든다. 웨스틴-조선호텔 옆에 있는 환구단(圜丘壇)으로 가기 위해서다.

사적 제157호 환구단은 대한제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제천단이다.

1897년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옛 남별궁 터에 단을 만들어 조성한 것으로, 화강암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를 짓고, 신위판을 봉안했다.

1902년에는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 돌로 만든 북인 석고 3개로 이뤄진 단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석고의 몸체에 부각된 용무늬는 조선 말기 조각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 아래쪽 서울시청 앞 광장과 면한 도로변에 환구단 문도 남아있다.

서울시청 앞을 지나고 대로를 건너,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大漢門) 앞에 섰다.

나라 이름은 대한(大韓)인데 왜 '한나라 한'자 대한문일까? 황제는 원래 중국의 통치자니까, 그렇게 이름지으면 중국처럼 크고 강한 나라가 된다고 믿고 싶었을까? 중국 청나라는 이미 열강에 갈기갈기 찢긴 '반식민지' 처지니, 우리가 대신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일까?

이 대목은 이미 망한 명나라 신종의 신주를 여전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서, 소중화(小中華)라고 으스대고, 정작 강대국인 청나라는 '오랑캐'라고 무시했던, 저 조선의 사대부들을 연상케한다.

고종이 황제가 된 후 추진한 '광무개혁'은 나름대로 평가할만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개혁이 너무 늦어 망국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너무 늦었다면, 그는 황제가 아니라 입헌군주, 아니 프랑스 같은 공화정을 과감히 채택했어야 했다.

그러나 역사를 거꾸로 거슬리는 전제군주제를 택하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오호 통재라...

대한문을 뒤로 하고 덕수궁돌담길로 접어든다. 왼쪽 언덕 위에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이 보인다. 입구 양쪽에 해태상이 있는 1동에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13층의 '정동전망대'다.

이 곳에선 서울시내 중심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특히 덕수궁의 각 전각들을 비롯, 궁 전체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다.

커피 등 각종 음료를 파는 이 곳에서, 커피애호가로 유명했던 고종의 이야기를 접한다.

전망대를 내려와 서울시의회 및 의원회관 건물을 돌아가면,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쓰이는 구 대법원 청사가 반겨준다.

등록문화재 제237호인 이 건물은 1928년 지어진 옛 경성재판소 건물이다.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기까지, 이 나라 사법부의 요람이었던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장중한 중세 고딕풍 건물로, 정문의 파사드 3개와 그 위 아치형 창문 4개가 보는 이들을 감탄케 한다.

다시 덕수궁돌담길로 내려오는 양 옆 숲속에는 미술관답게, 조각 작품들로 가득하다.

정동교회 로터리에서 덕수궁돌담을 끼고도는 길을 택했다. 궁을 한 바뀌 돌 수 있는 이 길이 완전 개통된 것은 2017년 8월말로, 1959년 영국대사관에 의해 막힌 지 58년 만이었다.

덕수궁은 또 구 미국공사관과 그 너머 주한미국대사관저로, 또 다른 중요 전각인 중명전과 분리돼 있다. 당초엔 모두 덕수궁이었고, 영국대사관 역시 마찬가지다. 구한말 서구 열강들에 포위된 '허수아비 황제'의 신세를 대변하는 셈이다. 고작 100m 남짓한 길을 복원하는 데도 몇 년이 걸렸다.

필자도 미 대사관저 앞을 지나 구세군서울제일교회 앞까지만 가봤고, 한 바퀴 도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돌담길은 곧 막혔다. 덕수궁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타국 대사관 경내니 그려려니 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영국대사관 앞에서 정문 사진을 찍으니, 직원이 제지를 한다.

대사관 정문 바로 옆 아담한 한옥건물은 경운궁(慶運宮) 양이재다. 등록문화재 제267호인데, 덕수궁이 아니라 굳이 옛 이름인 경운궁이라 한 이유가 궁금하다.

여기부터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경내다. 성공회는 종교개혁 때 설립된 영국국교회니, 영국대사관 옆에 성당이 있는 건 자연스럽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인 이 성당은 돌과 벽돌로 섞어 지은, 중세유럽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당당한 건축물이다.

그 옆 소박한 한식건물인 사제관 앞에 '유월민주항쟁진원지'라 새겨진 돌비석이 있다.

5공 군사정권이 개헌약속을 뒤집고 독재연장을 획책할 때, 결연히 맞선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 바로 여기다.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이 곳에서 연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6월 항쟁으로 불타올랐다.

성당을 나와 서울시의회 건물 앞이 바로 세종대로다.

서울시의회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11호로, 1930년대 초 시민문화공간인 경성부민회관으로 지어졌다. 1945년 8월 류만수.강윤국.조문기 의사가 친일파들 행사장에 폭탄을 터뜨린 현장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해방 후 1975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됐다.

그 앞 큰 길에서 1960년 4월 19일 시민학생 시위대가 자유당독재에 맞서 싸웠고, 경찰의 통탄을 뚫고 경무대로 진격했다. 바로 4월 혁명이다.

조금 더 가면 광화문로터리다. 촛불혁명의 중심지가 바로 여기다.

광화문로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종로 쪽 구석에 있는 기념비전(記念碑殿)이란 현판이 걸린 멋진 건물인데,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란다. 사적 제17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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